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여름의 씨앗', 수주 계획·훈련·몇번 취소 뒤 결행]
이스라엘군이 지난해 10월 하마스에 잡혀갔던 인질 가운데 4명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 참석했다가 인질이 됐으며 245일 만에 구출됐다. 이러한 인질 구출 작전의 막후에는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있는 미국 정보기관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전날 대낮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택가를 급습하며 인질 구출 작전이 실행되었는데, 이 작전은 수 주에 걸친 계획과 훈련, 몇 차례의 작전 취소 끝에 대규모 엄호 공습, 하마스와 교전 속에 이뤄졌다”면서 “이날 작전으로 하마스 은신처에서 3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 인질을 무사히 구출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끌려가 245일 동안 가자지구에 억류됐던 인질 4명을 구출한 긴박했던 작전 상황을 이날 신속하게 공개했다.
'여름의 씨앗들'(Seeds of Summer)로 명명된 이날 작전에는 이스라엘군과 정보기관인 신베트, 이스라엘 국경수비대 소속 대테러 부대인 야맘(Yamam) 정예 요원들이 동원됐다.
전쟁 발발 245일째인 이날 오전 11시께 야맘과 신베트 대원들이 목표로 삼은 것은 이스라엘군 진지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에 있는 복층 건물 2곳이었는데, 이스라엘은 작전이 노출될 경우 하마스가 인질들을 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 두 건물을 동시에 급습했다.
당시 여성 인질인 노아 아르가마니(25)는 이 건물에 있는 한 팔레스타인 가정집에, 알모그 메이르 잔(21), 안드레이 코즈로프(27)와 샬로미 지브(40) 등 다른 3명의 인질은 다른 집에 각각 억류되어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이들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지만 검사를 위해 병원으로 보내졌다”고 부연했다.
이스라엘군의 설명에 따르면 하마스는 두 팔레스타인 가정에 돈을 주고 인질 억류를 부탁했고, 인질들은 무장 감시원이 배치된 방안에 감금돼 있었다.
인질을 확보한 이스라엘군은 “다이아몬드들이 우리 손에 있다”고 지휘 본부에 무전하고 하마스의 총격과 로켓추진 유탄(RPG)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군은 “작전에 투입된 요원들에게 많은 총탄과 로켓추진 유탄(RPG) 포탄이 쏟아졌다”며 “이에 따라 지상군과 공군이 작전 병력과 인질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포격과 공습을 가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군은 교전 과정에서 하마스 무장세력과 민간인을 포함해 100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인이 숨지거나 다쳤다고 밝혔다.
이 작전과 관련해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위험한 작전이었다”면서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지상과 공중에서 위협사격을 가하면서 그들을 구출했다”고 말했다. 또한 하가리 소장은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민간인으로 가득 찬 거리에서 이스라엘군에게 발포했다”고 비난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인질을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데 성공했지만 이들을 헬기에 태워 후송하기까지 하마스의 저항은 계속됐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는 작전지역 상공을 비행하는 헬기를 격추하기 위해 대공 미사일도 발사했지만 실패했다”면서 “인질들은 거주지 인근에 있던 헬기에 무사히 탑승했다”고 말한 뒤 해당 영상도 공개했다.
한편, 지난 3주간 인질 구출 작전 실행이 가능해 보이는 때가 몇 번 있었지만, 작전 개시 전에 모두 취소됐다고 이스라엘군 소식통은 전했다. 지난 6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은 고위 군 당국자들과 다시 작전의 위험성과 가능한 시나리오를 논의한 끝에 작전을 승인했고, 8일 오전 헤르지 할레비 참모총장과 정보기관 신베트의 로넨 바르 국장은 작전 개시 불과 몇 분 전에 최종 승인을 내렸다.
하가리 소장은 “하마스가 이러한 작전은 보통 밤에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허를 찌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간에 작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지 채널12 방송은 여성 인질인 아르가마니가 아버지와 재회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방영했다. 음악 축제장에서 인질로 잡혀간 그의 남자친구 아비나탄 오르는 아직 풀려나지 못했다.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7일 3천여 명의 무장대원을 이스라엘 남부에 침투시켜 1천200여 명을 학살하고 250여 명의 군인과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 가자지구로 끌고 갔다. 이 가운데 지난해 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협상이나 합동 구조 작전을 통해 최소 112명이 구출됐다.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인질 중 살아있는 사람은 80명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억류된 사람들 중에는 사망한 3명의 유해를 포함해 8명의 미국 시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측면에서 4명을 구해낸 이날 작전의 성과는 인질 전원 석방을 목표로 강력한 군사적 압박을 고집해 온 이스라엘군이 거둔 최대 성취라 할 수 있다.
한편, CNN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의 인질 구출작전 중 인질 일부가 살해되었다고 주장했으나 관련 증거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하마스 무장단체인 알 카삼 여단의 아부 오바이다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끔찍한 학살을 자행해 인질 일부를 구출할 수 있었지만 작전 도중 다른 인질도 살해했다”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방위군은 논평을 통해 “하마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심리적 테러를 사용하는 테러 조직이므로 그 진술은 제한된 신뢰도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10월 7일의 상징이었던 여성 인질 아르가마니]
그런데 이번에 구출된 4명의 인질 가운데 한 명인 25세 노아 아르가마니(Noa Argamani)는 10월 7일 테러의 상징 중 하나가 됐다.
그녀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열린 노바 음악 축제에 있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하마스에 의해 끌려갔는데, 당시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지역 공격 때 민간인들이 겪었던 공포와 억류 생활의 고통을 대변한 인질이다.
뉴욕타임스(NYT)에 의하면 아르가마니는 노바 음악 축제에 남자 친구와 함께 참석했다가 하마스에 인질로 잡혔다. 남자친구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아직 가자지구 어딘가에서 하마스에 의해 억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가마니가 당시 절망에 빠져 울부짖으며 하마스 대원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실려 가자지구로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특히 뇌종양 4기 말기 환자인 아르가마니 어머니가 “나에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며 “딸을 집에서 보고 싶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아르가마니는 올해 1월 하마스의 인질 영상에 이후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다른 인질 2명과 함께 등장했다. 하마스가 지난 5월 말 아르가마니로 추정되는 목소리를 담은 '심리적 테러' 영상을 공개하면서 이스라엘 정부에 인질들을 데려오라는 인질 가족들의 요구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결국 구조된 아르가마니는 어머니가 마지막 투병을 하고 있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재회하게 됐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이 인질구출에 중요한 역할]
이번 이스라엘군이 거둔 인질 구출은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9일,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있는 미국의 정보팀이 인질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며, 그동안 이스라엘이 수집했던 정보와 합쳐 작전이 수행됐다”고 보도했다.
WP는 이어 “예루살렘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특수작전부대와 정보요원들로 구성된 이 팀은 지난 10월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있었다”면서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미국의 드론 감시, 통신 감청 및 기타 소스에서 수집한 인질의 잠재적 위치에 대한 정보를 이스라엘 측과 공유해 왔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 분석가들은 또한 하마스가 가자 지하에 건설한 광범위한 터널 네트워크를 계획하는 작업에서 이스라엘 관리들을 돕고 있으며, 해당 작업에 대한 지식이 있는 관리에 따르면 정보 조각을 융합하는 강력한 분석 기술을 미국이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은 미국 시민을 포함해 하마스가 아직 억류하고 있는 인질들의 석방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이 작업에는 지속적인 협상과 ‘다른 수단’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 관리들은 미국 군인들이 이스라엘에 조언을 해왔지만 가자지구에서의 어떤 임무에도 이스라엘 군대와 동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곳(이스라엘)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 바 있다.
한편, Axios와 NYT도 구조 작전에 미국이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를 살린 4명의 인질 구출]
인질 구출이 이루어진 지난 8일, 이스라엘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동안 인질 가족들은 거의 매일 네타냐후 자택 앞에서 시위를 펼쳐왔고 내각은 분열되어 붕괴 직전에 놓여 있었다. 특히 거국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야당 대표 베니 간츠의 내각 탈퇴 발표도 인질 구출로 인해 일단 연기됐다. 이로써 네타냐후는 일단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네타냐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간츠에게 연정 잔류를 촉구했다. 네타냐후는 “지금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한 가자지구의 민간인 대거 사망 등으로 인해 국제적인 비난의 표적이 되어 왔던 상황도 인질 구출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부각되면서 당분간 잠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 소식보다 인질 구출이라는 명분이 더욱 강력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이번 이스라엘의 인질 구출 작전 성공은 위기의 네타냐후에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으며, 동시에 미군의 정보 능력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