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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2-29 00: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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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우리 정신문화의 특징인 한(恨)과 흥(興)은 서로 어떠한 연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기질이다. 그렇지만 한은 정서적인 슬픔의 정서로 가라앉히는 하향적 기질이고, 흥은 이와 반대로 기쁨의 정서를 일어나도록 하는 상향적 기질의 정서다. 따라서 정서를 안으로 감추려는 한과 밖에 내보내려는 흥은 겉으로 보기에는 같이 할 수 있는 기질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한과 흥이란 정서는 마음속에 함께 들어있다.


한의 정서는 한국인에게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정서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등 중국 고전의 책 어디에도 한이라는 용어를 찾을 수 없다. 한이라는 용어 대신에 중국과 일본에서는 원(怨)이라 하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양도 우리의 한과 같은 뜻의 말은 없다. 한이라 하는 정서는 강자의 억누름을 표현하지 못하면서 억압에서 느끼는 감정적인 응어리진 마음이다. 죽어라고 열심히 노동을 하여도 굶어야만 하는 가난에 대한 원망, 왕조 국가에서 왕족과 양반의 기세에 억눌려 가며 억지로 살아야 하는 약자로서의 원망들이 한이라는 정서 속에 녹아 있다.


한국심리학회에서 한국인의 감정 표현의 내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사랑, 행복, 기쁨과 같은 “쾌”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전체 사용단어 중 28%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감정관련 단어 중에 무려 72%는 참담, 배신, 슬픔과 관련된 “불쾌” 감정 단어들이다. 한국인은 감정적 말을 했다하면 십중팔구는 아니어도 칠팔은 불쾌한 말을 하는 습관이 있다는 뜻이다. 외국어에도 원망을 나타내는 정서감정은 있지만 한민족이 갖는 특유의 한의 정서와 일치하는 정서는 없다.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에는 복수의 감정이 없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복수는 뒤로 하면서 감내하고 참아내면서 한의 정서는 출발한다. 예를 든다면 은장도는 공격용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는 방어용의 무기로 어이없게도 자결용 무기라는 특징이 있다. 자발적으로 죽음까지 선택하는 수동적인 무기이다. 이런 무기는 한국인만 가지고 있는 한의 정서를 표현한다. 인내의 “인(忍)”은 심장(心)에 칼날(刃)이 박힌 모습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칼날로 심장을 후비는 듯한 고통을 참는 것이 바로 인내를 뜻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이런 정서를 풀어내는 방법에서 다른 국가와 크게 구별할 수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하는 상대적 말과 같이 가해자에게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복수 방법을 이용해 푸는데 반해서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어떠한 이유에서 복수하지 못하거나 복수를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복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가슴 속에 맺혀 있는 응어리를 풀려 한다. 그러므로 한의 정서에는 참아내는 특성으로 인해서 생기게 되는 병이 생긴다. 이런 병은 한국인에게만 생기는 병으로 영어로 “hwa-byung”이라는 한국식 고유의 병이 있다.


화병(火病)은 다른 말로 울화병(鬱火病)이라고도 한다. 모두 불(火)과 관련되어 있어서, “가슴이 타는 것” 같은 “속에서 불이 난다”는 증세를 표현하기 위한 병이다. 사실 우리의 화병과 서양 의학이 말하는 우울증과는 상당히 다르다. 화병은 주로 가슴이 답답하거나, 온 몸에 열 의식을 느끼고, 목과 명치에 뭉쳐진 덩어리를 느끼거나, 치밀어 오르는 느낌,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느끼고, 깊이 눌려있는 분노의 감정 등 주로 “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 그러나 우울증은 “정신적 증상”을 중심으로 우울함을 호소하기 때문에 화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민족은 이러한 정서적인 한을 흥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풀어내려고 한다. 흥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것은 들판을 돌아다니며 떠들썩하게 하는 꽹과리 사물놀이, 다 같이 어우러져 밤낮 상관없이 춤을 추는 강강술래, 전통적으로 음주가무에 능한 노래방 문화 등이 있다. 한동안 세계를 뛰게 했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한국 전통의 흥문화인 각설이와 농무(農)라는 흥의 문화를 서양식의 음악과 잘 버무려 창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 인기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이끄는 k-pop도 모두 한국인의 한의 정서와 이를 풀어내는 흥의 문화가 잘 어우러진 결과라고 본다.


합리적 객관성과 이성을 기초로 하는 힘과 권력의 서양권과 주관적 감성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문화는 한과 그것을 풀어내려는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 민족은 7:3의 비율로 우반구가 더 우세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이지만, 서양권은 반대로 좌반구가 우세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다.


우리 한민족은 여기에 역사적인 배경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외세 침략과 식민생활, 6.25 전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의 아픔과 경제적인 가난이라는 환경적 조건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활기가 넘치는 합리적인 좌반구 중심 노래 가사가 탄생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가슴 속 억눌린 한을 흥이란 노래를 통해서 밖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적인 가요가 된 것이다. 이제 지금의 트롯은 한국인 전통의 한을 뛰어 넘어 즐겁고 행복한 흥의 트롯으로 새로운 장르를 찾고 있는 중이다.


흘러간 애창곡의 가사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음악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노래는 2017년 12월 기준 604,029 곡인데, 노래방에서 늘 애창되는 26,250곡의 대중가요 가사를 분석한 자료가 있다. 노래가 모두 “사랑 타령” 뿐이라는 사실에 반대할 사람이 없을 만큼 “사랑”이란 말을 이길 다른 단어는 없어 보인다. 대부분 못 다하고 이루지 못한 한의 노래다. 사랑이라는 노랫말이 쓰인 애창곡을 시대별로 분석하면 50년대까지는 전체 대중가요 중에 고작 2.19%였지만, 2000년 대 이후에는 11.03%로 많아진다. 여기에 외래어 “러브”와 영어 “love” 라는 단어까지 포함하면 무려 65.22%까지 오른다.


한국인이 애청하는 가요 속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단어 빈도를 보면 “운다, 눈물, 밤, 꿈, 정든, 꽃, 바람, 이별, 비, 등불, 외로운, 슬픈, 사랑, 나그네, 멀다, 미련, 안개, 죽음, 배, 고향, 간다, 길, 엄마, 부두”와 같은 단어들이다. 애창되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년대 별로 내용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10년대에는 학도가, 권학가, 망향가, 부모 은덕가 등 계몽주의적 성격의 창가가 중심이었고, 1920년대에는 희망가, 황성 옛터, 사의 찬미, 강남 제비, 사막의 한 등으로 이어지는 애수, 감상, 절망, 암울한 사회상을 노래했다. 1930년대에는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짝 사랑, 불효자는 웁니다, 낙화유수, 홍도야 울지 마라, 애수의 소야곡, 나그네 설움, 바다의 교향시, 타향살이, 알뜰한 당신 등의 눈물과 설움 등의 심정을 노래했다. 1940년대는 고향 초, 비 내리는 고모령, 꿈에 본 내 고향, 울고 넘는 박달재, 아내의 노래, 가거라 38선 등으로 이별, 슬픔, 망향, 패배 의식, 해방 감격 등을 노래했고, 1950년대에는 한 많은 대동강, 이별의 부산 정거장, 단장의 미아리 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전선 야곡, 삼팔선의 봄, 유정 천리, 대전 브루스, 방랑 시인 김삿갓, 산장의 여인, 오동동 타령, 무너진 사랑 탑, 과거를 묻지 마세요, 물레방아 도는 내력, 나 하나의 사랑, 낙엽 따라 가 버린 사랑, 꽃 중의 꽃, 산유화 같은 한국 동란의 고통, 이별, 체념의식 등이 노랫말에 묻어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가슴 아프게, 갈대의 순정, 동숙의 노래, 고향 무정, 외나무 다리, 하숙생, 동백 아가씨, 검은 장갑, 누가 울어, 빛과 그림자, 떠날 때는 말없이, 산 넘어 남촌에는, 미워도 다시 한 번, 돌아가는 삼각지,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갑돌이와 갑순이, 노란 샤쓰의 사나이, 대머리 총각, 서울의 찬가, 빨간 마후라 등 사랑과 이별의 밝고 명랑한 즐거운 주제들이 다양하게 노래로 표현되었다. 1970년대에는 가는 세월, 과수원 길, 세월이 가면, 하얀 손수건, 두개의 작은 별, 아침 이슬, 꽃반지 끼고, 편지,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때 그 사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오동 잎, 곡예사의 첫 사랑, 열애 등 소박한 정서가 녹아 있는 청년 문화와 순수한 사랑을 노래한 유형을 구별하기 힘이 드는 주제가 다양해졌다.


1980년대에는 고추잠자리, 한 백년, 공부합시다, 멍에, 나는 너 좋아, 바람이었나, 아파트, 종이 학, 촛불, 질투, 솔개, 독백, 처음 본 순간, 허공, 사랑이여,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등의 대중적으로 세련되고 비정서적인 언어들을 많이 사용했다. 1990년대는 애모, 부초, 잘못된 만남, 날개 잃은 천사, 컴백 홈, 난 알아요, 발해의 꿈, 하여가, 홍보가 기가 막혀 등의 노래로 활기차고 자유분방하지만 아직도 괴로운 노랫말을 표현하면서도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노래가 애창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음악을 청취할 CD, 테이프, 한정된 라디오의 매체에서 다양한 엔터테이너들이 양산된다. 댄스 가수, 발라드, 래퍼들이 급속히 양산되었고, 2010년대에 들어서서 찰나적이고 특히 역동성이 강조되고 다양한 동작을 곁들인 정체성 상실, 불안한 현실, 사상성의 결여, 자유분방 등이 표현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대중가요는 어느덧 세계 가요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흔히 K-Pop이라 부르는 한국 대중음악은 아직은 한국 댄스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얼마 있으면 한국의 순수 대중음악도 세계에서 환영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싸이(psy)와 방탄 소년단(BTS)과 같은 댄스 음악만이 빌보드 차트의 상위권에 올라있다. 우리 전통문화 음악이 세계화가 된 것인지 세계의 음악이 한국화 된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동서양의 음악적인 동질성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감이 든다. 한국의 음악이 이처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크게 기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들은 물론 국민이 열심히 일한 뒤 피곤을 푸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지금과 같이 온 국민을 노래만 하는 매미로 만들려는 열풍은 아니었다. 어쩌면 근면한 개미와 같은 국민들의 노동 정신을 깎아 내릴까 걱정이 된다.


전국 골목마다 노래방이 넘치고 있다. 세계에서 노래방이 제일 많은 곳이 한국이라 한다. 한국인들이 그 정도로 노래를 사랑한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TV의 채널마다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먹고 즐기는 프로로 편성하는 것은 대중매체의 사회적인 책임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스럽다. 현시대의 언론 매체는 국민들이 모방하고 배우려는 효력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방송국마다 시청률만 따지면서 지나치게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면 안 된다. 매체마다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다 하지 못할 때 많은 국민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 로마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기원 후 1세기 때 클라디우스 황제가 시민이 먹을 빵과 포도주를 무료로 나누어 주었고,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에서 시민을 위해 격투기와 같은 경기를 년 93회나 보여주었다. 그것이 날로 늘어나서 4세기 무렵에는 365일 중 무려 175일이나 서커스를 관람하게 했다. 그런 후 로마는 결국 인접국의 침략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흔히 지나친 3S(sports, screen, sex) 정책은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마약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통제되는 것이 좋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다. 삶의 과정에서 활력을 주는 맛과 흥을 돕는 조미료의 역할 이상으로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면 곤란하다. 정부와 언론들이 국민을 먹고 노는 과소비문화에서 근면하고 검소한 소비문화로 유도하는 정책적 판단이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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