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전인대, 지방정부에 “숨겨진 부채 책임지고 해결” 경고]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각 지방정부들을 향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른바 '숨겨진 부채'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들 숨겨진 부채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고 또 자칫 엄청난 경제위기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9일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인대의 대표들이 20개 지방정부의 부채 관리 노력을 검토한 결과 ‘부채 수준이 증가해 건설 프로젝트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국가 금융 시스템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전국적으로 숨겨진 부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SCMP는 이어 “지침에는 모든 새로운, 숨겨져 있는, 실현되지 않은 부채를 책임질 수 있도록 평생 책임 시스템을 엄격히 구현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전했다.
중국 재정부도 지방정부의 부채와 관련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대국인 중국이 엄청난 국가부채의 산과 싸우고 있다”면서 “재정 위기를 타파해야만 하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지방정부들에 경고를 했다”고 강조했다.
[손쉽게 돈 벌었던 지방정부, 부채의 덫에 빠졌다!]
그런데 이러한 지방정부 부채 급증의 가장 큰 요인은 중국 지방정부들이 인프라 건설 등을 위해 경쟁적으로 설립한 지방정부융자법인(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 때문으로, 이로인한 재정 위기가 급증함에 따라 중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 억제와 함께 통제되지 않는 차입을 억제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사실 지방정부융자법인(LGFV)을 설립하게 된 것은 지방정부가 소유한 부동산을 활용해 손쉽게 돈을 벌어 GDP 성장의 디딤돌로 삼고 또한 지방정부 책임자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창구로 방만하게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LGFV를 통해 잡히는 부채는 중앙정부에 보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지않고 지방정부의 책임자가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러한 부동산을 활용한 LGFV 부채를 통해 경쟁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 곧 도로나 각종 시설, 심지어 공항에 이르기까지 투자함으로써 중국의 GDP를 높이는데 상당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중앙정부도 GDP를 높이는데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SOC에 대한 투자 등을 남발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중국내에 지나치게 많은 공항과 고속도로 등이 생겨나면서 나중에는 수익을 내지 못해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된다.
특히 지방정부의 부채는 사실상 중앙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책임자가 지방정부 소유의 땅을 마음대로 요리하면서 부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돈을 펑펑 쓸 때는 달콤했지만 나중에 그 자금을 갚아야 하는 시점에 이들 지방정부의 발목을 잡게되는 원흉으로 등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시진핑의 공동부유 정책과 함께 전혀 시장친화적이지 않은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부동산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려는 시책으로 말미암아 부동산 시장 전체가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속으로 곪아왔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했다.
SCMP는 이와 관련해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장기화한 부동산 위기 상황에서 더 부각됐다”면서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를 조속히 정리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상당한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SCMP는 이어 “우선적으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채가 워낙 많은 데다 일부 지방정부의 경우 취약한 재정 구조로 인해 부채 규모가 재정 수입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례로 빚이 많은 지역 중 하나인 윈난(雲南)성의 2022년 부채는 1조2천억 위안(약 225조5천억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해 재정수입보다 5천억 위안(약 94조원)이나 더 많은 것이다. 이는 일반 기업이라면 이미 부도나고도 남을만한 형국이다. 문제는 그런 지방정부가 한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에 대해 란포안 중국 재정부장(장관)이 최근 전인대에 보고한 자료에서 “2023년 말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30조8천699억 위안(약 5천708조원), 지방정부 채무는 40조7천400억 위안(약 7천534조원)”이라 밝혔다.
그러나 란포안 재정부장의 이같은 부채 통계는 상당히 축소 보고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6일, LGFV 부채를 포함해 중국에서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부채'를 국제통화기금(IMF)과 월스트리트 은행들의 자료를 인용해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포함하지 않고 있는 숨겨진 부채가 7조에서 11조 달러(약 9100조~1경4400조원)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WSJ은 “중국 전역의 시와 지방정부가 수년 동안 확인되지 않은 차입과 지출로 인해 막대한 양의 숨겨진 부채가 축적되어 있다”면서 “추산된 ‘부외(off-balance-sheet) 부채’ 중 4000억 달러(약 524조원)에서 8000억 달러(약 1050조원) 이상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견해도 전했다.
여기서 ‘부외 부채’란 대차대조표 등 공식 데이터에는 잡히지 않는 부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전국의 시와 지방정부가 수년간 확인되지 않은 차입과 지출로 인한 막대한 양의 숨겨진 부채도 해당되는데, 특히 도로, 교량을 포함한 기반 시설을 건설하거나 기타 지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빌린 수천 개의 자금 조달용 특수법인 ‘LGFV’가 발행한 회사채도 포함된다.
WSJ은 “중국의 부외부채 실제 총액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최근 1년간 지방정부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수준이 됐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면서 “중국의 지방 부채는 ‘금융 시한폭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게 번져간 것은 지난해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압력이 높아지면서 지방 정부들의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국 정부는 당장 중국의 중앙과 지방정부의 어머어마한 부채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이를 대놓고 공개할 수도 없어서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부동산 침체에 수입 감소, 재정난에 두 손 든 지방정부]
일단 중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들에 각 성시가 책임지고 숨겨진 부채를 해결하라고 명령했지만 정작 지방정부들은 이를 해결하고 싶어도 그 방도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속에 부동산 버블까지 붕괴되면서 중국의 지방정부들이 대부분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방정부들은 공무원 월급도 주지 못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대민업무도 중단될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 재정부가 지난 8월 26일 발표한 최신 재정 수입 및 지출 수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7개월 동안 중국의 일반 공공 예산 수입은 전년 대비 2.6% 감소했지만, 지출은 전년 대비 2.5% 증가하여 재정 수입 및 지출 부족액이 1조 9,800억 위안(약 373조 15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합조보는 “중국 지방정부들이 발표한 자료를 취합한 결과 31개 성(省)급 지방정부 가운데 상하이만 456억 2천만위안(8조 6천억원) 재정 흑자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30곳은 모두 지출이 수입보다 많을 정도로 적자상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렇게 30개 성의 재정 적자가 대폭 늘어난 것은 한마디로 재정 수입 자체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아무리 중앙정부가 숨겨진 채무를 해결하라고 압박해도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시기로 퇴행 움직임 보이는 중국]
중국 지방정부들의 재정상황이 악회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부채 해결 압박까지 가해지면서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마오쩌둥식 대약진운동’의 부활이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아는 지난 19일, “중국 경제가 악화되면서 중국 전역의 정치 및 관료집단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말이 ‘砸鍋賣鐵(Za guo mai tie)’라는 말”이라면서 “이는 원래는 '솥을 부수고 철을 팔자'는 뜻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산을 유동화하자’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닛케이는 이어 “이는 당장의 비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60년 전의 대약진을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닛케이는 이와 관련해 “중국내에서 ‘砸鍋賣鐵(Za guo mai tie)’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재정상황이 완전히 궁지에 몰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마오쩌둥 당시의 정치적 구호였던 ‘砸鍋賣鐵(Za guo mai tie)’가 수많은 사람들을 굶어죽게 만들었는데 또다시 중국에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길한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닛케이는 더불어 “대약진 시기에도 전국 17개 성에서 3.500만명 정도의 이사자가 나왔는데 당연히 이러한 사실은 은폐되었다”면서 “지금도 중국 내에서 비슷한 은폐가 벌어지고 있는데, 실제로 지방정부 공무원들의 급여가 지급되지 않거나 엄청난 삭감을 당하고 있음에도 이 모든 것들이 은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닛케이는 “‘砸鍋賣鐵(Za guo mai tie)’는 마오쩌둥 시대의 비극적인 실패를 상징하는데 이러한 말이 21세기의 시진핑 시기에 또다시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면서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염려스럽다”고 진단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