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개혁개방을 시진핑 업적으로 만들려던 중국 지도부]
지금의 중국 경제를 만든 덩샤오핑의 120주기를 맞아 시진핑 주석을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로 내세우면서 스스로를 개혁가로 칭송하려던 시도가 완전 좌절됐다. 또한 최고 지도자들의 여름 모임인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원로들로부터 엄청난 곤욕을 치르면서 권위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아(Nikkei Asia)는 29일, “'개혁가 시진핑에 대한 반란'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올 여름에 발생해 최고 지도자와 추종자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한마디로 시진핑을 개혁가로 치켜 세우려던 계획이 당 원로들의 대대적인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었으며 이로인해 시진핑 지도부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닛케이아시아는 이어 “지난 7월 15일부터 18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시진핑 지도부가 경제와 관련된 중장기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면서 “그러나 정작 시진핑 지도부는 중국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개혁개방’을 화두로 내세우면서, 덩샤오핑의 공로로 널리 알려진 정책을 한때 부총리를 지냈던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의 역할을 홍보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아버지 시중쉰을 내세워 중국의 개혁개방이 그때부터 본격화되었으며 그의 아들 시진핑도 아버지 시중쉰의 뒤를 이어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부각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지난 7월 15일 신화통신은 3중전회의 개막에 맞춰 ‘개혁가 시진핑’이라는 1만자 장문의 논평을 게재했고, 중국의 대부분 신문들이 이를 받아쓰면서 대대적 홍보에 들어갔다. 이 글은 시진핑을 '덩샤오핑에 이은 탁월한 개혁가'로 칭송하며 이번 3중전회에서 시진핑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신화통신은 이 기사에서 “시진핑은 덩샤오핑에 이어 또 다른 뛰어난 개혁가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시진핑 통치의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개혁의 시기이며 다양한 기회와 도전에 직면한 지금이 새로운 개혁의 속도를 높여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을 1978년 개혁·개방으로 노선 전환을 이끈 덩샤오핑에 비견한 것이다.
신화통신의 특집 기사는 이어 “시 주석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사업을 계승·발전시켜 개혁의 신시대를 열었고, 그건 바로 '시진핑식 개혁'이라는 점에서 개혁가로 호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화통신은 그러면서 “덩샤오핑이 1978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11기 3중전회를 통해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 시대를 열었다면, 시 주석이 주도한 2013년 18기 3중전회 역시 기념비적 의미를 갖는다”고 추켜세웠다.
[가로막힌 ‘시진핑 우상화’, 당 원로 극한 반발에 좌초]
그러나 이 글은 곧바로 당 원로들을 포함한 시진핑과 가깝지 않은 중국내 정치세력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당내 일부에서는 신화통신의 이글이 완전히 사실과 다른 글로 개혁개방 정신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일부에서는 신화통신의 이 글이 당의 역사에도 전혀 부합되지 않는 글이라는 원초적 비판까지 받았으며, 누가 이 글을 게재하도록 했는지, 또 누가 이 글의 출판을 승인했는지 그 실체를 공개하라는 요구들이 빗발쳤다.
닛케이는 이와 관련해 “신화통신의 기고 글에 대해 당내외에서 엄청난 반발이 쓰나미처럼 몰려 왔다”면서 “특히 은퇴한 당 원로들을 비롯해 혁명원로의 2세대인 홍얼다이(紅二代)들의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고, 이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더더욱 이러한 분노는 현재 중국 경제의 침몰 위기와 맞물려 시진핑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분노한 것은 시진핑의 정치노선은 사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완전 반대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에게 덩샤오핑 노선이 칭송을 받고 있다는 점을 악용해 ‘시진핑의 개혁’이라는 말과 적당히 섞어 쓰면서 마치 시진핑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같은 노선을 따르고 있는양 인민들을 혼동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화통신은 아버지 시중쉰과 아들 시진핑이 일한 덕분에 시진핑 부자가 중국의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 했다. 신화통신의 글은 바로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설명했던 것이다.
특히 이 글에서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을 내세워 개혁개방이 마치 가족의 전통적인 사상인양 인민들에게 홍보하려 했다는 점은 이들 반 시진핑 파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공산당이 아닌 시진핑 가족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 또한 반발을 불러오는 요인이 됐다. 이에 대해 당 원로들은 시진핑 주석이 당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공로를 가로채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닛케이의 해석이다.
[무너진 시진핑의 권위, 좌절감에 빠진 지도부]
당 원로들을 비롯한 홍얼다이, 그리고 수많은 당 이론가들과 당 핵심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신화통신은 ‘개혁가 시진핑’이라는 평론을 인터넷에서 삭제했고, 응당 게재하여야 할 인민일보도 인쇄판에 포함하는 것을 포기했다. 급기야 거의 모든 중국의 인터넷에서 이 글은 사라졌다. '개혁가 시진핑'이 이렇게 무너진 것이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 당시 진행중이던 3중전회는 사실상 초토화됐다. 결국 3중전회에서 중요한 언건 토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말 중요한 중국 경제 회복이라는 주제 또한 별로 논의되지도 못했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는 신화통신이 중국 중앙 정부에 속하는 국무원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고 있으며, 선전 부서인 공산당 홍보부의 감독을 받고 있다는 사실, 또한 논평과 같은 중요한 기사는 시 주석과 다른 지도자들의 사무실이 있는 베이징 중난하이 지역의 사무 업무를 관리하는 공산당 총서기의 승인 없이는 발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닛케이는 일단 시진핑을 보좌하는 실무 보좌진들의 실수로 봤다. 올해는 덩샤오핑의 탄생 120주기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해인데 실무진들이 이러한 분위기 파악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공산당의 생일인 8월 22일은 허베이성의 고급 리조트가 있는 베이다이허에서 당 원로들과 지도부가 모여 난상토론을 하게 되는 중요한 정치 일정의 직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이었던 2014년, 당 원로들은 베이더이허에서 시진핑이 주도하는 반부패 캠페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었다. 당시 원로들의 전 부하들과 그들과 가까운 군 장교들이 시 주석의 반부패 팀의 표적이 되면서 장쩌민 전 주석의 불만도 컸지만, 시진핑은 부패 척결이라는 기치 아래 꾸준히 권력을 공고히 해나가면서 원로들의 불만을 묵살했다. 결국 원로들은 시 주석과의 연대를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8월이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논의 내용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시 주석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해변 휴양지로 이동했는지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정보에 대한 뚜껑이 굳게 닫혀 있다.
회의에서 나온 정확한 정보 대신 시 주석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시 주석에 관한 다양한 소문이 떠돌았다. 이런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바로 신화통신의 논평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1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시진핑을 당 그 자체로 내세우려던 계획이 완전히 좌절됐고, 시진핑도 결국 원로들을 비롯한 반대 세력에 무릎을 꿇었다고 볼 수 있어서다.
[제동 걸린 시진핑, 중국 공산당의 막전막후는 이제부터 시작]
이번 사태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우선 중국이 시진핑 1인 지배 체제로 완전히 굳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진핑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마음대로 독재를 펼쳐 나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시진핑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 다시한번 확인됐다는 것이다.
또한 시진핑이 지금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물론 시진핑은 실체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또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시진핑을 공산당 그 자체로 만들어 버리려는 시진핑 추종자들이 추구하는 시진핑의 개혁노선과 절대 다수의 중국 인민들이 원하는 덩샤오핑식 개혁개방과는 방향도 완전히 다르고 결과도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진핑식 개혁이란 시진핑 독재의 강화를 뜻한다. 다시말해 시진핑은 중국식 개혁개방의 기초를 중국 공산당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공산당이라는 조직은 뒤로 하고 인민을 최우선에 두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방향 자체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시진핑 지도부에 속하지 않은 당의 원로들을 포함해 많은 당 이론가와 주축세력들이 지금 시진핑의 개혁 노선이 잘못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강력히 저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진핑의 칼끝도 이러한 저항세력 앞에 무뎌졌고 결국 칼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내의 혼란과 노선 투쟁이 과연 앞으로 어떻게 번져갈지, 또 이번에는 시진핑 세력이 당했지만 또 무슨 문제로 이들을 겁박하면서 시진핑에게 대들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하려할지 두고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중국 핵심 지도부내에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천하의 시진핑도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어떠한 격변을 일으킬지 와이타임스는 계속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