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의견에 반하는 학자들 줄줄이 숙청, 실종]
중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이 시진핑 주석의 지도노선과 다른 발언을 하거나 시진핑 노선에 대해 비판을 하는 학자들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을 집중적으로 숙청 또는 인신 구속 및 직장에서의 퇴출 등의 강압적 정책을 시행하면서 중국 학계 및 전문인 집단이 공포에 빠져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시간) '시진핑의 중국 학계에 대한 통제 강화'라는 제목의 헤드라인 기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끄는 공산당 지도부가 학계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강화하면서 중국 학자들이 실종되거나 퇴출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 침공을 가장 두드러지게 비판했던 중국 학자 중 한 명이 조기 은퇴를 강요받으며 중국 정부의 학계 탄압으로 인한 최신 희생자가 되었다”면서 “2022년 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정부 고위 고문이자 상하이시 당교 교수인 후웨이(胡偉)는 베이징(중국 지도부)이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관계를 가능한 한 빨리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 내에서 격렬한 온라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러시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시진핑의 정책에 직접적으로 어긋나는 입장이었다”고 짚었다.
FT는 이어 “후 교수의 주장이 중국내에서 확산되자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59세에 불과한 후 교수를 당교에서 강제 은퇴시켰다”면서 “중국 지도부에 조언했던 저명 학자의 은퇴 연령치고는 너무 일렀다”고 지적했다.
후 교수는 이렇게 시 주석의 공산당이 학계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면서 최근 몇 년 새 표적이 된 학자 중 1명이다. 다만 그는 상하이시 당교에서 은퇴하는 데 동의한 이유로 감옥행은 면했고, 공개행사에도 참석할 수 있는 상태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FT는 “중국은 해외는 물론 중국에 거주하는 지식인을 표적으로 삼아 정치, 국제관계와 같은 전통적으로 민감한 주제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부닥친 중국 경제에 대한 논의도 억압하고 있다”면서 “일부 학자들은 당국에 의해 알려지지 않은 혐의로 구금돼 대중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른 일부 학자들은 대학이나 소속기관에서 해고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소셜미디어 계정이 취소되거나, 다른 형태의 행정적 또는 법적 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주헝펑(朱恒鵬) 전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시진핑 내각에 자문 활동을 하는 싱크탱크 요원임에도 불구하고,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에 올린 글로 인해 구금 조치를 당했다고 소식통 2명은 전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말 중국 매체들은 “주 전 부소장이 최근 '중앙(당 중앙)에 대한 망언' 혐의로 엄중 처분을 받았다”고 보도했었다.
FT는 또한 “명문 칭화대에서 정치학 강사로 일했던 우창(吳强) 박사가 올해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 가택연금에 처해졌다”면서 “우창 박사는 홍콩의 친민주주의 우산운동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 정치적으로 민감한 연구를 했다는 이유로, 2015년 실적 평가에서 탈락한 후 계약이 종료되었다”고 밝혔다.
[해외의 중국 학자들까지 표적 삼은 중국 공산당]
눈여겨볼 것은 최근들어 일본 등의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 학자들까지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FT에 따르면 일본 아시아대학 정치학과 판윈타오(范雲濤) 교수가 지난해 고향 상하이로 돌아오던 중 실종됐다. 일본 정부는 그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중국과의 외교적 충돌 가능성 때문에 더 이상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FT는 “일본 고베가쿠인대학 후스윈(胡士雲) 교수도 지난해 중국 여행 도중 실종됐는데, 대학 측은 지난 3월 "그의 행방을 아직 모른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본 캐논 글로벌연구소의 미네무라 겐지 수석연구원은 "일본이 확실히 표적이 된 것 같다"며 “중국이 미국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일본에 대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FT는 이어 탄압받은 중국 소수민족 학자들 사례도 소개했다. 저명 위구르 민속학자 라힐레 다우트는 2017년에 실종됐는데, 비밀 재판을 통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는 외신 보도가 지난해 9월 나온 바 있다.
중국 외교부는 자국 학자들에 대한 탄압 여부와 관련, "구체적인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서도 "원칙적으로 중국은 외국과의 학술교류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지만, 악의적인 추측과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미국 프린스턴대의 페리 링크 명예교수는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주석 통치 기간 중국은 교수들의 근무조건, 자녀 학교 등까지 엄격하게 통제했다"면서 “당시보다는 완화됐지만 중국 당국의 통제는 '샹들리에의 아나콘다'처럼 언제든 선을 넘은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페리 링크 명예교수는 이어 “공산당 위원회(조직)가 각 대학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근본적인 사실은 마오쩌둥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마오쩌둥 말년 보면 시진핑의 행동이 이해된다!]
지난 2021년 12월 21일, 영국의 BBC 중문판은 “시진핑, 이미 마오 말기에 진입했다(習近平已經進入「毛晚期」)”는 제목으로 세계적인 중국문화대혁명 연구자인 쑹융이(宋永毅)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쑹융이(宋永毅)는 중국 문화대혁명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라고 평가할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에 평생을 바쳐왔다. 그가 문화대혁명과 관련해 펴낸 ‘중국문화대혁명데이터베이스(1966~1976)’는 1차 자료만 4만 여건 1억 2000만 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고도 방대하다. 그래서 중국 문화대혁명에 관해 제대로 알려면 쑹융이(宋永毅)의 자료집을 보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의 문혁 전문가 로드릭맥파커 하버드대 교수도 “이들 데이터베이스가 당대 중국 연구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할 정도다.
쑹융이(宋永毅)는 본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두 달여 만인 1949년 12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집안이 이 정도니 쑹융이(宋永毅) 또한 어릴 적부터 마오쩌둥(毛澤東)과 공산당을 열과 성을 다해 호위하고 장차 미사일 설계사가 돼 조국에 이바지하겠다는 홍색(紅色) 기상이 넘쳐났다.
그런 그가 17살 때 문화대혁명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쑹융이(宋永毅)가 만난 문화대혁명은 자신이 숭배했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완전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그는 홍위병 싸움에 말려들어 동창생에게 고발당한 뒤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때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다.
그는 5년 반 가까이 캄캄한 지하에서 감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었고, 심지어 단식농성까지 했다고 한다.
쑹융이(宋永毅)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집안 출신은 좋지 않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오쩌둥과 공산당을 성심성의껏 옹호했다”고 했다.
그런데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그의 생각과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후 나타난 일련의 사회적 난맥상은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의 본질과 중국의 미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감옥에서 마오쩌둥 전집 4권과 마르크스-엥겔스 저작 4권, 레닌선집 1권 등 각종 서적을 보고 또 보며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은 당시 신문에서 선전했던 것과는 본질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쑹융이(宋永毅)는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의 실체와 본질을 파헤치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마오쩌둥의 실체 3가지, 시진핑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쑹융이(宋永毅)는 그 당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세 가지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첫째, 마오쩌둥은 항일전쟁때 정작 항일(抗日)은 하지 않고 공산당 역량 키우는 일만 하면서 국민당을 누르고 천하의 패권 잡는 일에만 열중했다는 점을 마오 선집에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마오쩌둥은 건설할 줄은 모르고 오직 파괴하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마오의 호남운동 시찰 보고를 보면 그의 행적이 너무나도 잘 나타나 있는데, 거길 보면 마오가 어떻게 사람을 속이고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마오쩌둥은 서양세계나 과학은 모르고 오로지 권술(權術), 곧 권모술수에만 능한 허풍쟁이였다. 또한 마오의 행동은 모순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마오쩌둥의 말년시기에 나타난 병적인 행동들이 시진핑 주석에게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쑹융이(宋永毅)는 한마디로 “시진핑은 이미 마오쩌둥의 말기에 접어 들었다”고 진단했다. 정치심리적인 분석에 근거해서다.
사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가을,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오를 때만 해도 중국내에서는 상당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한 기대감은 아버지 시중쉰(習仲勳) 때문이었다. 시중쉰(習仲勳) 전 국무원 부총리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마오쩌둥으로부터 숙청을 당했고, 시진핑 또한 이에 연루돼 산시(陝西) 농촌으로 추방당한 경험이 있어 마오쩌둥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중국을 보다 민주화된 길로 이끌 것이란 낙관적인 기대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시중쉰(習仲勳)은 당내에서도 덩샤오핑과 같은 개명파(開明派)여서 시진핑 역시 부전자전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한층 심화시킬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집권 3기를 넘어선 지금의 시진핑은 이러한 기대를 완전히 허물어 버렸다. 그의 강권통치는 마오쩌둥의 그림자를 보게 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중국의 전랑외교는 국제질서에 충격을 주면서 광범위한 우려를 주고 있다는 것이 쑹융이(宋永毅)의 평가다.
쑹융이(宋永毅)는 이어 “중국내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연구는 이미 사라졌다”면서 “반면 마오쩌둥 당시의 문화대혁명이 시진핑 시기의 정치운동으로 이미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지금의 시진핑에게서 말년의 마오쩌둥 모습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정신상태 때문이다. 마오는 말년에 아무도 믿지 못하였다. 심지어 충복들조차 의심했다. 그러다보니 마오의 말년에는 끊임없는 숙청들이 단행됐다.
시진핑은 지금 측근조차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임명한 장관급 인사들을 포함해 군부 지도자들까지도 사정없이 숙청해 버렸다. 어찌보면 자신의 수족들까지도 잘라 버린 셈인데 이는 그만큼 주변 사람들조차 제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독재자의 함정’이다.
그렇다면 학자들은 왜 숙청할까? 자신과 다른 생각이 인민들에게 퍼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권의 존립조차도 불안하다는 뜻일게다. 그만큼 시진핑은 지금 의심도 많아지고 불안감도 커졌다. 이런 시진핑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