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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3-01 09: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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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194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이 국가로 출발한 것은 1948년이라고 밝혀
-김영삼 1994년 광복절 “상해임정 청사 복원으로 대한민국 정통성 확고해져” 기념사가 오해 불러
-1948년 건국을 공식화하는 건국 60주년 기념행사에 야당과 광복회 불참… 1919년 건국설 확산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8월 18일 리얼미터가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보는 사람이 63.9%이었다. 반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보는 사람은 21%였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은 매우 작은 구멍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으로 서울 보신각에서 선포된 한성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은 중국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말했다. 이승만 박사는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1948년 9월1일 관보에서 연호를 대한민국30년으로 표현했다. 194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공용연호가 없었다.

 

1951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1919년(기미년)에 우리 13도를 대표한 33인이 우리나라 운명을 개조하기 위하여 1776년에 미국 독립을 선언한 미국 창립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 한국을 독립민주국으로 공포한 것입니다. 이 민주정부가 서울서 건설되어 임시로 중국에 가있다가 3년 전 오늘에 우리 반도 남방에서 실현된 것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우리 영토에서 국가로 출발한 것은 1948년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194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8월 15일 오늘 거행하는 이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여 경축하는 것입니다.” “이 건국 기초”, “이 새로 건설되는 대한민주국이”, “이 정부가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서서” 라고 했다. 1949년에는 “민국 건설 제1회 기념일인 오늘을 우리는 제4회 해방일과 같이 경축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했다.

 

1950년에는 “금년 8·15경축일은 민국 독립 제2회 기념일로서”라고 했다. 1952년에는 “지금부터 4년 전인 1948년 8월 15일에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건설한 것”이라고 했다. 이승만 박사는 1945년 해방되었고 대한민국이 1948년에 시작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또한 1919년 한성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했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대통령 연설문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당시 사람들은 1948년을 건국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민국이 탄생한 것을 경축한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대통령들도 모두 1948년을 건국시점으로 보았다. 그러다 1992년 8월 31일 1919년을 건국 원년으로 봐야 한다는 동아일보 기사가 나왔다. 여기서부터 1919년 건국 주장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김영삼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언급은 무시했다. 그 대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을 강조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국 땅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워 근대국가의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자유, 평등,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 건설에 나섰던 것입니다. 새 문민정부는 이 같은 임시정부의 빛나는 정통성을 이어받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1994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상해임정 청사를 복원하고, 애국 선열들의 유해를 고국 땅에 모셨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해졌습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건국으로 보는 것 같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언급하면서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을 같이 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이후 2007년 10월 <시대정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승만 박사를 나라를 건국한 국부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여 1948년을 건국으로 보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재임시절 한 연설이 퇴임 이후 한 발언보다 더 중요하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1919년 건국설을 믿는 사람들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뒤로 가면 갈수록 더 힘을 받았던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도 1948년 건국을 인정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건국 50주년 사업을 했다. 하지만 엉뚱하게 건국에 반대하신 김구 선생을 기리는 활동을 했다. 1998년 12월 3일에 김대중 대통령이 백범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한다. 1999년 8월 3일부터 백범 기념관 건립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2000년 6월 26일에 기공식을 가졌고, 2002년 10월 22일에 개관하였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이 김구 선생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독립운동가로 존중하는 뜻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건국을 기념하는 것에 있어서 김구 선생은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심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존경을 결합하고 이것이 확장되면서 1919년 건국이 사실처럼 굳어지게 된 것 같다.

 

1919년 건국설이 확신해가던 중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즉, 1948년 건국을 공식화하는 행사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였다. 야당도 그랬고 광복회도 그랬다. 그래서 건국60주년을 기념하는 광복절에는 야당과 광복회가 불참하는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이미 1919년 건국설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그 현상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건국 시점을 놓고 혼란 속에 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초심이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은 “소생도 가끔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사옵니다. 그럴 때면 저잣거리로 나가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봅니다”라고 말한다. 정도전은 혼란스러울 때 자신의 초심인 백성에 대한 사랑을 다시 되새긴다.

 

대한민국도 정도전과 같이 초심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을 봐야 한다. 그래야 임시정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광복절 경축사 및 건국 관련 발언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변의 상황도 같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바르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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