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중국’ 흔드는 美, 대만 존재감 확대 시도]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흔들면서 대만의 존재감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는 당장 중국의 극한 반발을 불러오면서 미중간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은 ‘하나의 중국’에 대한 기본적인 미국의 정책을 설명하면서 중국이 원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 국무부는 22일(현지시간) “미국과 대만 양국이 지난 2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미 국무부-대만 외교부 실무급 협의회를 열고 대만의 실질적 국제기구 참여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면서 “이번 협의는 대만의 유엔(UN) 시스템 및 다른 국제 포럼에 대한 의미 있는 참여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를 요구하는 중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국제무대 '존재감' 확대를 위해 미국이 지원 사격에 나선 셈이다. 미국은 심지어 대만을 유엔(UN)에서 퇴출한 1971년 총회 결의 해석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이번 기회에 ‘하나의 중국’ 문제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미국이 이렇게 ‘하나의 중국’ 문제를 꺼내 들면서 대만에 대한 지원 사격을 나선 배경에는 지난달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참가가 불발되면서 이후 WHO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 다른 국제기구에서 대만의 역할 확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대만과 홍콩 매체들은 중국이 쳐놓은 '하나의 중국' 포위망의 틈을 벌리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대만과 홍콩 매체들이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은 이번 모임 자체가 단순한 미국과 대만 외교부간의 통상적인 협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는 대만 수교국 12개국과 호주·일본·뉴질랜드·캐나다·체코·폴란드·영국·룩셈부르크·벨기에·핀란드·프랑스·유럽연합(EU) 등 20여 개국 외교사절과 당국자들이 모여 대만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는데 미국은 이 회의에 국무부 차관보 2명을 보냈다.
그런데 미국이 이 회의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1971년 중화민국(대만)의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등 유엔 내 지위를 박탈하고,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중국의 유일한 대표임을 인정한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에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만의 자유시보는 “미국 당국자는 특히 대만 주재 외교관들에게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가 결코 대만(의 지위)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고, 중국이 이야기하는 '하나의 중국'을 담았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외교관은 “미국 측은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고, 결의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모두 할 수 있다'는 정보를 모두에게 분명히 전달했다”며 “(미국 측은) 대만과 더 풍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에 한계선을 긋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만 주재 외교관도 “미국은 자국이 대사관을 설치한 국가에 대만 역시 대사관이나 대표처를 갖고 있는 경우 적극적으로 관여해 길을 열거나 소통하는 역할을 할 것이고, 대만과 당사국의 양자 관계 발전부터 다자 관계 가능성까지 포함해 교류 수준을 높이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이렇게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를 꺼내든 것은 중국이 이 내용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면서 전 세계에 중국이 생각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요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내 대표 권한' 문제만 해결한 것일 뿐 대만 지위는 해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의를 '하나의 중국'과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친 오용(misuse)이자 확대해석이라고 본다. 반면 중국은 결의에 나온 '중국'이라는 어휘에 이미 대만 등 '중국 영토 전부'가 포함됐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이 결의를 근거로 세계 각국에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한편 각종 국제기구에서 대만을 배제해 왔다. 실제 중국은 올해 1월 '친미·독립' 성향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당선된 직후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와 대만의 단교(중국과는 수교 복원)를 끌어낸 뒤 “오늘날에도 극히 적은 국가가 대만 지역과 이른바 국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에 어긋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홍콩의 성도일보는 “나우루가 유엔 총회 결의를 인용해 대만과 단교한 첫 사례”라고 짚었다.
[‘하나의 중국’, “중국이 과잉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주한 중국대사인 싱하이밍은 ‘중국이 패배하는 쪽에 베팅하면 한국은 후회할 것’이라는 폭언을 한 바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한민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의 중국’ 관련 내용은 단지 이재명 대표뿐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들을 포함해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조차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사실일까?
우선 분명한 것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정부는 단 한순간도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 적이 없다. 다만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오고 있다. 그래서 한국 외교부가 발신하는 외교적 문건이나 공식적 수사에는 줄곧 ‘원칙’이라는 단어는 없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말만 존재한다.
실제로 한·중 수교 공동성명을 보면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존중한다’는 말과 ‘인정한다’는 말은 천양지차다. 이를 외교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또 하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principle)’과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은 다르다는 점이다. 서방 국가 대다수가 인정하는 것은 ‘하나의 중국 정책’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미국은 1972년 중국과 수교를 할 때 공동 코뮤니케에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주장을 ‘인지한다(acknowledge)’”고 밝혔다. 한마디로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라고 정리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중국의 주장을 수용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은 “UN에서의 대만 축출에도 불구하고 대만과의 비공식적 관계는 유지할 것이며, 이는 공식적으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sovereignty)을 인정(recognize)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은 대만관계법을 만들었고, 대만이 중국에 의해 무력 점령을 당하지 않도록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22년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여전히 중화인민공화국을 유일한 중국 정부로 인정하는) ‘하나의 중국(One China) 정책’을 유지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민주적 자치를 실시하는 대만에 개입해 무력으로 접수할 관할권(jurisdiction)을 갖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잘라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은 서방세계 대부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다. 호주는 아예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장을 지지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다”고 못 박기까지 했다. 현재까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는 나라는 감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파나마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를 착각하거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美 ‘하나의 중국’ 흔들기, 오만한 중국에 대한 당연한 대처]
결국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당당하게 깨부수면서 대만의 국제사회 입지를 치켜세운다는 것은 오만한 중국의 외교에 당당하게 대응한다는 측면도 있고 또한 더 이상 중국의 방자함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러한 외교 방침은 중국의 남중국해 구단선 또는 10단선 주장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은 국제법상으로 아무 근거도 없는 9단선을 내세우면서 중국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무력행사까지 일삼고 있다.
실제로 최근 남중국해 필리핀 영해에서 벌어진 필리핀-중국간 충돌은 중국이 얼마나 깡패같은 짓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알자지라방송이 1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인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서 필리핀 군인들이 자국 선원들에게 보급품을 전달하려 했지만 중국의 해양경비대는 도끼와 칼을 휘두르면서 방해했고, 결국 필리핀 선원 1명이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는 한마디로 해적들이나 하는 짓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라 말하는 중국이 공공연하게 저질렀다는 점에서 할 말을 잃는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공갈 협박에 대해 고개 숙이면 중국은 그 다음에는 이렇게 칼과 도끼를 들고 대들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중국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언사나 행태에 주눅들어서는 안 된다. 더더욱 그러한 중국에 고개 숙이고 아부하는 짓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지금 ‘하나의 중국’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면서 원칙대로 하겠다는 것도 이러한 중국의 오만방자함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 하다.
부디 한국도 이렇게 중국을 향해 당당하게 대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이상 ‘하나의 중국’이라는 단어를 쓸 때 그 의미를 분명히 알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