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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08 12: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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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각 부분이 전체적 유기성 고려하지 않고 따로 노는 ‘부분의 독자성’이 우리 문화 DNA
-우리나라 소설은 스토리 구조가 평이하고, 평면적이고, 단순하다. 입체적이고 다면적이지 못하다
-서양 근대소설의 양식적 특징을 제대로 소화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일종의 소화불량 상태 아닐까


우리나라 전통 구비문학(口碑文學)을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부분의 독자성’이라는 게 있다. 이것은 꼭 구비문학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고전문학 아니 실은 현대문학과 나아가 정신예술 분야 전반을 관통하는 DNA 비슷한 것 아닌가 싶다.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는 각 부분이 전체적인 유기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따로따로 논다는 의미이다.


단적인 사례가 판소리의 스토리. 가령 <춘향전>을 보면 16살 순진한 처녀 춘향이가 막상 이도령과의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에서는 마치 닳고닳은 화류계 여성처럼 운우지정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된다. 앞뒤가 안맞는, 상호모순되는 이야기 구조를 별로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들이미는 것이다.


판소리는 사실 완창보다는 각 부분부분을 따로 떼어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스토리나 논리의 정합성을 별로 의식할 필요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저런 ‘부분의 독자성’은 우리나라 문학의 서사구조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이런 DNA는 근대소설 형식과 좀 조화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포함한 서양식 스토리텔링 구조 전반과의 관계도 그런 것 같다. 서양에서 유래한 근대소설 양식은 스토리텔링 전반의 유기적 연계와 정합성, 합리성이 중요한 요소이다. 의식적으로 그런 특징을 파괴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바로 서양 근대소설의 핵심이 스토리텔링의 유기적 통일성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소설은 여전히 서양 근대소설의 저런 양식적 특징을 제대로 소화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일종의 소화불량 상태인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뭐라고 꼬집어서 짚기는 어려운데, 우리나라 소설은 스토리 구조가 매우 평이하고, 평면적이고, 단순하다. 입체적이고 다면적이지 못하다.


플롯의 중첩도 보이지 않고,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느낌도 없다. 그냥 옛날 육전소설의 형식에 현대적인 시대배경만 그대로 옮겨놓은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일본식 사소설(私小説)의 영향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거기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한국 서사문학의 특징이 일본식 사소설 형식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런 문제점이 개선되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 유명짜한 작가의 작품들이 일제시대나 50~60년대의 작품보다 진보한 것 같지 않다. 대표적으로 황석영의 소설을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김동리나 박태원, 이태준이 황석영보다 100배쯤은 탁월한 소설가라는 생각을 한다.


황석영 이후의 작가들은 거의 읽지 않아서 모르겠다. 좀 달라졌으려나? 아, <경마장 가는 길>은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왜 그렇게 단순 나열식인지 좀 이해가 안 가더만. 더 재미있게, 긴장감 있게 쓸 수 없었을까? 구성이라는 걸 좀 해보라는 얘기다. 구조(structure)나 건축(architecture) 즉, 입체라는 관점을 갖기가 그리 어려울까?

▲ 이 영화 스토리텔링의 후반부 절반 가량이 앞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진다.


고백하자면 영화 <기억의 밤>을 보면서 느닷없이 우리나라 구비문학부터 근대 소설문학까지 연결되는 불만이 떠올랐다.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와 서사적 긴장감을 갖춘 작품인데, 스토리텔링의 후반부 거의 절반 가량이 영화 앞부분에 대한 일종의 설명으로 일관한다. 그러다 보니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신파까지 동원되고. 영화는 재미있게 봤다. 재미있게 봤는데, 그렇다는 얘기다.


설마 이걸 스포일러라고 하지는 않겠지?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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