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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反中’ 외쳤던 홍콩 빈과일보, 中압박에 결국 폐간 - 홍콩보안법 발콥 드러낸 중국, 반중매체 결국 폐간시켜 - 빈과일보 마지막 폐간호를 빗속에 맞이한 홍콩 시민들 - 중국의 본질 보여준 빈과일보의 폐간, 국제사회도 비판
  • 기사등록 2021-06-24 16:12:10
  • 수정 2021-06-25 07: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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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과일보의 폐간호 1면 [사진=BBC 갈무리]


[결국 강제 폐간된 홍콩의 빈과일보]


‘홍콩민주화’를 외치며 중국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써왔던 홍콩의 빈과일보(Apple Daily)가 창간 26년을 자축한 지 3일만인 6월 24일자로 중국 당국의 오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발행을 중단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4일 3개의 장문의 기사를 통해 빈과일보의 폐간을 전하면서 “빈과일보는 이날 평소보다 10배 가량 많은 100만부를 발행하며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고 했다.


빈과일보의 폐간호는 1면엔 스마트폰 조명 등으로 빈과일보 사옥 전경을 비추는 한 지지자의 손과 함께 ‘빗속에서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한다’ ‘우리는 빈과일보를 지지한다’는 제목을 실었고, 나머지 19면엔 그간 1면을 장식했던 사건들과 홍콩 시민들을 향한 편지를 담았다.


빈과일보의 마지막 호를 제작하는 23일 저녁, 빈과일보 편집국은 이를 취재하려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속에 총 20면짜리 신문을 제작했다.


SCMP는 빈과일보 마지막호의 제작 현장을 이렇게 전했다. “마지막판의 인쇄 버튼이 눌린 전날 밤 11시 45분, 람만청(林文宗) 집행총편집인은 강판(신문 제작 시작)을 지시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 없이 동료들을 둘러 본 그는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리고 빈과일보 직원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면서 “힘내라 빈과, 힘내라 홍콩”을 외쳤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앞서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라이언 로 편집국장의 자리를 대신해 말문을 연 찬 푸이만 부국장은 당국의 위협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직원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24일과 25일, 빈과일보 부국장 자리와 5개 계열사 이사직에서 순차적으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는 사실도 전했다.


여기서 마지막 인사말을 한 푸이만 부국장은 지난 17일 라이언 로 국장 등 4명과 함께 자택에서 체포된 바 있었는데 그후 푸이만 부국장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로 국장과 청킴흥(張劍虹) 발행인 겸 편집인은 보석신청이 기각돼 현재 구속 수감된 상태다.


“중국 이슈를 담당했던 태미 청 부편집장은 30여명에 이르는 직속 부하 직원들이 끝까지 남아줬다”고 감사의 인사를 한 후 “그들에게 ‘반드시 제대로 된 재정비 과정을 거쳐 빈과일보의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고 SCMP는 전했다.


또다른 한 기자는 폐간 소식을 들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 “독자들에게 끝으로 인사하는 기사를 쓰고 있었다”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곳은 내게 직장을 넘어선 집”이라고 말했다고 SCMP는 보도했다.


SCMP는 다른 한 기자도 “10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일했다”며 “훗날 이날을 돌아봤을 때 마지막까지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며 자리를 지킨 이유를 설명하면서 “홍콩에서는 한 신문이 이런 식으로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핵심 가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조차 사라질 것인가? 신문사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도시의 자유’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한 23년째 신문의 레이아웃을 디자인했던 딕슨 응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내왔다는 사실에 매우 감격스럽지만 홍콩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는 것에 슬프다”고 말했다고 SCMP는 보도했다.


한편 SCMP는 마지막 신문을 제작하는 빈과일보 사옥 밖의 모습도 생생하게 전했다. 신문 마지막 판을 제작하는 동안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와 “힘내라 빈과일보!” 등의 구호를 외쳤으며, 그중 일부는 2019년 반정부 시위 때처럼 검은 옷을 입고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치기도 했다.


더불어 빈과일보와 건물을 같이 사용하는 몇몇 사무실들은 신문의 마지막을 슬퍼하는 의미로 불을 끄며 이들의 아픔에 동참했다.


그리고 “자정을 갓 넘긴 시간, 마지막 폐간호가 나오기 시작한 12시 20분경, 직원들은 지지자들에게 마지막 신문을 무료로 나눠줬으며 신문사 로비는 지지자들이 가져온 꽃과 쪽지들로 가득찼다”고 SCMP는 전했다.


SCMP는 자신의 성을 ‘후이’라고 밝힌 지지자의 말, 곧 “빈과일보 이후엔 중국과 홍콩 정부에 감히 대적할 신문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빈과일보 폐간은 홍콩 언론 자유의 종말”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지지자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 아들과 함께 왔다”는 말을 기사로 실었다.


[빈과일보 마지막 폐간호를 빗속에 맞이한 홍콩 시민들]


빈과일보는 평소 10만부를 발행해 왔으나 폐간호는 이보다 10배 많은 100만부를 찍었다. 그리고 홍콩 시민들은 바로 그 폐간호를 사기 위해 비가 오는 밤거리에서 10시경부터 가판대에 신문이 도착하는 새벽 1시까지 3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렸다.


SCMP는 빈과일보의 열성 애독자인 ‘매리 청’도 “빈과일보가 24일자를 마지막으로 신문 발행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들고 이날 오후 10시 가판대에 나와 기다렸다”며 “10부를 사서 친구들에게 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빈과일보는 왜 폐간되었나?]


빈과일보는 1995년 지미 라이(黎智英)가 홍콩에 설립한 중국어 일간지다. 지미 라이는 중국 광둥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2살 때 홍콩으로 도망치듯 건너가 공장노동자로 일하다가 30대에 한국에도 잘 알려진 ‘지오다노’를 창업해 아시아 굴지의 의류 기업으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랬던 지미 라이가 1989년 톈안먼 민주화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티셔츠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중국 정부의 유혈진압에 충격을 받으면서 언론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0년 넥스트 미디어 그룹을 설립하고 중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넥스트 매거진’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본토 반환 임박을 걱정하는 홍콩의 독자들로부터 빠르게 확산되면서 발행부수를 늘려갔다.


그리고 1994년 넥스트 매거진의 성공에 힘입어 1994년에는 지오다노를 떠나 미디어 사업에 집중해 1995년에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선정적인 기사도 실으면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지만 2002년 홍콩에 둥젠화 행정장관이 취임하면서 논조도 확실하게 반중성향으로 방향을 정하게 된다.


당시 홍콩정부가 지금의 홍콩보안법과 유사한 반(反)전복법을 시행하려 하자 빈과일보는 이를 반대하는 논조의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빈과일보의 이러한 기사들은 홍콩인들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2003년에 50만 명이 참여하는 시위대로 확산되었고 홍콩 당국은 결국 보안법 제정을 포기하게 된다. 빈과일보는 이 일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빈과일보는 홍콩의 민주화를 대변하는 언론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지미라이의 빈과일보는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송환법 반대시위 때도 사실상 시위대를 이끌면서 반 중국 선봉에 섰으며 베이징 중앙정부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러다가 2019년 지미라이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나면서 결정적으로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여기에 지난해 5월 중국 당국이 전인대에서 홍콩보안법을 제정하기로 의결하자 이를 막기 위해 ‘트럼프 세이브 홍콩(#TrumpSavesHK)’ 캠페인을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이를 막아달라는 편지를 쓰자고 제안하면서 중국 당국의 강력한 분노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결국 중국 당국에 의해 홍콩보안법이 실행되자 지미라이는 지난해 8월 체포됐고 이후 불법 집회 참여 혐의 등으로 20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여기에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출소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홍콩경찰은 지미라이의 인신구속과 함께 5억 홍콩달러(약 720억원)로 알려진 개인 자산도 동결했다.


빈과일보의 사주인 지미라이를 체포한 홍콩당국은 이어 편집국장, 주필 등을 체포하고 회사 자산을 동결했다. 아예 신문을 폐간시키기로 작정하고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17일 경찰 500여 명을 동원해 빈과일보를 압수 수색하고 회사가 보유중이던 1800만 홍콩달러(약 26억원)의 자산을 동결했다. 그리고 친중 진영의 압박을 통해 기업들의 광고 게재도 중단시켰다. 더불어 빈과일보 계좌에 후원금이나 격려금 등의 입금도 하지 못하도록 아예 봉쇄시켰다.


홍콩 경찰은 “빈과일보는 2019년부터 30여건의 기사를 통해 외국 정부를 향해 홍콩과 중국에 대해 제재를 부과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해당 기사들이 홍콩보안법상 외국 세력과 결탁해 국가 안보를 위협한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존 리(李家超) 홍콩 보안국장은 “일반 언론 종사자들은 (체포된) 관련 인사들과 연락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장 강력한 조치로 법에 따라 타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결국 빈과일보 모회사인 넥스트디지털은 23일 오후 빈과일보 폐간을 최종적으로 결정했고, 주간지인 이저우칸(壹周刊)도 23일 운영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반중 빈과일보의 폐간에 중국 비판한 국제사회]


반중매체인 빈과일보가 결국 폐간되자 국제사회도 일제히 중국과 홍콩 당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빈과일보 폐간을 몰고 온 홍콩보안법 시행 1년에 대해 ‘전율스러운 충격’이라며 국제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홍콩당국의 빈과일보에 대한 조치에 대해 강력 항의했고, EU는 빈과일보 폐간에 대해 “중국이 국가보안법을 통해 뉴스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고 언론의 자유를 심각히 파괴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EU 주재 중국 사절단 대변인은 “유럽이 언론 자유를 명분으로 홍콩 문제와 중국 내정을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있다”며 “이는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 원칙을 심각히 위반한 것으로 강한 불만과 강력한 반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홍콩은 법치 사회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면서도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반중과 홍콩을 혼란하게 하는 데는 치외법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빈과일보 간부 체포 등 빈과일보에 대한 조치들에 대해 저널리즘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언론 자유에 대한 탄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홍콩 당국의 조치를 비판한 미국을 향해서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동을 미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엔의 비난에 대해 유엔 주재 중국 대표단 측은 홍콩 내정에 대한 간섭이며 단호히 반대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반발했다.


[중국의 본질 보여준 빈과일보의 폐간]


빈과일보의 상징은 IT업체 ‘애플’과 비슷한 ‘베어 문 사과’다. 그래서 빈과일보의 영문 제호도 ‘애플 데일리(Apple Daily)’다.


사과는 그야말로 우리들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는 과일이다. 에덴동산에서의 하와(이브)가 베어 문 것도 사과이고, 빌헬름 텔의 사과는 자유를 향한 강한 의지와 열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사과는 혁신의 상징이고 세상을 바꾼 사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빈과일보의 지미라이는 분명히 홍콩의 미래를 염려하며 바로 그 사과를 상징으로 내걸었을 것이다.


‘베어 문 사과’. 지미라이는 홍콩의 자유를 갈망하며 빌헬름 텔의 심정으로 빈과일보를 창간했을 테지만 중국은 그 자유를 향한 강한 의지와 열망이 담겨 있는 그 사과를 결국 따 먹고야 말았다.


이로써 중국 공산당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들이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그들이 내세우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여실히 온 세상에 보여주었다.


홍콩 빈과일보의 폐간, 아마도 중국 공산당 정권에게는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문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두고 볼 일이다.


홍콩 주권 반환일은 7월 1일을 며칠 앞두고 결국 깃발을 내린 빈과일보. 지금은 일단 문을 닫았지만 언젠가 홍콩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다시 부활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빈과일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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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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