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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6 09: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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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같은 엉터리 말고, 경제나 사회 인프라, 복지 등 객관적 데이터는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말한다
-베어그릴스 “생존을 위해 물, 음식, 휴식 등 육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
-불만 불평 부정 저주 자학 등 불행한 정서 전파가 국가적 시대정신이라면, 이 나라는 생존하지 못할 것


대한민국은 대다수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잘 사는 나라’다. 행복지수 같은 말도 안 되는 통계 말고, 경제 수준이나 사회 인프라 수준, 복지 수준 등을 보여주는 진짜 객관적 데이터를 살펴보면 한국은 명실상부 선진국이다.


그런데 그 국민들은 늘 죽는 소리를 한다.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유행하고,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이 살기 힘든 나라라며, 이민 이야기를 꺼낸다. 도대체 왜 이럴까?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중 <인간 vs 야생 (Man vs Wild)>이 있다. 일명 ‘생존왕’ 베어 그릴스의 TV 쇼다. 오지 중의 오지로 찾아가 극한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를 보여주는 쇼인데, 많은 사람들이 개미나 지렁이까지 주워먹으며 살아남는 베어 그릴스의 생존력에 감탄하며 쇼를 감상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의 기행을 구경하는 재미로 쇼를 봤는데,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그에게 인간적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물, 음식, 휴식 등을 확보해 육체를 건강하게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이에요.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어요.”

 

위기의 상황마다 베어 그릴스는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수십 편에 달하는 에피소드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주어진 상황에 불평을 늘어놓거나, 문제에 분노한 적이 없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활로를 개척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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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눈을 붙이고 잠을 자는데 임시 거처에 뱀이 들어와 깨게 되면, “좋은 영양분이 알아서 찾아오다니, 운이 너무 좋은데요!”하며 웃는다. 물을 잘못마셔 심한 복통에 시달리면, “이쪽 물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배웠네요, 다음부터는 조심할 수 있겠어요”하며 싱긋 웃는다. 그야말로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상황 속에 있을 때에는, “이런 굉장한 모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안을 때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요”라며 기운을 얻는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리도 긍정적일 수 있을까. 쇼를 보는 내내 하던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첫 시즌, 첫 화, 그러니까 베어 그릴스가 처음 ‘인간 vs 야생’을 찍었을 때를 다시 보게 되었다. 수십 편의 에피소드 동안 자기 개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그가 이 쇼를 진행하기까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몰랐는데, 첫 에피소드에서 잠깐 스치듯 이야기 한다.

 

2~3일 동안 벌레 몇 마리, 물 몇 모금 밖에 못 마신 상태에서, 야생 그리즐리 베어의 영역으로부터 도망치던 처참한 상황이었다. 베어 그릴스는 숨을 헐떡이며 지나가듯 말한다.

 

“낙하산 사고로 등이 부러지고,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 누워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좋아하던 등산이나 낙하산 같은 모험을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몇 번이고 곱씹었죠.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운이 좋아, 다시 모험에 나설 수 있게 되었어요.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쇼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이렇게 힘이 들 때마다, 저는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를 떠올려요.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을 했었다. ‘자연이 준 스파게티’라며 인상을 쓰면서도 지렁이를 맛있게 먹으려는 모습을 보며 그가 타고난 ‘긍정왕’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인생에 어두운 시기가 있었고, 그가 그 거대한 위기를 딛고 일어나, 늘 웃으려 노력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는 그 인생의 그림자에서 배움을 얻었고,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정신부터 일으켜세워야 한다는 진리를 경험으로 배웠다. 아주 구체적인 생존 기술을 가르쳐주는 TV 프로그램에서,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이유였다.

 

생존의 필수요소. ‘긍정적인 마음가짐’. 갑자기 베어 그릴스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다. 한국은 ‘부정적인 마음가짐’에 침식된 나라다. 전 세계 220여개 국 중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설명하면, 이를 어떻게든 반박하려고 애를 쓴다. 모두가 ‘헬조선’이라고 자조하고, 헬조선이 아니라는 사람에게 극빈층의 몇 가지 극단적인 사례를 가져와 면박을 준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라며 스스로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고 ‘노예’나 ‘노력충’이라며 폄하하고, 반대로 ‘이 나라에서는 노력해도 소용없다’라는 말을 종교적 교리처럼 전파한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침묵의 나선’ 효과가 일어난다. 나는 나름 내 나라에 만족하고, 내 삶에 만족하고, 내 미래에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주위에서 그게 아니라고 거품을 물며 반박하니 입을 다물게 된다. 목표의식을 가지고 노력하며 진취적인 삶을 사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입을 다물어버린다. 한국인은 ‘한의 민족’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시끄러운 불만 불평 부정 저주 자학이 대중정서를 지배한다.

 

애당초 ‘긍정적인 자세’를 배척하고, ‘부정적인 자세’를 장려하는 사회가 행복한 게 이상한 거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그게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조금 더 가지려고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들이 일으켜세운 나라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가지고 있고, 충분히 누리고 있는데도 이는 애써 무시하고, 자신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며 불행전파를 하는 사람들이 끌어내리고 있다.

 

이것이 국가적 시대정신이라면, 이 나라는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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