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양자컴퓨터-AI 對中투자 차단… 첨단기술 봉쇄 나선 美]
미국 정부가 반도체,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차단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이는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핵심이 될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여서 중국은 상당한 타격을 추가로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은 30일, “내년 1월 2일부터 첨단 반도체,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대(對)중국 투자를 차단하는 내용의 투자 제한 규칙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오는 11월 5일 실시되는 대선 승자와 관계없이 중국과의 첨단 기술 ‘디커플링(decoupling·분리)’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 재무부도 이날 대중(對中) 첨단 기술 투자 제한 행정명령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 시민, 영주권자 등은 반도체 분야에서는 집적회로 설계 및 제조, 슈퍼컴퓨터 관련 분야에선 지분 인수 및 합작투자 등에 관한 대중국 투자가 전면 차단된다. 이는 그동안 미국 자본이 중국의 첨단산업의 화수분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양자컴퓨터에서는 주요 부품 개발 및 양자 통신 체계, AI에서는 군사·정보수집·감시 목적을 위한 시스템 투자 등이 금지된다. 미국인이 첨단 및 군사 용도의 AI를 개발하는 중국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 또한 금지했다.
이러한 규칙을 만들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홍콩, 마카오를 ‘우려 국가’로 지정했다. 결국 중화권에서 대만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첨단기술 투자를 전면 금지한 셈이다. 미국 정부가 이렇게 강도 높은 투자금지 조치를 시행하는 것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의도여서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폴 로즌 재무부 투자안보 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AI, 반도체, 양자 분야는 최첨단 암호 해독 컴퓨터 시스템이나 전투기 등 차세대 군사·감시 및 정보, 사이버 보안 프로그램 개발의 기본 기술”이라며 “이번 발표는 (중국 등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기 위해 핵심 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투자가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로즌은 “투자는 물론, 경영 지원, 인재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미국의 투자가 (중국 등) 우려 국가의 군사·정보, 사이버 역량 개발을 돕는 데 사용돼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날 백악관은 “지난해 8월 바이든 행정명령 발표 이후 2년간 전세계 이해관계자들과의 광범위한 참여를 주도해왔다”며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폭넓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한·일 등 동맹국들이 미국의 대중 투자 제한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불붙은 미중 'AI·반도체 전쟁', 중국은 견뎌낼 수 있을까?]
이제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미국의 다양한 규제와 제재 속에서도 첨단산업 굴기를 지속해 왔던 중국에게 미국의 이번 조치가 얼마나 영향을 끼칠 것이며, 또한 앞으로 중국은 어떠한 방향으로 첨단산업 진전을 위해 나아갈 것인가의 여부다.
예상컨데 중국은 일단 첨단기술 자립에 모든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수출 통제로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를 공급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중국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자립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해 왔다.
중국은 지난 5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3천440억 위안(약 66조4천억원)에 이르는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일명 대기금) 3차 펀드를 추가 조성했다. 이 기금은 고사양 반도체 기술 자립과 반도체 산업의 차세대 먹거리인 AI 반도체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AI 투자를 앞다퉈 늘리고 있다.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의 지난 상반기 설비투자 합계는 500억 위안(약 9조3천억원)으로, 전년 동기 230억 위안(약 4조3천억원)의 2배 이상이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제재에서 한발 비켜 선 범용 반도체(레거시) 부문을 '전략적 구멍'으로 판단해 이 부문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또 희토류 등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광물에 대한 생산·수출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의 이번 중국으로의 투자제한 조치가 별다른 의미가 없는 사실상의 상징적 조치라는 말도 나온다. 이미 대 중국 투자들은 엄청나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미중 갈등으로 이미 중국에 투자된 미국 벤처 자금 규모가 최근 10년 사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도 “미국의 대 중국 투자 규모는 2018년 144억 달러(약 19조8천억원)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 13억 달러(약 1조8천억원)로 90% 넘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다가오는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바이든 임기말에 발표한 이번 조치를 아예 폐기하고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미 기업연구소(AEI) 데릭 시저스는 대선이 불과 8일 남은 시점에서 규칙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완전히 쓸모없는 조치나 다름없다"면서 "3개월이면 됐을 일에 3년이 걸렸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 중국 제재 조치가 사실상 선거용일 수도 있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반중정서를 자극하려는 의도된 대 중국 압박조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가 주는 상징적 의미가 상당히 크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앞으로 미국의 대 중국 압박이 결코 느슨해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결국 그동안 미국의 자본들이 중국에 투자를 함으로써 이익을 보려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생각 자체를 아예 접어야 한다는 것이어서 중국은 외국인의 투자를 받는데 있어서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산업으로까지 악영향을 끼치면서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는 더욱 더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중국이 반발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30일 기자와의 문답 형식을 통해 "미국이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 규칙을 발표한 것을 반대한다"며 "미국에 엄정한 교섭을 제안했으며 (중국은) 조치를 취하기 위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상무부는 "미국이 국가안보 개념을 구체화하고 중국에 대한 차별적 투자 제한을 도입하는 것은 전형적인 비시장적 관행"이라며 "미국의 제한 조치에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및 기타 분야가 포함되는데 대부분의 산업은 국가 안보와 관련이 없음에도 미국의 제한 조치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중국과 미국 기업의 정상적 경제 무역 협력을 방해하고 중국과 미국 기업의 이익을 해칠 것"이라며 "많은 미국의 상회와 기업이 이같은 제한이 다른 국가의 경쟁자에게 중국 시장을 양보하고 미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라고 언급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무부는 "미국이 시장경제 법칙을 존중하고 경제무역 분야의 국가 안보 경계를 명확히하며 경제 무역 문제를 정치화하거나 무기화하는 것을 중단하고 양국 경제무역 협력을 위한 긍정적 환경을 조성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 대 중국 투자 막는 방향으로 확산될 것]
이번 미국의 조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충분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단산업에 대한 대 중국 투자 제한 조치가 단지 첨단산업 분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타 산업에까지 심리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중국으로 향한 투자 환경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첨단산업 분야뿐 아니라 일반 제조업까지도 더 이상 중국에 대한 투자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심리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중 충돌이 격화되면서 중국의 경제는 급락하고 있고 이에 따라 대 중국 투자 역시 급감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중국내의 글로벌 기업들은 아예 탈중국을 하거나 기왕 투자했던 글로벌 기업들의 향후 계획 또한 지속적으로 축소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그러한 흐름은 이미 외국인직접투자(FDI)의 감소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 상무부가 지난 10월 2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대 중국 FDI는 6천406억위안(약 125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4% 줄어들었다.
문제는 외국인직접투자 감소가 경제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성장률 악화의 핵심 요인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중국 경제를 외국인들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 경제의 회생은 더욱 질곡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대 중국 투자 전면 금지 조치는 단순하게 첨단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조업까지 부수적 동반 하락 효과를 가져오는 중요 요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분위기가 이러나 중국 당국도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4일자 신문 1면에 이례적으로 '연간 경제·사회 발전 목표 임무 달성을 위해 노력하자'라는 8천여자 짜리 논평을 게재하고 각 경제주체를 독려했다.
인민일보는 "비바람은 일상적 상황(常態)이고 비바람을 못 막는 것은 심리상태(心態)이며 비바람과 함께 가는 것은 현재의 상태(狀態)"라면서 "어려움을 직시하고 자신감을 다져야 한다"고 했다.
신문은 또한 "시간은 4분기에 접어들었고 올해 경제 업무 역시 끝내기(收官·바둑 용어) 단계에 들어간다"며 4분기가 연간 GDP 성적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미국의 이번 첨단산업에 대한 대 중국 투자 제한 조치는 분명히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이보다 중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하면서 중국 경제를 더욱 수렁속으로 밀어넣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