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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2-10 17: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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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피할 그늘, 머리 식힐 벤치 하나도 없는 광장은 노출증(症) 걸린 사람에게나 적합한 장소
-왕정의 상징 육조거리가 공화국 시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세월호 천막들 상설시설화한다니
-대형광장은 나치독일이나 소련 등 전체주의 전유물. 숭고미학 레토릭 채택한 ‘빛의 대성당’ 등


▲ 광화문광장 1만8천여평의 보행 광장 조감도. 세종로와 율곡로의 찻길은 모두 지하로 들어간다.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 논설위원의 칼럼 ‘잃어버린 광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의 말마따나 광화문 광장은 우선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 남의 시선을 덜 느껴도 되는 아늑한 장소, 앉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벤치 같은 게 하나도 없는 삭막한 광장이다.


[관련기사(조선일보): [만물상] 잃어버린 광장]


넓이가 1만8700평방미터나 되는 규모부터 위압감을 주고, 공공건물들로 둘러싸인 광장 한복판은 노출증(症)에 걸린 사람들에게나 적합한 장소다. 거기에 5년 동안 시민의 공공장소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세월호 천막들. 그런데 서울시는 이 세월호 천막을 철거하기는커녕 상설 시설로 대체하여 오는 3월에 개관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또 강남의 현대자동차 사옥(구 한전 사옥)과 코엑스 사이 영동대로에 광화문광장 1.6배 크기의 거대 광장을 하나 더 만드는 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지하에 복합 환승센터와 쇼핑몰을 넣고 차들은 광장 밑으로 지나게 한다는 것이다. 거대 광장 집착증이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달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공사 완료 시점이 대통령 후보 경선 이전인 2021년으로 잡혀 있어 박원순 시장의 대선 선거운동이라는 논란도 뒤따랐다. 총 천억 원 대의 공사비를 들이는 이 기획은 세종문화회관 쪽 차도들을 전부 없애고 정부종합청사 앞에 공원을 조성하여 지금보다 광장을 3.7배 더 크게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건축가 승효상은 2월 1일 중앙일보 양성희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육조거리를 살리고 광화문 앞 해태와 월대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서울도 제법 역사 도시로서 경건한 공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이것이 서울을 민주주의 도시의 풍경으로 만드는 중요한 기점이라는 거였다. 왕정의 상징인 육조거리를 광장화하는 것이 민주공화국 시민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큰 광장 아닌가?”

“역사적으로 광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담론의 바탕이지, 권력자를 기리는 공간이 절대 아니다.”


대담자 질문에 대한 승효상의 답변은 이런 말이다. 그리스 아고라나 로마 포럼처럼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내뱉는 게 광장의 역할이므로, 광장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도시 시설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이다. 승효상은 온 국민이 문화적으로 무식하고 몽매한 대중으로 보이는가? 확성기도 없는 고대 시대에 자기 의사를 발표하는 장소인 광장은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어느 도시건 광장이라 이름 붙은 장소는 거의 동네 공터 수준이다.


▲ 건축가 알버트 슈피어가 디자인한 뉴렘베르그 퍼레이드 광장은 130개 대공탐조등으로 조명하여 빛의 궁전 혹은 얼음의 궁전으로 불렸다.


대형 광장은 나치 독일이나 소련 같은 전체주의 국가의 것이다.  20세기의 전체주의 체제는 대중을 유혹하기 위해 숭고미학의 레토릭을 채택하였다. 숭고의 효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전형적인 예가 나치의 뉴렘베르그 대중 집회 장소인 ‘빛의 대성당’이다.


건축가 알버트 슈피어(Albert Speer)가 디자인한 뉴렘베르그 퍼레이드 광장은 130개 대공탐조등(anti-aircraft searchlights)으로 조명하여 빛의 궁전 혹은 얼음의 궁전으로 불렸다. 무려 34만 명(이 때도 백만은 아니었다)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거대한 광장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빛으로 번쩍일 때 사람들은 전율을 느끼며 스스로 파시스트가 되었다.


현 좌파 정부와 그 지지 세력인 문화계 인사들이 이렇게 드러내 놓고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여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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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 박정자 '제3의 길'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석사, 박사.

    역서 :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현대세계의 일상성’, ‘사상의 거장들’ 외 다수.
    저서 : ‘빈센트의 구두’,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시선은 권력이다’,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잉여의 미학’,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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