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든 해리스, 방패 든 트럼프, 5가지 핵심적 장면]
11월의 美대선을 앞둔 TV토론에서 카멀라 해리스(민주)와 도널드 트럼프(공화)는 90분간 날선 공방을 벌였지만 애초 예상됐던 바와는 달리 해리스가 공격을 하고 트럼프가 오히려 방어를 하는 기묘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는 한마디로 해리스측의 TV토론 전략이 잘 먹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번 토론이 유권자의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된다.
美 대선에 관한 한 중립적인 영국의 BBC는 “이번 TV토론에서 해리스는 맹공을 가했고 트럼프는 방어적 자세를 취했다”면서 “스냅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리스가 토론에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트럼프는 이후 해리스가 ‘매우 참패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그러면서 “이번 TV토론에서 5가지의 핵심적인 장면이 있었다”면서 이를 자세히 설명했다.
① 해리스가 무대를 가로질러 트럼프에게 가서 인사를 건넨 점, ② 트럼프가 토론 곳곳에서 해리스를 향해 분노를 폭발했다는 점, ③ 아이티 이민자들이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는 JD밴스 부통령 후보의 주장을 여과없이 말했다는 점. 사실 이는 팩트체크 결과 거짓이었다. ④ 낙태와 관련해 사회자가 트럼프에 대해 팩트 체크를 한 장면 ⑤ 정책과 관련된 토론에서 트럼프가 오히려 수세로 몰린 점 등이 그것이다.
BBC가 이 5가지 장면을 거론한 것은 이들 내용들이 사실 이번 TV토론의 분위기를 좌우했기 때문이다. 해리스의 악수는 8년만에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해리스가 의도적으로 트럼프에게 도발하기 위한 계획적 제스처였음이 확인됐다. 어찌보면 트럼프는 토론 시작때부터 해리스에게 선공을 당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토론 내내 유지됐다.
[해리스와 트럼프의 가장 큰 차이, ‘토론 태도’]
사실 트럼프는 토론에 있어 달인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경험도 풍부하고 또 얼마든지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번 토론에서 트럼프는 해리스의 의외의 날선 공격에 방어하느라고 바빴고 그러다가 여유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미국의 한 매체는 이날 토론 분위기를 “해리스가 도발하고 트럼프는 반응했다. 여유로운 쪽은 해리스다”라고 한줄 요약을 할 정도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토론 내내 두 후보의 얼굴 표정이었다. 해리스는 토론 내내 다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트럼프를 응시하기도 했고 트럼프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할 때는 고개를 젓거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TV의 분할 화면을 채웠다.
특히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와 해리스를 향해 공세를 퍼부을 때마다 해리스는 손으로 턱을 괴고 눈썹을 까딱거리거나, 턱을 아래로 당기고 눈을 치켜뜨며 웃는 등의 표정을 하며 트럼프를 응시했다. 마치 “당신의 말은 틀렸다”, “우습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에 대해 NBC는 “해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미소와 표정, 제스처를 취하며 트럼프를 응시했지만 트럼프는 토론 대부분을 정면을 응시했다”면서 “트럼프가 해리스에 대해 언급할 때도 고개를 돌려 해리스 쪽을 쳐다보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만 가리키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소셜미디어(SNS)를 이용하는 젊은 세대의 표심이 해리스로 향하는 가운데 이같은 ‘표정 공격’도 SNS에서 ‘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는 해리스 부통령이 손으로 턱을 괴고 웃는 사진과 함께 “내가 이 사진을 너에게 보내면, ‘나는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날 해리스의 토론 작전 중에서 백미인 것은 트럼프를 의도적으로 도발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해리스는 이날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8100만명으로부터 해고당했다” “전세계가 트럼프가 대선 후보라는 걸 비웃는다”며 트럼프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 말을 들은 트럼프는 흥분하기 시작했고 잇따라 소리를 높였다. 이는 트럼프의 침착성을 잃게 하기 위한 해리스의 전략에 트럼프가 여러 번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이러한 태도는 과거 바이든과의 토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물론 이번 토론에서 방송사의 편향성이 제기될 수 있는 여지는 남겼다. 트럼프가 분노를 표시한 것도 바로 진행자의 팩트체크 부분에서였다. ABC방송은 이번에 실시간 팩트체킹을 시도했다. 트럼프가 이날 낙태권에 대해 발언하던 도중 “해리스는 출생 후 사형 집행(낙태)”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에 사회자 중 한 명인 ABC방송 앵커 린지 데이비스가 “미국에는 출생 후 아기를 죽이는 것을 합법화하는 주가 없다”고 했다.
또한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 아래서 범죄율이 급증했다”고 말하자 또 다른 사회자 데이비드 뮤어는 “아시다시피 연방수사국(FBI)은 미국에서 전반적인 폭력 범죄가 실제로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라고 즉각 반박했다. 이후 트럼프가 언성을 수차례 높였다.
두 진행자는 해리스 후보에게도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통계로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거나 "4년 전과 비교해 미국인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가" 등의 송곳 질문을 던졌다.
[TV토론에 대한 언론의 반응]
TV토론에 대한 반응은 사실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토론에 대한 평가 역시 그 언론의 성향에 따라 나름대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염두에 두고 각 언론사들의 반응을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NYT) / “해리스는 트럼프를 괴롭힐만한 문제를 차분하게 나열했고 트럼프는 (해리스 공격에) 반응하고 있다”
*CNN / “해리스의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해리스 참모들은 계획대로 트럼프가 흥분하며 발언을 이어가자 고무된 분위기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 “해리스는 계속해서 트럼프를 짜증나게 했다. 해리스가 미끼를 던지면 트럼프는 계속해서 물었다.”, “트럼프는 지난 6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토론 대결을 연상시키는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로 시작했지만, 해리스가 그를 몰아붙이자 점점 더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리스의 공격에 말린 트럼프가) 이민과 경제 등 자신에게 유리한 분야로 논의의 주제가 바뀌었음에도 공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폭스뉴스 (친공화당 성향의 폭스뉴스 분석가 브릿 흄) / “거의 해리스의 승리였다. 해리스가 트럼프를 찌르자 미끼를 물었다. 트럼프는 이날 나쁜 밤을 보냈다. 이날 만은 해리스의 밤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 / “해리스 캠프의 이날 토론 전략은 무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화를 촉발하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해리스는 크게 성공했다.”
*BBC / “대부분의 경우 트럼프는 자신만의 ‘수사적 펀치’를 날리지 못했고 며칠 동안 이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WSJ, “해리스는 토론을 통해 자신과 트럼프를 정의했다!”]
이번 TV토론에 대한 평가에서 눈여겨볼 것은 보수성향의 언론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이다. WSJ은 토론 직후 올린 기사를 통해 “해리스는 토론을 통해 자신과 트럼프를 정의했다”면서 “해리스는 방어적 태도로 토론에 임했지만 트럼프의 뒷발을 잡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WSJ은 이어 “후보로 확정된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해리스는 트럼프에게 집요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방어에 나섰고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면서 “반면 트럼프는 계속해서 불만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폭언에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
WSJ은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 방어하는 것도 영리했다”면서 “해리스는 ‘나는 바이든이 아니다’면서 교묘하게 바이든 정부의 문제점들을 피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WSJ은 또한 “트럼프는 유권자의 마음을 잡으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트럼프는 근거없는 주장도 서슴치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오하이오 주에서 아이티 이민자들이 애완용 개와 고양이를 잡아 먹는다는 소문을 반복했고, 2020년 선거에서 자신이 승리했다는 주장을 이번에도 이어갔으며 해리스가 끌어 모으는 관중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 WSJ은 이러한 트럼프의 발언들이 실책이라고 봤다.
[TV토론후 여론조사, “해리스가 잘 했다!”]
그렇다면 TV토론 후 여론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CNN이 여론조사 기관 SSRS에 의뢰,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날 토론을 지켜본 등록 유권자의 63%는 해리스 부통령이 더 잘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잘했다는 응답자는 37%였다.
토론 전 '어느 후보가 더 잘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을 땐 응답률은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50%로 동률이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지난 6월 27일의 바이든 대 트럼프 토론때와는 확연하게 대비된다. 당시에는 토론을 지켜본 유권자의 67%가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잘했다고 답했고, 바이든이 더 잘했다는 응답률은 33%였다. 바이든은 이날 TV 토론 참패에 따른 후폭풍으로 결국 후보직을 내려놨다.
['팝의 여제' 테일러 스위프트 "해리스 지지"]
이날 TV토론에서 선전한 해리스에게 엄청난 선물이 쏟아졌다. 팝의 여제(女帝)라 불리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10일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스위프트는 이날 해리스와 트럼프의 첫 TV토론 직후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권리와 대의를 위해 싸우는 전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해리스가 안정적이고 재능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하며 혼란이 아닌 차분함으로 나라를 이끌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폴리티코는 “해리스가 오늘 밤 토론에서 선전한 것보다 더 큰 승리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스위프트는 인스타그램에 고양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올렸고 지지 선언 말미에 ‘아이 없는 고양이 아가씨’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이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 상원의원이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을 비판하며 한 표현인데, 밴스를 저격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면서 스위프트는 유권자 등록 장소, 조기 투표 날짜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링크도 첨부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