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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0 12: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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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진보주의자 남성은 군대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거나 나쁜 것만 배웠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물질을 운송하는 일이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진보는 생활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군대와 생활인들을 혐오하면서 본인들의 자기정당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진보주의자 남성은 군대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거나 나쁜 것만 배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

사실은 약간 늦게 군대를 간 나도 그랬다.

 

▲ 대학 졸업장이 있었다면 군대에 말뚝 박지 않았을까


일년 고참, 그러니까 ‘아버지 군번’이 이등병 시절의 내게 ‘여기서도 배울 게 많다’고 했을 때 나는 ‘저는 약간 군대에 늦게 왔고, 그래서 여기서 배울 것들은 사회생활에서 다 배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가 개갈굼을 먹었다(아, 정말 개념없는 이등병…).

 

이등병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군대라야 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나는 군생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 얘기를 진보판에서 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그들은 군대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거나 나쁜 것만 배웠다는 결론만을 도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나의 특수성도 있다. 내 아버지는 내가 보통의 남성적 세계에선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후려쳤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을 것이고, 그의 선의였을 것이다. 그 자신이 고난을 겪기도 했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엄청난 괴로움을 거쳐 가긴 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세계에서 잘 지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졸업장이 있었다면 거기에서 말뚝 박지 않았을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나는 군수과 계원이었고, 기껏해야 담론이나 제공하는 일을 하던 내가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물질을 운송하는 일을 하니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내가 진보주의자들에게 섞여서 살던 시절, 나는 ‘아니 뭐 여러분에겐 끔찍했겠지만 세상엔 군대 생활에서 좋은 경험을 한 이들도 있는게 아니겠습니까…’라는 식으로 눙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경험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을 본다.

 

‘나는 군대에서 나쁜 것들만 배웠다’라는 진술도 마찬가지다. 이 경험 역시 매우 소중한 것이다. 콕 집어 예를 하나 들자면 나쁜 사람을 함부로 욕하는 그들의 알량한 양심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나쁜 것들’에 투항할 수 있는지를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함부로 욕할 게 아니라 그 ‘나쁜 것들’이 오지 않을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갈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사실 그렇게까지 투항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 자신의 선량함에 대해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문제는 나는 거기에서도 배운 게 있다고 하는데, ‘빻은 행위’를 하는 자신을 보며 모멸스러웠다는 그들은 ‘빻은 행위’를 하는 생활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군대와 생활인들을 혐오하면서 본인들의 자기정당화를 하는 듯 했다.

 

그래가지고 생활인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의 무능함과 나의 그럭저럭한 적응력을 구별시켜줬다는 점에서라도 내 군대 생활을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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