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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7 07: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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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사용자들은 주인공과 행동 중심으로 생각. 한국어 사용자들은 환경, 관계, 상태 중심으로 생각
-중국의 정치는 관리와 통제… 서양의 정치는 국가의 본질에 대한 탐구. ‘정의와 선’의 구현 메커니즘
-정치철학의 부재… 정의롭게 다스리는 어진 임금을 우리 손으로 뽑는 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본질


언어는 사회 구성원의 약속이다.
한글은 효율적 글자다. 한국어의 문법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한국어의 단어들은 문제가 있다.

 

글자는 세계관을 나타낸다. ‘천지인’이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이다. 음절문자 알파벳은 우가릿인과 페키니아인이 그 원형을 만들고, 고대 그리스에서 정립되었다. 그 글자를 만든 사람들, 즉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은 아직 서양 문화를 지배한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일 뿐이다’라는 말을 완전히 부정하기 힘든 이유는 이 때문일지 모른다.

 

▲ 광화문에 대통령이 아닌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는 이유는 우리 언어에 있다.


문법은 사회관을 나타낸다. 서양의 많은 언어와 한국, 일본의 문법은 다르다. 정 반대이다. 학자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인공과 행동을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환경, 관계, 상태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영어는 동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한국어는 정적이고 조직중심적이다.

 

활발한 서양인, 조용한 동양인이라는 인식은 사실에 가깝고, 그 원인은 사용하는 문법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인의 활발함? 중국어 문법은 영어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단어는 역사와 관념을 나타낸다. 한 언어에 ‘축구’라는 단어가 있다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사에는 축구가 있다. 그 ‘역(易)’ 역시 성립한다. 축구라는 단어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사에는 축구가 없다.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 외에 관념어 역시 마찬가지다. Competence(능숙함)라는 단어는 능숙한 기술자의 역사가 있는 사람들의 언어 속에서 발견되리라. 또 그 단어를 계속 사용하면서 후세가 조상들을 기억하며 역사를 재편집할 때 그 단어를 사용한다.

 

정리하자면, 역사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단어는 다시 역사를 쓴다.

 

이처럼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고 문화를 지배하며 역사를 지배한다. 결과적으로 국가를 지배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언어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는가? 실제 언어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 사고, 문화, 국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단어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한자어는 문제다. 한자어는 본질적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쓸 때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자주 쓰는 관념어, 예를 들어 ‘존중’이라는 단어는 자주 쓰여서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자주 쓰이지 않는 단어들은 언어의 본질을 벗어나서 문제가 된다. 내가 인식하는 단어의 본질과 그 사람이 말하는 단어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약속되지 않으면 언어가 아니다.

 

오해하지 않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자어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은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나름대로 지키고 재편집하며 발전하고있다. 하지만 괴리된 두 개의 역사에서 발생한 단어가 한 언어에 통합되어 혼용되면 컴퓨터의 프로그램 충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가령, ‘정치’라는 단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이 단어는 ‘정사 정(政)’에 ‘다스릴 치(治)’를 쓴다.

 

정사를 다스린다. 즉 나라의 일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다스리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관리하고 통제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자가 만들어진 중국의 정치는 그렇기 때문에 관리하고 통제하는 정치다. 언어는 국가를 지배한다.

 

영어로 정치는 politics다. 구글에 검색해보면 웬 아저씨가가 ‘poly(다수)+tics(기생충)=다수에게 기생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이야기를 해 놓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원래 politics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polis에 학문을 뜻하는 tics를 합친 것이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학문이 서양문화에서의 ‘정치’다. 국가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말하는 것이지 통제와 관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그 중심에 신전이 있고, 정의와 선은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polis 안에 포함되어 있다. ‘정의와 선’의 구현 메커니즘이 서양의 politics를 의미한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정치철학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럼 대한민국의 정치는 중국 문화의 정치(政治)에 가까운가, 아니면 서양 문화의 politics에 가까운가?

 

본질적으론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며 서양의 politics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다스림의 정치다. 가솔린 차를 타는데 경유를 넣은 것과 같다. 둘 다 같은 기름인데 질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다.

 

가솔린 차에 경유를 넣으면, 필터가 막히고 나중엔 엔진이 녹는다.

 

더 말하면 입 아프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국의 정치 싸움은 어떻게 다스릴까 하는 싸움이다. 중국의 정치는 ‘다스림의 정치’ 이기 때문이다. 누가 위에 오르느냐 하는 힘이 필수이다. 따라서 정치 싸움이 힘의 싸움이 되고, 힘의 싸움에선 승자가 패자를 죽이는게 본질이다. 따라서 한쪽이 이기면 그 쪽이 다스리는 대로 따르는게 중국 정치의 본질이다. 상하이방은 그렇게 중국의 정치를 손에 쥐었다.

 

미국의 정치 싸움은 어떻게 선을 구현할까 하는 싸움이다. Politics는 국가가 어떻게 선을 구현하는가가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정의로운자는 선을 구현하고, politically correct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은 정의를 얘기하고, 자유를 이야기한다. 요즈음 보여주기식 정의 전쟁, 즉 Political Correctness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국과 일본은 나름의 합의가 있다. 국왕과 천황이 그 상징이다. 영국의 국가 은 통치 세력이 신의 의지, 즉 올바름에 대한 의지를 실현함을 상징한다. 천황이 신의 후손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신 정의롭게 다스리면 그건 봉건국가의 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헌민주주의를 도입하여, 왕에게는 선을 상징하게 하고 다스리는 것은 국민의 주권을 이양 받은 의회가 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입헌 민주주의에서 왕과 의회가 공존하는 것은 이렇게 현실에서 정당화된다. 일본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꼬일 대로 꼬였다. 아무개는 다스림의 정치를 얘기하고 아무개는 선으로의 정치를 얘기한다. 문제는 한 정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끼리 맨날 싸우게 된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니 말이 통하지 않고 이는 필시 싸움으로 귀결된다. 이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반도 역사에서 정치라는 단어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우리 역사에서 주권자는 ‘다스리는 왕’이었기 때문에, politics와 ‘다스림’ 중 한반도의 역사는 다스림의 정치와 가깝게 형성된다. 대통령과 어진 임금을 개념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광화문에 동상을 세워 기념할 대통령이 탄생하지 못한 것은, 그리고 오히려 어진 임금인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는 이유는 우리 언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치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정의롭게 다스리는 어진 임금을 우리 손으로 뽑는 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이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임금은 뽑히는 게 아니라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이 있는 해마다 다음 대통령을 예측하는 역술인에 대한 기사가 높은 조회수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의롭게 다스리면 그건 어진 임금이지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다스리기 위해 선으로 화장하는 이는 도리어 파시즘을 불러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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