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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인, 필리핀 이멜다 마르코스 - ‘부패한 퍼스트 레이디’ 이멜다 마르코스, 또 대통령궁 입성노려 - 반성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여인 이멜다 -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보는 필리핀의 민주주의
  • 기사등록 2021-06-25 13:35:15
  • 수정 2021-06-25 1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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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85세 생일날 화려하게 치장한 이멜다 마르코스의 모습./왓챠© 2019 Fantasy Island LLC. All Rights Reserved.


[부활 노리는 이멜다 마르코스]


‘이멜다 마르코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3천 켤레의 구두’일 것이다. 그만큼 사치의 대명사로 구설로 올랐던 이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그 이멜다가 과거의 인물이 아닌 지금 현재 필리핀의 정권을 다시 잡으려 하고 있다면 이해가 되는가?


이미 아흔이 넘은 이멜다는 권력의 맛을 잊지 못해 이젠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가문의 영광을 되살리겠다고 나서고 있다. 내년 5월에 있게 될 대통령선거에 아들 봉봉(마르코스 주니어)을 대통령 후보로 내 세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치의 여왕’으로, 또 부패한 ‘퍼스트 레이디’라는 낙인이 찍힌 이멜다 마르코스는 왜 이렇게 권력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이젠 아들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이멜다를 받아들이는 필리핀의 민심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부패한 퍼스트 레이디’ 이멜다 마르코스]


최근 이멜다 마르코스에 대한 다큐영화가 화제를 끌고 있다. '이멜다 마르코스:사랑의 영부인'(The kingmaker)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미인 대회 출신의 소박한 시골 아가씨 이멜다가 어떻게 영부인이 되어 독재와 욕망의 화신이 되었는지 그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이미 아흔이 된 이멜다가 길거리에서 가난한 서민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화려한 옷에 짙은 화장을 한 이멜다는 대중을 만날 때는 으레 지갑에서 돈을 꺼내 흔쾌하게 나눠준다. 서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일종의 포퓰리즘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멜다가 나눠주는 그 돈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 바로 1980년대 남편 마르코스가 대통령이던 시절 집권 21년동안 마르코스 일가가 부정부패로 축재했던 재산들이 그 원천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산을 축재했길래 마르코스 축출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렇게 돈을 펑펑 쓰는 것일까?


마르코스 일가가 얼마나 엄청난 재산을 모았는지 그 사치 행각은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지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영부인 시절 사치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엄청난 쇼퍼홀릭이었던 이멜다는 지금 생각해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엄청난 구두와 드레스, 가방 같은 기본이었고 심지어 뉴욕이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의 부동산까지 닥치는대로 사들였다.


마르코스의 정적 아키노가 피살된 후 국민들의 분노로 인해 마르코스가 대통령궁을 떠나 1986년 2월 25일 늦은 밤,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치듯 대통령 궁을 빠져 나와 하와이로 망명하고 난 후 시민들이 대통령궁으로 쳐들어 갔을 때 에밀다의 사치 행각은 놀라움을 넘어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986년 3월 12일자 조선일보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보도했다.


“이멜다의 옷장 안에는 백화점 한 곳을 채우고도 남을 호화사치품들이 가득했다. 가로 21m, 세로 21m의 한 대형 방에는 2200켤레의 구두를 비롯 수백벌의 의상 장신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길이 2m가 넘는 대형거울 옆에는 프랑스 루이비통 손가방이 가득 쌓여 있었다. 청구서들을 조사한 결과 오전 한나절에 1백만 달러어치의 보석을 구입하고 오후에는 2백만 달러어치의 골동품을 사들인 사실이 밝혀졌다.”


4기 집권 취임식을 거행하고 9시간 만에 쫓겨난 마르코스 부부가 축재한 재산은 스위스은행 등 해외로 은닉한 재산 등 알려진 것만 1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상당수는 미국의 원조금 등 국고에서 빼돌린 돈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로 필리핀의 국고로 환수된 금액은 약 40억 달러(4조 5000억 원)뿐이었다. 8조에 가까운 돈은 이멜다 마르코스가 해외 비밀계좌에 은닉해 두어서 찾지를 못했다.


당시는 냉전시대여서 미국은 영향력 확대를 위해 필리핀, 한국 등 아시아 저개발 국가를 지원해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했다. 필리핀도 미국의 원조로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부패들이 일어났다. 그 당시의 극악한 부패가 지금까지도 필리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는 한국과의 1인당 국민소득(GDP)을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1960년의 GDP는 필리핀 254달러로 한국의 3배를 넘었다. 그러나 지난해인 2020년의 필리핀 1인당 GDP는 3330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은 3만 1497달러로 약 10배 넘게 차이가 난다.


권력의 부패가 나라의 성장을 좀 먹은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전가됐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인 이멜다]


다큐 영화에서도 절절하게 드러나지만 이멜다는 반성할 줄을 모르는 여인이다. 당연히 부끄러움도 모른다.


어찌보면 지금의 필리핀이 그렇게 가난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마르코스 정권 때의 부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멜다는 뻔뻔하다. 오히려 당당히 "영부인 시절의 영향력이 그립다"고 말한다.


이 다큐 영화에서는 “7년의 계엄령 기간 정당활동이 정지됐고, 7만 명의 투옥, 3만5000명이 고문을 당했으며 3200명이 사망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멜다는 그 시절을 "마르코스가 필리핀에 주권과 인권이 있었고, 정의와 자유가 넘쳤던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그런 이멜다가 지금 가장 신경쓰는 건 부끄러운 과거가 아닌 오직 '외모'다. 다큐멘터리 카메라 앞에 서기 전, 화려하게 치장한 이멜다는 시중에게 "뚱뚱해 보여?"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이멜다의 아파트에는 지금도 피카소와 미켈란 젤로, 모네 그림까지 걸려있다.


그리고 부정하게 축재한 돈으로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기 저기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다. 이멜다는 돈을 뿌리면서 눈물도 함께 뿌린다. “(내가 권좌에 있다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아쉬움도 그들에게 남긴다. 그러면서 이멜다는 자신을 ‘눈물 많고 인정 많은 사랑의 영부인’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다시 재기를 꿈꾸는 이멜다]


이멜다는 정치를 꿈꾼다. 그래서 1986년 대통령궁에서 쫓겨날 때도 이멜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의 대통령직을 승계받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죽했으면 “미국과의 협상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이멜다”였다는 보도가 나왔겠는가?


이멜다는 91년 필리핀으로 돌아 온 후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 출마했고, 마침내 자신의 고향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래서 이멜다는 지금 현역 하원의원이다. 마르코스의 고향이자 마르코스 가족의 표밭인 북일노코에서 당선됐다. 큰딸 이미는 그곳의 주지사이고, 외아들 봉봉은 역시 그곳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렇다면 북일코노는 왜 이렇게 마르코스 일가를 지원하는 것일까? 마르코스가 대통령일 당시 그들의 고향인 북일코노에 엄청난 특헤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코스와 이멜다를 가리켜 국가보다 고향, 국민보다 가족을 더 우선시한 사람들이라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마르코스가 이멜다에 대한 사랑의 징표로 만든 거대한 다리만 하더라도 엄청난 건축비를 들여세웠다. 그 다리의 건설 지휘를 이멜다가 직접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다리다.


그뿐 아니다. 칼라완 섬의 자연동물원도 그때 만들어졌다. 이 동물원을 만들기 위해 칼라완 섬에 살던 254가구의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케냐에서 사들인 동물들로 채웠다.


1976년 케냐 사파리를 찾았던 이멜다가 야생동물에 푹 빠져서 “필리핀에서는 볼 수 없어서 너무 부러워요”라고 했다. 이멜다의 말 한마디에 기린, 얼룩말, 임팔라 등 케냐의 야생동물들이 필리핀의 칼라완 섬으로 옮겨진 것이다. 지금의 칼라완섬의 동물원은 참혹하다고 한다. 예산도 줄어 수의사도 없다. 37년간 동물원은 그렇게 방치된 셈이다.


그럼에도 고향 사람들은 마르코스 일가를 잊지 못한다. 베풀었던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발판을 밑거름으로 이멜다는 다시 대통령궁으로 입성하는 꿈을 꾸고 있다. 자신의 장남 봉봉을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남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돈은 과거 자신이 퍼스트레이디때 축재했던 재산을 조금씩 꺼내 쓰고 있다.


이멜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지금의 대통령인 두테르테와도 적극 연대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정치자금을 지원하면서 두테르테가 자신을 돕도록 만든 것이다.


일단 이멜다의 아들 봉봉은 지난 2016년 두테르테의 파트너로 부통령 선거에 나서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두테르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간발의 차이로 낙선을 했지만 이멜다의 아들 봉봉은 지금 필리핀에서 내년의 대통령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왜 이렇게 이멜다는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려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권력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통해 국고를 자신의 현금인출기처럼 사용했던 그 짜릿한 맛에서 아직도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의미다.


일단 방부 처리해 보관하던 남편의 시신을 필리핀 영웅묘지로 이장하는 데 성공했고, 이젠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만 하면 자신은 재기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보는 필리핀의 민주주의]


필리핀은 민주주의 국가다. 그 필리핀은 이미 독재자 마르코스의 과거를 잊은 듯하다. 마르코스가 쫓겨난 지 30년이 됐어도 그 위세는 여전하고, 그때 축적한 부로 대중의 마음을 사려고 하는 이멜다 가족을 아직도 상당수가 지지한다.


필리핀을 바라보며 더 안타까운 것은 마르코스가 쫓겨난 후 정권을 잡았던 아키노 정권의 민주적 통치노력이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다큐멘터리 리뷰에서 ‘동남아시아의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표현을 썼다. 대중들은 피로 얻어낸 민주주의를 잊고, 다시 한 번 강력한 독재자에게 표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허약한 민주주의가 두테르테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리고 이멜다 마르코스가 다시 대통령궁에 입성하는 꿈을 갖도록 만들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올해 2~3월 시행된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딸이 1위, 마르코스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가 그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마르코스 가문의 뻔뻔함과 권력에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린 다큐영화 ‘더 킹 메이커(The Kingmaker)’. 화면 내내 눈을 자극하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이멜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려는 그 이멜다를 보노라면 누군가가 생각난다.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로렌 그린필드가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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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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