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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23 05: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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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산책길 냇가의 야생오리가 벌써 9마리와 5마리의 새끼를 부화하여 데리고 다니는 두 쌍이 목격되었다. 몇 년 전에도 20여 가족이 봄부터 새끼를 부화시켜, 작게는 3~5마리부터 많게는 10여 마리의 새끼를 키우는 것을 보았다. 가끔은 길 고양이들의 습격으로 희생된 새끼들도 있었겠지만 여름에 큰 비가 없어서 장마도 없는 덕에 새끼들도 대체로 무사히 잘 자랐다. 그런데 냇가가 비좁을 정도로 가득했던 오리 가족들이 가을이 되자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혹시 무슨 변이 있었나 하고 걱정도 해보았지만 틀림없이 새끼들이 이제는 다 커서 어미 곁을 떠나는 이소(离巢)가 시작되었다. 간혹 어미를 떠날 만큼 성숙했는데도 떠나지 않으면 어미가 강제로 쫓아낸다.


이소를 했다면 어미들과 함께 가지는 않았을 텐데 새끼들끼리 어디로 갔을까? 새끼들은 그간 어미와 함께 성장하면서 먹거리를 선택하는 방법에서부터 위험에 대처하는 요령이나 쉬거나 잠을 잘 자리를 선택하는 방법까지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모두 배웠을 것이다. 이것이 동물들의 이소 과정이다. 조류나 동물들은 일단 이소를 하면 거의 대부분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부모의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다. 이소를 기점으로 부모와 새끼들은 각자 살아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부모의 양육 책임만 있는 것이고, 독립할 때까지 양육의 혜택을 받은 새끼들은 부모를 부양할 의무는 없다.


모든 조류와 대부분의 동물들은 이런 원칙에 따라 새끼들이 양육되고 독립생활 능력이 습득되면 자연스럽게 부모 곁을 떠나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어미들은 새끼를 열심히 양육하여 독립시키는 것으로 의무를 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미는 늙거나 병들면 병사하거나 차상위 동물의 먹잇감이 되거나 운이 좋으면 자연사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삶의 기본 원칙이다. 모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자와 같은 일부 포유류는 어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부계 중심의 동물들은 새끼 양육이 마무리되면 어미가 새끼 곁을 떠나거나 또는 새끼들이 어미 곁을 떠난다.


문화권에 따라 다르겠지만 동양에서는 부모가 늙으면 자식이 부양의 책임을 진다. 부모는 자식을 양육할 의무가 있고, 자식은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식은 부모로부터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부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만의 특이한 부모-자식 간의 의무와 권리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이 부모가 늙거나 병약하면 살아 있는 부모를 산에 유기했다가 사망하게 되면 땅에 묻는 고려장이 있다고 한다. 한국만이 자식이 부모를 끝까지 부양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효 사상을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한민족의 이 같은 유별난 풍습이 있다고 하여 당혹스럽다.


대중가요 가수인 장사익의 “어머니 꽃구경 가요”라는 노래의 가사는 고려장을 치르기 위해 지게에 어머니를 태우고 가는 효자의 효심과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을 표현한 감동스러운 노래다. 효심이 가득한 자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잃을까 염려하는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효심이 끝이 없는데, 이 노래의 가사처럼 고려장이라는 제도가 실제로 있기는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고려장에 대한 역사적 진위 여부를 좀 더 상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국어사전에서 “고려장”이라는 뜻을 찾아보면 “고분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의외의 뜻도 함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뜻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어떤 흥미 있는 역사적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선조들의 풍습을 대상으로 한 서울대 규장각의 연구에 의하면 죽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무덤 속에 고려청자를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죽은 이의 권력이나 지위를 표시하기 위해 무덤 주위에 묘비, 상석, 다양한 인물상 같은 장식물도 배치하여 놓았다. 그래서 이 같은 죽은 이들을 위해 넣은 방대한 양의 고려청자는 최근까지도 보존되어 왔고 또 발굴되고 있다.


고려사에는 부모상을 당하면 3년 상을 치르는데, 이 기간에는 혼인이나 부부 관계도 금하고, 술잔치도 열 수 없는 금기 사항이 지켜진다. 여기에 더하여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무덤을 지키는 시묘살이도 있었다. 시끄럽고 즐거운 오락이나 말 타기, 성 행위는 죽은 이를 모욕하는 짓으로 비난받고, 때로는 참형에 처하기도 했다. (조)부모를 때리면 참, 즉 목을 베고, (조)부모를 사법기관에 고발하거나 욕하거나 꾸짖어도 교(绞), 곧 목을 옭아매 죽였다. 이처럼 불효를 참하는 조항은 있어도, 부모를 “생 매장”하는 일은 상상의 범주에도 들지 못했던 범죄라서 징벌 조항에도 없다.


그러나 일제가 침략하면서 무덤을 파헤치는 일은 우리 국가의 사기를 꺾어놓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 수치와 모욕을 안기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파괴된 무덤에서 약탈을 자행하는 것은 전리품 챙기기와 같은 것으로 당연했고, 또 그것으로 돈벌이도 하였다. 이처럼 일제는 대한민국 말기부터 우리의 오래된 무덤에서 도굴을 자행하였다.


도굴한 무덤을 “고려장분토(高麗葬墳土)”라고 불렀다. 이후 자연스럽게 “고려장”을 “오래된 무덤” 이라고 일반화하여 사용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우리의 무덤을 파헤쳐 고려청자와 같은 보물을 챙기려고, 조선이라는 야만의 나라에서는 살아있는 늙은 부모를 깊은 산중에 버렸다가 수명을 다 하면 장례를 치렀다는 이른바 “폐륜아 고려장”이 있었다고 악의적으로 조작해낸 일제의 역사적 잔재라고 믿어진다.


그러나 과거에 있었던 효자의 풍습과 현대의 효자 풍습에 대한 시각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 현대화되고 도시화되면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해지는 오늘 날 이른바 “택시 고려장”과 같은 부모 유기 소식이 간헐적으로 들리는 것으로 보아 효 사상의 급격한 붕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 클 때까지 부모의 양육 혜택만 받고 부모로부터 몰인정하게 둥지를 떠나버리는 “새 족”이 있는가 하면, 양육의 혜택을 받고 평생을 서로 독립해서 각자가 살아가는 “망아지 족”, 양육의 혜택을 받은 후 부모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끝까지 지키려는 “효자 족”까지 그 양상은 천차만별이다.


서양권에서 양육의 원칙은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책임을 진다. 성인이 되면 자식은 대부분 부모의 품을 떠나 독자적으로 생활한다. 다시 말하면 서양의 양육과 부양의 원칙은 냇가에서 내가 관찰한 오리의 이소 현상과 대체로 같은 논리다. 성인이 된 자식은 부모의 특별한 도움 없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미래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부모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같은 사회적 시스템은 부모는 자식의 양육을 성인기까지만 책임지고, 자식은 부모 부양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회적 약속이 있어서 가능하다. 부모는 자신의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거나 경제적 약자를 위해 사회에 기부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자유 선택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물질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강한 정신적 유전자를 물려주면 된다. 서양의 자녀들은 대체로 성인기 이후 “금수저, 흙수저” 논란과는 상관없이 비슷한 출발점에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과 성인기 이후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강한 독립심과 적극적인 현실 참여 동기를 기를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이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benchmarking)할만 하다.


향후 45년 후인 2065년의 우리나라 노인 부양비(생산연령 인구 100명 당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 수)가 100.4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인 부양비용을 지출해야 한다고 한다. 생산인구 1명이 노인 1명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곧 다가온다. 부모는 자녀를 성인기까지 책임지고, 그 이후부터는 노인기를 대비해 스스로 저축을 해 두는 사회제도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자식은 자식의 힘으로, 노인은 노인의 힘으로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코페르니쿠스적 개인주의적 사회제도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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