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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1 18:16:49
  • 수정 2018-01-21 18: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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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가치설? 일 못하는 노동자가 숙련 노동자보다 더 많이 노동하니 더 높은 임금 받아야 하나

-한국인 상당수는 물건에 적정 가격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어. 이익률 높은 물건 판매를 죄악시

-격차 줄이자고? 고용과 해고 자유화하고 성과로 줄을 세우면 임금도 능력과 열정에 따라 결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라는 주장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노동을 동일하게 하는데 임금이 다른 것은 문제이므로 동일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는,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고 생산의 대가라는 점이다. 노동은 그 자체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하루 종일 앉아서 나사를 끼웠다 뺐다 하기를 반복하는 근로자를 떠올려보자. 노동을 하고 있지만 아무런 가치가 생산되지 않는다. 생산이 없으니 누구도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을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갖는 어떤 것으로 여기고 그를 토대로 물건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세계적 헛소리, 노동가치설이다. 노동이 고유한 가치를 지녔다는 전제는 실제 시장에서 셀 수 없는 논리적 오류를 보여준다.

생산의 비효율이 상품에 가치를 더하게 되기 때문에 미숙련 노동자의 생산품은 숙련 노동자의 생산품보다 반드시 가치가 높다. 또한 모든 상품이 고유의 가치를 지니면서 구매자와 생산자 각자의 한계효용의 크기가 가격에 아예 반영되지 않거나 (surplus value를 객관적 가치설을 스스로 부정할 정도로 매우 확대 해석한다 하더라도) 제한적으로 반영된다. 같은 기구와 재료를 써서 빵을 굽는데 나는 8시간이 걸리고 어느 제빵사는 20분이 걸렸다면 내 빵이 훨씬 비싸야 한다. 심지어 내 빵이 맛이 없더라도. 말이 안되는 얘기이므로 당연히 학계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노동에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가설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있다.

▲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토대로 상품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동일노동’ 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설사 존재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다.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시간 동안 노동을 했다는 서술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는 이런 전제에 바탕을 둔 개념들이 만연해 있다. ‘적정이익’,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과도한 이익’이 대표적인 예시다. 적정한 이익이란 없다. 그 이익을 만들어내는 것은 구매자의 효용이기 때문이다. 적정이익을 규정할 수 없으므로 과도한 이익도 규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인 상당수는 물건에 적정 가격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이익률이 높은 물건을 판매하는 행위를 죄악시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생각이 공산주의자의 공산주의적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에 이를 지적하면 자신은 절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며 격렬한 분노를 표출한다. 이 개념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왔는지 우익정당마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하고 나서는 판이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는 얘기다.

굳이 뭔가 동질성을 부여하고 싶다면, 올바른 표현은 ‘동일노동’ 이 아니라 ‘동일생산’이 되어야 한다. 같은 환경에서 질적 차이가 없는 정확히 같은 생산을 했다면 주어지는 임금은 동일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생산의 효율이 근로자마다 다르고, 노동력의 구매자(회사)가 각 근로자에게서 가져가는 효용은 천차만별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회사에게는 정규직, 계약직, 단기파견직, 장기파견직의 효용이 각기 다르다. 물론 근로자 개개인의 효용도 다 다르다.

이들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싶다면, 격차를 줄이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다면, 해결책은 매우 간단하다.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를 없애면 된다. 계약직 월급을 올리라고 법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정규직 노조소속 근로자들의 절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다.

회사 입장에서는 더 일 잘하는 단기 파견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싶지, 종일 담배나 피고 두 시간 밥 먹고 일 밀렸다며 잔업수당 꼬박꼬박 받아가는 노조소속 정규직 파업꾼과의 고용계약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 오직 성과로 줄을 세우면 고용기회도 승진기회도 임금도 능력과 열정에 따라 정해진다. 고용과 해고, 임금조정을 자유롭게 풀어주면 회사는 ‘파견직’ 따위의 고용형태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정규 비정규 파견 간의 임금격차는 자연스레, 그리고 급속도로 사라진다.

이것이 당신들이 원하는 정의 아닌가? 능력과 열정에 따라 대접받는 사회가? 누구나 기회를 얻는 사회가? 당신들의 ‘선의’ 가 정작 얼마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얼마나 사람들을 피 흘리게 하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주1) 노동가치설의 근원이 애덤스미스나 리카르도라고 주장하고 싶거든, 그런 접근도 있다고 언급한 사람과 자기 모든 주장의 바탕으로 삼은 사람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생산의 차이, 시장의 차이가 뭔지 고민해보라.

주2) 본인이 동일노동과 동일생산을 헷갈려 같은 뜻으로 써왔다고 노동이 곧 생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 두 가지를 함부로 섞어 쓰면 안되는지는 본문에 자세하게 썼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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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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