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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2-08 19: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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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좌파단체 [뉴시스]


Ⅰ. 서론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한 한국 정부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하여 “완전한 비핵화를 통하여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데 합의하였고, 이것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되었다. 2018년 9월 18-20일 간에 개최된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든다는 데 합의하였다. 아직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전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2018년에 형성된 계기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다. 


2018년 북한의 비핵화에 관한 협상의 과정에서 중요한 의제로 부각된 주제는 ‘종전선언’이었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는 것으로 합의하였고, 북한은 미국의 신뢰도를 확인하는 방편으로서 미국에게 이에 동의할 것을 촉구하여 왔다.


실제로 종전선언은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 시 미국의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전제로 그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다만, 북한은 종전선언을 핵폐기 협상의 진전을 위한 조건으로 인식하는 반면에 미국은 핵무기 폐기 이후 가능한 조치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어 서로가 인식하는 선후와 비중이 달라서 아직까지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비핵화 협상의 지체로 종전선언에 관한 논의도 수면 하로 들어갔지만, 언제 갑작스럽게 대두될지 알 수 없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한국 내에서도 찬반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찬성하는 입장은 종전선언은 북한의 핵무기 유도에 유용할 수 있고, 정치적 선언에 불과할 뿐이라서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전선언은 “6.25전쟁”의 종료를 선언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6.25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창설된 유엔군사령부(UNC: United Nations Command)가 해체되고, 결국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동맹의 약화로 연결될 수 있다면서 위험을 강조한다.


양 주장 모두 미래에 있을 수 있는 현상에 대한 판단이라서 어느 것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낙관론에만 치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여 비관론에 사로잡혀 무조건 반대할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종전선언에 관하여 언론에서는 활발하게 토론되었지만, 학술논문으로 작성되어 발표된 것은 많지 않다. 2006년 부시대통령의 제안 이후 한국 내에서도 평화협정 이전의 단계로서 종전선언이 유용할 수 있다는 논의가 있었고, 이에 따라 종전선언에 관한 국제법적인 측면이 분석되었다(이근관 2008, 164-192).

최근에는 그러한 국제법적인 분석과 함께(김선표 2018, 109-139), 한국의 상황에서 실행가능성을 분석하기도 했다(박태균 2018,  171-198).


그러나 언론과 사회관계망(SNS) 상에서 치열하고 토론되고 있는 종전선언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균형되게 정리하여 발표한 논문은 없었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본 논문에서는 종전선언을 둘러싼 제반 개념을 정리하고, 지금까지의 경과를 정리한 다음에 최근 국내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긍정과 부정의 쟁점들을 체계적으로 구분하여 대비시킨 후, 안보의 시각에 초점을 맞추어 그 기회와 위험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종전선언에 관한 개념과 사례를 근거로 북한이 주장해온 바를 분석한 후, 한국의 입장에서 종전선언을 어떻게 인식 또는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할 것이다. 따라서 제2자에서는 종전선언 관련 주요 개념과 사례, 제3장에서는 종전선언에 관한 북한 주장의 경과와 의도 분석, 그리고 제4장에서는 한국의 입장에서 종전선언이 갖는 기회와 위험을 열거해보고, 제5장 결론을 통하여 몇 가지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 종전선언 관련 주요 개념과 사례


‘전쟁이 종료되었다’라는 선언 자체만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종전선언 자체는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토론되는 주제는 아니다. 전쟁을 종료한 후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추가 전쟁예방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강구하여 합의하는 내용, 즉 평화협정에 관한 사항이 국제적으로 토론되고, 실제로 합의 및 시행되어왔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나 평화협정의 부분이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들과 관련하여 설명될 수밖에 없다. 


1. 평화와 평화체제


대부분의 추상적인 용어가 그러하지만 ‘평화’에 관해서도 보편적이면서 명확한 정의가 존재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이 동의하는 어떤 범주는 존재하겠지만, 개인, 조직, 국가별 정의에 사용하는 용어나 방향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평화에 관한 정의 자체가 국제정치의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 국가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을 평화로 포장하여 제시 또는 선전하고, 거기에 상대가 동의하도록 유도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따라서 평화의 정의는 점점 혼란스럽게 되었다. 그래서 국제정치학에서는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의 부재”(absence of war)라는 요소로 평화를 정의하고 만다(Webel and Galtung, ed. 2007, 6-7; 이종석 2008, 8; 장용석 2010, 126). 평화는 “전쟁과 전쟁 사이의 일시적인 안정”에 불과하다고 정의할 정도로 비관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김준형 2006, 26). 

 
전쟁이 없는 상태로만 평화를 인식하기에는 인간의 이상이 커서 대두된 개념이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이다. 이것은 노르웨이의 갈퉁(Johan Galtung)이 창안하였는데, ‘전쟁의 부재’로 정의되는 현실주의적 평화를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로 보고, 그에 추가하여 국가 내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폭력 등이 모두 사라지는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규정하였다(Galtung 2003, 69; Galtung 1996; 강종일 외 역 2000, 22). 전쟁의 부재에 그치지 말고 더욱 노력하여 평화의 수준을 높이기를 촉구하는 개념이고, ‘소극적 평화+’라고 할 수 있다. 


평화체제는 평화에 ‘체제’를 추가한 것으로서,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평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구조나 장치를 구비한 상태를 말한다. 외교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남북한을 비롯한 관련국 상호간에 정치적·군사적 신뢰가 구축되어 법적․제도적 및 실질적으로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보장되어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외교부 2018).


다만, 평화체제를 확립하고자 한다면 서로가 평화를 유지하기로 약속하는 문서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세부적인 조치, 기구, 기타 사항들이 구축되어 평화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지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출발의 시각에서 보면 평화협정이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보면 평화보장 장치의 실질성이 중요하고, 결과로 보면 평화상태의 지속이 중요해진다. 


2. 평화협정과 종전선언


‘평화협정(조약)’은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하는 문서인데, 정해진 형식이나 내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국 간 전쟁 및 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모든 당사자가 합의의 조건에 따라 의무를 준수하도록 하는 공식적인 협정(조약)”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황수환 2016, 65). 평화협정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협정이기 때문에 당연히 종전에 관한 언급을 포함하여 재발방지를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열거된다.


평화협정은 주로 군인들이 일단 전쟁을 중단하게 되면 이것을 정치적으로 종결지으면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합의를 포함하여 국가 차원에서 체결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제1차 세계대전의 경우 1918년 11월 7일 군사지휘관들이 정전협정을 체결하였고, 이로부터 7.5개월 경과한 1919년 6월 28일 관련국 대표들이 파리에서 “베르사이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이라고 불리는 조약을 체결하여 정치적으로도 전쟁이 종식되었음을 선언하였으며, 이것을 보통명사로는 ‘평화협정’이라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시 태평양 전쟁의 경우에도 1945년 9월 2일 일본군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후 1951년 8월 13일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 조약”(Treaty of San Francisco)이라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다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평화를 고양하기 위하여 체결해온 다양한 협정들을 포괄적으로 평화협정이라고 언급하듯이(황수환 2016, 61-97; 황수환 2017, 33-63), 평화협정이 반드시 전쟁 이후에만 체결된다고 볼 수는 없고, 평화를 고양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면 평화협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화는 약속 자체보다는 그것을 준수하여 평화상태를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평화협정이 평화의 절대적 요소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 유럽전역에서도 공식적인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지만, 유럽은 평화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도 1991년과 2003년 이라크를 상대로 두 번이나 전쟁을 수행했지만 그의 종식에 관하여 어떠한 정치적 협정도 체결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유럽의 평화상태가 체결한 아시아에 비해서 나쁘지 않듯이 평화협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평화상태의 지속이고, 이런 이유로 평화협정의 중요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김명섭 2013, 18).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을 예비적 평화조약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승전국에 의한 일방적인 종전선언이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을 대체하기도 한다(Baxter 2013; Stone 1973, 김명섭 2013, 20에서 재인용).


전쟁의 재발 방지나 평화의 보장장치가 없이 전쟁의 종료만을 선언하는 것이 실효성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종전선언은 의미있게 논의되지 않았다. 양측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의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과 그것을 어겼을 경우의 처벌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문서를 만들어 교환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종전선언이 아니라 평화협정이나 조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종전선언은 독립적 개념이나 의미보다는 평화협정과 연관하거나 그의 부분으로 설명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박태균 2018,  171-198).


다만, 평화협정의 경우 합의해야할 사항이 워낙 많아서 체결이 어렵거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에 앞서서 전쟁을 종료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자는 의지라도 밝히자는 제안이 종전선언이라고 할 것이다. 만약, 한반도에서의 종전선언이 남북관계 개선, 북한의 비핵화, 나아가 한반도 평화정착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면, 그것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3. 종전선언의 사례


어떤 국가가 국내적인 필요성에 의하여(예를 들면, 평화조약의 발효에 부응하거나, 전쟁의 승리를 선언하거나, 어떤 전시에 적용되는 국내법이나 규정을 중단해야 하거나, 군인들의 전시 복무와 평시 복무를 구분해야할 필요성 등) 종전을 선언한 사례는 없지 않다. 다른 국가들에게 있었겠지만, 미국의 경우 1947년 9월 15일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이 이탈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와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는데, 이 날은 이들 국가와 미국 간의 평화조약이 발효하는 날이었다. 이어서 미국은 독일에 대해서도 10월 24일 종전을 선언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2년 4월 28일 일본과의 전쟁종료도 선언하였는데, 이 날 역시 일본과의 평화조약이 발표되는 날이었다(김선표 2018, 117). 1991년의 걸프전쟁에서도 당시 부시대통령(George H. W. Bush)은 1991년 2월 27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전쟁의 종료”(The war is over)를 선언한 바 있다. 다만, 2003년의 이라크 전쟁에서 부시대통령(아들)은 5월 1일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은 계속되어야 한다면서, “이라크에서의 주요 전투작전이 종료되었다”(Major combat operations in Iraq have ended)라는 말로 사실상 전쟁을 종료시키는 데 그쳤다.


분쟁 상태에 있는 2개 국가가 “전쟁이 종료되었다”라는 사항만 선언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다만 유사한 사례로서 한국에서는 몰타 정상회담(Malta Summit)이 언급된 적이 있다(김광수 2018, 6). 이 정상회담은 1989년 12월 2-3일 간 미국의 부시(아버지)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총서기장 간에 열린 정상회담으로써, 이 회담에서 두 정상은 어떤 합의문에도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통하여 냉전의 종식을 선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Bulletin 2001).


몰타에서 냉전종식의 의사가 충분히 개진 및 언론에 보도된 것은 사실이고, 이를 계기로 미국과 소련이 냉전의 해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볼 수 있으며, 그래서 종전선언의 사례로 원용할 수 있다는 해석일 것이다.


실제로 몰타회담이 있은 1년 후인 1990년 11월 19-21일 사이에 파리에서 미국, 캐나다, 소련을 포함하는 유럽국가들이 ‘파리헌장’(Charter of Paris)을 체결하였는데, 이것은 평화협정 수준이고, 그렇다면 몰타에서의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으로 연결되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헌장에서 관련 국가들은 “대결과 분리의 유럽시대는 종료되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존중과 협력에 기초한 관계임을 선언한다”라는 원칙 하에 인권·민주주의·법치, 경제적 자유와 책임 등 10가지의 원칙과 미래를 위한 지침까지 제시하고 있다(OSCE 1990). 실제로 이 헌장이 채택된 이후 동구권 국가에서 자유선거를 보장하기 위한 기구도 구성되었고, 외교장관 간의 회담도 정례화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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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휘락 논설위원 박휘락 논설위원의 다른 기사 보기
  •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원장)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국제정치 박사
    미국국방대학교 대학원 국방안보 석사
    2014~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원장
    2012~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부교수
    1978~2009 대한민국 육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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