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케어의 문제점을 여러 번 썼지만, 나는 사실 문케어 시행을 바라는 사람이다.
나는 월급쟁이 의사다. 비급여를 처방한다고 내 주머니에 더 들어오는 돈은 없다. 머리 아픈 건 질색이다. 앞으로도 월급 타먹고 사는 게 꿈이다. 경제적 이득 때문에, 문케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모든 의료에 보험을 적용해주면 좋겠다. 현장에서 환자를 볼 때, 보험이 안돼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공의 때, 선배가 이런 얘길 해주었다.
“네가 앞으로 응급실에서 보게 될 중환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냐?”
“가난에 짓눌려 죽길 택한 환자야. 마지막 남은 쌈짓돈 털어 농약을 사서, 그걸 마신 환자들이지.”
의사들이 돈만 밝힌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살면서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몇 번이나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지 궁금하다.
나는 돈 때문에 치료(생명)를 포기하는 사람을 부지기수로 만났다. 수 많은 가정의 어려운 역사를 들었고, 공감해 왔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한 푼이라도 부담을 줄이면서 효과를 보는 방안을 연구해 줬고, 때로는 남은 자원을 몰래 빼돌려 몇몇 치료를 공짜로 해 준 적도 있다.
내가 특별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내 주위에 있는 의사들은 누구나 이렇게 행동한다. 환자의 정신적, 육체적 사정 뿐 아니라, 경제적 사정까지 고민하는 건 힘든 일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눈 앞에 환자를 두고. 그 치료법을 돈으로 저울질하다 보면, 인간성이 말살당하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치료비는 오히려 남은 보호자마저 죽이는 행위가 되고 말기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만 한다. 그 무거운 결정은 언제나 의사의 몫이다.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돈 때문에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어찌 없겠는가? 가능성이 아무리 낮은 환자라도, 끝까지 치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의사이기 이전에 나도 사람인데.
문케어 이후가 기다려진다. 앞으로는 이런 고민 없이, 모든 환자에게 마음껏 치료를 펼칠 수 있을테니까.
물론 걱정되는 바는 있다. 정책 실현을 위해 현재 비급여 시장의 규모를 파악했을 것이다. 지금 가진 재정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애초에 비급여로 처방내지 못한 환자가 무수히 많다. 비싼 가격 때문에 처음부터 비급여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이 많다. 이 모든 환자가 처방 대상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 비용은 현재 계산을 아득히 넘어설 것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급여 처방에 한해서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욕구가 일치한다. 급여 처방은 많이 할수록 둘 모두에게 좋다. 환자는 비싼 처방을 공짜로 해서 좋고, 의사는 매출이 늘어서 좋다. 처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처방을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의료의 특수성은 그걸 쉽지 않게 할 것이다.
의료에서 검사 결과는 객관적이지만, 검사를 시행하는 이유는 주관적이다. 어떤 검사와 치료를 왜 하느냐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달려 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오간 문진 내용은 챠트에 활자로 기록될 뿐이다. 몇 줄 챠트를 읽고 환자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검사와 치료의 필요 여부를 나중에 평가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모든 의사와 환자가 완벽하게 선량하지 않은 이상, 단 몇 줄 챠팅으로 도덕적 해이는 쉽게 일어날 것이다. 욕구가 일치한 의사와 환자는 감시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방안을 암묵적으로 함께 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감시 인력이 늘게될거고, 이 또한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감시하는 쪽과 피하려는 쪽은 끝없이 상대의 존재를 이유로 서로의 시장을 키울 것이다.
당연히 총 의료비는 오를 수밖에 없다. 보장을 늘리면서도 총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은 녹록치 않다.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고 의료 기술의 발전은 계속된다. 가만히 있어도 의료비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는 여기서 더 많은 보장이라는 돌을 하나 더 얹는 중이다.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복지의 확대에 찬성하고, 그 때문에 늘리는 세금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문케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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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hytimes.kr/news/view.php?idx=228-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