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에 “조선업 도와달라” 콕 집어 요청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K조선’을 콕 집어 언급하며 ‘SOS’를 요청했다. 중국의 해양패권을 향한 도약에 위기를 느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의 조선업을 통해 대양해군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의 새로운 변화도 예고된다.
대통령실은 7일, 미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당선자가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MRO(유지·보수·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자가 한국의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아예 K조선을 특정해 언급하며 사실상의 SOS를 요청했다는 것은 미국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매우 이례적이며 앞으로 한미동맹의 또다른 장을 열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가 K조선에 SOS를 요청한 이유? 그만큼 급박하다!]
트럼프 당선자가 이렇게 윤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K조선으로부터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그만큼 미 해군의 상황이 위기라는 것을 반증한다. 중국이 국력을 총 동원해 함정을 붕어빵 찍듯 만들고 있는 반면 미국은 전혀 그럴 상황도 아니고 이대로 방치했다간 자칫 미·중 간 대결의 무대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해군력에 미국이 밀리는 지경까지 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6월 공개한 ‘초국가적 위협 프로젝트’ 보고서에서 “중국이 운영하는 전함이 234척으로 미 해군의 219척(군수·지원 함정은 제외한 숫자)보다 많다”면서 “일본, 한국 같은 동맹이 중국의 수적 우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조언한 바 있다.
이 내용 그대로 미국은 세계 1위 군사 대국으로, 핵잠수함 등 최첨단 기술을 지녔지만, 선박을 만들고 수리하는 조선업 생태계는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실제로 미국은 현재 5개의 조선소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각 조선소의 연간 인도 척수는 평균 1.3척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세계 선박 건조량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0.13%(2023년)에 그치고, 잠수함 수리는 몇 년씩 대기해야 하는 실정이다.
미국이 원래부터 이렇게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50여 개 조선소에서 연간 1000여 척 넘는 선박을 만들며 승리했다. ‘미국에서 만든 선박만이 미국 항구에서 자국 다른 항구로 운항할 수 있다’는 존스법으로 자국 조선업도 육성했다. 그러나 내수 시장에 만족한 미국 조선소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사이 일본, 한국, 중국에 차례로 시장을 내줬다. 실제로 미국 조선소의 건조 역량은 한국과 일본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조선업 붕괴가 해군의 군사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1년 10월 좌초된 핵 추진 공격 잠수함 코네티컷함은 20개월을 기다리다 겨우 수리에 착수했는데, 수리 기간만 최소 31개월이나 걸린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다보니 미 고속 공격 잠수함의 약 40%가 수리 중이거나 유지·보수를 대기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미 해군에 있어서 더 큰 당면과제는 이러한 조선업의 침체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대대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선박 건조 능력 1위 국가로 등극했다. 물론 현재의 항공모함 수는 11대 3으로 미국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투함 숫자는 370척 대 280척으로 중국이 미국을 월등하게 앞서 있다.
[미국의 조선산업은 어쩌다 붕괴의 길을 걸었나?]
그렇다면 미국의 조선산업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지난 4월 15일 미 상원 세출 국방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상원의원들은 해군 관계자들에게 여러 중요 함선 건조 프로그램이 예정보다 몇 년씩 늦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소위원회 위원장인 존 테스터 의원은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장관에게 “함정 건조가 지연된다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중요한 문제이며, 해군과 조선 산업에 비상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해군장관은 “빠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해군과 조선소 양측이 무엇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구체적으로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서 책임을 업계에 돌렸다. 그러면서 “일부 프로그램이 첫 함선의 설계 성숙도가 떨어지거나, 설계 및 현장 인력이 부족한 등 어려움이 있다”면서 “조선소들의 생산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해군이 함대를 키우기 위한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난하면서 “2043년까지 유인 및 무인 함정에 대한 해군의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으나 해군은 이러한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해군의 무능력과 조선회사의 무책임과 태만에 대해 냉혹한 지적들이 이어졌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트럼프 당선자가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기의 미 해군, ‘K조선’이 대안으로 떠오르다!]
이렇게 미 해군이 위기에 처하면서 지금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대안으로 한국의 조선업, 곧 K조선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은 이미 시범 사업으로 외국 조선소에 함정 수리를 맡긴다는 방침을 세우고 한국의 조선산업에 협력을 타진해 온 바 있디. 올해 초 한국 조선소를 직접 찾은 미 해군의 카를로스 델 토로 해군성 장관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둘러본 후 “선박 건조 공정의 디지털화 수준과 실시간 모니터링에 어안이 벙벙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러한 언질 그대로 미 국방부는 한국과 제24회 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 후 “MRO 분야에서 협력하고자 하는 한국의 노력을 주목했고, 그런 협력이 동맹의 태세와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과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달 30일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56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도 MRO 협력이 처음 거론됐다. 당시 SCM 공동성명은 “양국 장관은 미 함정 MRO 서비스 수행을 위해 최근 미 해군이 대한민국 조선소와 체결한 계약을 높이 평가했다”고 명시했다.
SCM의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계약은 지난 8월 국내 조선업 최초로 한화오션이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함의 창정비 사업을 수주한 것을 의미한다. 배수량 4만t급의 월리 쉬라호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약 4개월간의 정비 작업을 거쳐 내년 1월 미 해군 측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우리 군 관계자는 “예컨대 미 항공모함이 한국에서 MRO를 받고 인도태평양은 물론 유럽에 작전을 나가는 모습을 미 해군은 꿈꾸고 있다”며 “방산 활성화뿐 아니라 한·미동맹의 전략적·지정학적 가치를 제고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힘은 해군에서 나온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트럼프 당선자가 아직 임기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또 한국의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K조선을 언급하며 SOS를 친 배경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힘이 해군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1987)』에서 1500~1980년 강대국들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쇠퇴한 이유를 탐구한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선에서 연합군이 승리한 배경에는 미국과 영국이 병력과 군수품을 끝없이 실어 나른 해군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1943년 2월 끝난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승리하게 된 배경에는 연합군의 해군력과 생산성 혁명이 자리잡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영국과 미국이 1943년 북대서양에서 연합군 수송선을 노리던 독일 유보트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고 제해권을 재확보한 바탕도 바로 해군력이었다. 이렇게 해군력을 통해 대서양을 건너는 해상수송로를 지킬 수 있게 되자 미국에서 만든 폭격기와 전투기, 기갑차량, 야포, 군함이 대거 유럽으로 쏟아질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군은 북아프리카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했고, 영국은 몰타를 장악해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 수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과 동맹국의 해군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대승리는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1943년 대서양과 태평양에서의 승리 역시 미군과 호주군이 역대 최대 해전인 필리핀 동부의 레이테 만 전투에서 일본 해군을 난타해 재기불능 상태에 빠뜨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폴 케네디는 1936~1945년 2차대전 중 강대국들의 해군력 변화 및 해전을 살핀 뒤 “해전 승리가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졌고, 국제관계에서 세력 분포의 변화로도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또한 1936~1945년 2차대전 중 강대국들의 해군력 변화 및 해전을 살핀 뒤 “해전 승리가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졌고, 국제관계에서 세력 분포의 변화로도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2차대전을 계기로 해군력을 증강한 미국은 종전 이후 기술적으로 앞선 항모전단을 앞세워 글로벌 제해권을 장악했다. 그랬던 미국의 해군력이 위기로 치닫자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이 문제를 꺼내든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트럼프 당선인이 지향하는 ‘위대한 미국’의 힘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함정 MRO 규모는 78조원 수준]
트럼프의 ‘조선업 SOS’에 따라 향후 한국 조선사의 MRO 수주 확대, 현지 조선소에서 군함을 직접 수주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군사정보업체 제인스에 따르면 글로벌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올해 577억6000만 달러(약 78조원) 수준이다. 이 중 미국만 따져도 연간 약 20조원에 이르는데, 이런 거대 시장의 한 중심에 한국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022년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 MRO 사업을 시작했으며, 한화오션은 지난 6월 한화시스템과 총 1억 달러(약 1380억원)를 투자해 미국 필라델피아주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했다. 국내 조선사가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건 처음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지난 7월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함정정비협약도 체결했다. 협약 체결로 두 회사는 향후 5년간 미국 해군이 규정한 함정에 대한 MRO 사업 입찰에 공식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이렇게 K조선은 이제 ‘위대한 미국’을 만드는 미 해군의 기초체력을 당당하게 책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K조선의 건투를 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