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1천일, 골병든 러시아 경제]
짧으면 3일, 길어도 1주일이면 우크라이나를 모두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기양양하게 시작되었던 전쟁이 어느 덧 1천일을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사실상 러시아 경제를 완전히 전시 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올인하다시피 쏟아부은 결과들이 참혹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서는 계란 값이 폭등한데 이어 이젠 버터값이 금값이라 할 정도로 생필품 사기도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이 고통스러운 경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특히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대부분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러시아 경제당국자들은 지난 달 금리를 20년 만에 최고치인 21%로 인상했고, 시장은 연말까지 금리가 23%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이러한 변화는 중앙 은행가들이 일반적으로 경제 활동을 억제하기 꺼려하는 전쟁 중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점은 러시아 경제에서 나타난 성장률 수치나 여러 경제적 지표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상당한 착각과 오해를 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이 3%를 넘어섰다는 그 수치만 보고 유럽 경제보다 높다며 푸틴의 러시아가 잘 나가고 있다고 오판을 한다. 그러나 그 내면을 보면 그러한 오독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금방 알 수 있다.
실제로 현대 역사상 가장 엄격한 제재 체제 중 하나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10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맞다. 러시아는 작년에 3.6%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이러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방향을 잡았다는 것은 러시아 경제에 엄청난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우선 정부 지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9월에 발표된 러시아 예산안에는 내년 국방 지출을 4분의 1로 늘리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정보기관을 포함하는 별도의 예산 항목인 국방 및 안보에 대한 연간 지출은 이제 전체 정부 지출의 40% 이상, 러시아 GDP의 8%에 해당하는 17조 루블(1,700억 달러, 236조 5200억원)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비만 해도 러시아 국민 소득의 6%로 냉전 이후 가장 많은 지출이 될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전시경제 체제는 그동안 다른 국가들의 전쟁 중 경제지표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뚜렷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과거 베트남 전쟁 시절 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8~10%였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강대국들은 총 경제 생산량의 40~60%를 군사적 목적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전쟁 수행국가와 지금의 러시아가 현격하게 다른 것은 통화정책이다. 1940년대 초 전쟁 중이던 영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금리를 3% 수준에 동결시키려 엄청난 노력을 했고 결국 이뤄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같은 전쟁 기간 동안 금리를 2.5%로 유지했다. 그렇다보니 낮은 차입 비용 덕분에 대규모 적자를 감당할 수 있었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전쟁 전 6%에서 16%까지 상승했다.
실업률 지표만 해도 러시아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은 환상적인 실업률 지표를 보인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이들은 러시아 경제를 잘 모르는 무식의 소치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실업률은 2.4%에 불과하지만 이는 경제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아예 없다보니 생겨난 일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끌려갔고 또 100만명이 넘는 청년들은 전쟁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 그러니 당연히 실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과열 징후 보이는 러시아 경제, 푸틴 발목잡는 고금리]
이렇게 생산 여력은 완전히 소진된 상황에서 경제는 과열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현재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8% 이상이다. 다른 나라들도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이로인해 차입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1940년대에 미국과 영국은 세수 증대보다는 가계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설계된 가파른 개인세 인상과 배급제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했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이러한 조치는 러시아인들에게 환영도 받지 못할 뿐더러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서 그렇게 별로 이미지도 좋지 않은 정책을 펴게 되면 푸틴의 지지율에 영향을 끼칠까봐 사용하기를 꺼려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통화정책을 긴축할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사실 2차 세계대전 대부분 동안 영국이나 미국은 자국 통화의 대외 가치에 대해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달러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이득을 봤고, 미국의 '렌드 리스'(Lend Lease)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에 군사 장비와 석유 및 식량과 같은 자원을 거의 공짜로 제공했다. 영국에 수입품의 3분의 2를 공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미국처럼 풍부한 자금력과 산업 역량을 갖춘 동맹국이 없었다면 파운드화 가치 하락은 군사적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푸틴에게는 그러한 동맹국이 없다. 중국은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가 되어 전체 수입의 3분의 1과 드론, 미사일, 탱크에 사용되는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은 당연히 무료로 제공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러시아 관리들은 위안화로 환산한 자국 통화의 가치에 대해 경계해야 했다. 올해는 위안화 가치가 무려 10% 하락하여 전쟁이 시작된 이래 최저 수준에 가까워졌다. 러시아는 이렇게 2차 세계 대전의 동맹국과 달리 외부적 취약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보다는 이 취약성이 금리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최근까지 러시아 정부는 차입 비용 상승에 따른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다양한 제도를 통해 가계는 부채 상환을 유예하고, 기업은 더 낮은 보조금 이자율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으며, 정부는 은행의 수입 손실에 대한 보상을 위해 개입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고 있다는 징후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공식 금리가 훨씬 높을 때 단 8%의 비용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모기지 보조금 제도는 7월 1일에 종료되었다. 그 다음 달에는 모기지 대출 규모가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다보니 올해 기업 파산은 20% 증가했다. 무역 단체인 러시아 산업가 및 기업가 연합은 차입 비용 부담으로 인해 내년 투자 계획이 보류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높은 금리가 기업과 소비자 모두의 지출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IMF는 “내년 러시아 경제 성장률이 1.3%로 급격히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영 개발은행인 VEB도 성장률 전망치를 2%로 낮췄다.
이렇게 내년 경제 전망치를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투자 감소와 노동력 손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중요한 수입품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루블화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푸틴 대통령의 취약점이며, 이는 곧 그의 전투 능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푸틴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부의 강한 힘이 나서서 강제적으로라도 종식시켜 주기를 푸틴은 속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어쩌면 푸틴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트럼프가 나서서 선거운동 기간중에 예고했던 것처럼 강제적으로 전쟁을 마무리하게 해 준다면 푸틴은 기사회생의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전쟁이 종식된다해도 전쟁을 위해 올인했던 러시아 경제를 다시 정상화시키기에는 심각한 걸림돌들이 너무나도 많다. 21%까지 치솟은 금리를 낮출 방법이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 보상금까지 논의가 된다면 러시아는 그야말로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까지 다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푸틴은 트럼프와의 브로맨스에 러시아의 운명과 푸틴의 미래를 다 걸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막다른 길 접어든 러시아경제, “깊은 골병 들었다!”]
며칠 전 러시아 현지매체인 ‘뉴스 루’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리를 연 21%로 올린 이후 시중은행들도 연 24∼25%대 이자를 지급하는 예금 상품을 줄줄이 출시하면서 예금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지만, 일각에서는 소련 붕괴 직전의 개인 예금 동결 사태가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그만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14일, “병력 수급을 위해 군인에 대한 보상 수준을 크게 높임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선으로 향했다가 숨진 빈곤층 젊은이들의 가족에게 막대한 보상금이 지급되는 일이 누적되면서 지역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이러한 '데스노믹스'(Deathonomics·죽음의 경제)가 러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들의 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전장에서의 사망자가 워낙 많이 나오다보니 러시아 당국이 지불해야 할 보상금도 막대하다는 점이다. WSJ은 “올해 6월 기준으로 이전 1년간 지급된 보상금이 300억 달러(약 42조1천770억원)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그러니 이러한 전시 경제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올해 6월까지 러시아 국가 지출 중 전사 보상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8%까지 늘어났다. 이러한 지출이 또 인플레이션을 재촉하는 변수가 되면서 러시아 당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 경제는 위험한 줄타기를 거듭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하는데, 이번에 미국에서 장거리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하면서 전쟁은 더욱 길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푸틴이 노발대발할 수밖에 없다. 서방의 제재에 노동력까지 부족한 러시아, 그러다보니 무기 생산량 증대도 제약받는 현실이 과연 푸틴의 러시아 경제를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을지 두고봐야 할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