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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7-06 06: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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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는 무리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그 무리에는 반드시 리더가 있다. 그런데 환경과 상황에 따라 뽑히는 지도자의 선발기준이 다르다. 즉, 평화 시에는 힘이 강하고 용감한 젊은 원숭이가 리더가 되고, 전시에는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가 많은 늙은 무리에서 선발되어 무리의 큰 손실 없이 지혜롭게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다고 한다. 즉 원숭이는 상황에 따라 지식과 지혜를 번갈아 가며 활용한다.


인간의 뇌도 생의학적으로 오른쪽 뇌(우뇌)와 왼쪽 뇌(좌뇌)로 나누어지며, 그 기능도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좌뇌는 우리의 지능 즉 지식을 담당하며 언어기능도 여기서 담당하기 때문에 말은 논리적 이다. 반면에 우뇌는 감성과 지혜를 담당하며 따라서 감정도 여기서 담당하기 때문에 감정이 폭발하면 논리성이 부족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도구와 불을 이용하면서 점차 좌뇌 중심적인 사회로 진화되어 현대는 완전한 지식 중심의 좌뇌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주로 우뇌를 사용하여 감정이나 감성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비논리적이라 하여 대우를 못 받는다. 지금 우리에게 감성과 지혜는 무시되고 지식만이 강조되어 아는 것이 힘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때문에 현대 사회는 지식에 해당되는 지능 만능주의에 빠졌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활용하는 좌뇌 교육만 시킨다. 모든 학생들에게 인공지능(AI)이 탑재된 로버트를 양산하고 있다. 아이들의 감성과 감정은 메말라 있다. 가정에서의 육아 태도나 사회에서의 바람직한 가치관도 지식 지상주의에 빠져 있어 지혜나 감성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인간의 감성과 감정은 메말라서 인간성을 상실한 로버트 인간만 살아가고 있다. 지식을 담당하는 좌반구만 커진 짱구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재직시절 법대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매 학기마다 지혜를 매우 강조하여 말한 일이 생각난다. 법관이 되기 위해서 고등고시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시험이란 육법전서와 판례집을 얼마만큼 잘 외웠는가가 당락의 기준이 되는데 그런 것들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컴퓨터에게 물어보면 전 세계 어느 나라의 법적기준이나 판례를 상세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향후 시험은 육법전서를 외운 기억력 테스트는 그만두고 컴퓨터에게 물어본 그 법규위반에 기초하여 왜 그런 범행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향후 그에 합당한 처벌을 어떻게 해야 교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 판단을 할 때, 보다 감성적이고 더욱 지혜롭게 범죄자를 이해하고 해석할 줄 아는 그런 법조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법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법학보다는 인문학이나 인간학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한 기억이 난다.


또한 의대 교수 회의에서 병원에서 신참 풋내기 의사나 수십 년 경험이 풍부한 의사나 치료비를 청구할 때 왜 단가가 똑같은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아마도 의학적 지식만 계산하고 경험이나 지혜 같은 감성지수는 청구서에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지식 만능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의사들만 제외하고 교사 군인 공무원 회사원 등 모든 사회의 종사자들은 나이나 경험에 따라 급수가 높아지고 급여가 올라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아침마다 산책을 한다. 산책길을 걷다가 좀 쉬려고 벤치에 앉으려면 먹다 남은 음료수통이나 의자를 닦은 휴지 같은 쓰레기가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그 쓰레기를 일자리 임시직 노인들이 부지런히 치우고 다닌다. 먹다 남은 빈 쓰레기를 왜 자기가 가져가서 치우지 않는지 참 궁금하다. 우뇌가 작동을 멈춘 반쪽짜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군동기의 한 친구는 아침마다 약 2Km 정도 되는 산책길에 사비를 들여 쓰레기 포대를 매달아 놓고 매일 그 쓰레기를 수거하고 다닌다. 늘 정해진 시간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또 건강해서 좋다고 한다. 얼마 전 세계 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일본 응원단이 응원이 끝난 후, 자기 자리의 쓰레기를 말끔하게 치우고 갔다고 신기한 듯 외신을 타고 전 세계의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가장 평범하고 당연한 일을 했는데도 말이다.


워낙 지식만능 사회가 되다 보니까 그 지식의 수준을 측정하려는 방법이 오래 전부터 발달하여 이제는 지능지수(IQ)라는 개념을 개발하고 너도 나도 다 이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회가 너무 일방적으로 지식중심으로 돌아가니까 학자들이 우뇌의 존재인식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감성지수라는 개념을 발표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인간의 좌우뇌 기능을 함께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싹트고 있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원숭이들이 사회생활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아주 오래 전부터 좌우뇌를 섞어가면서 효율적으로 활용해 오던 방식을 인간들이 이제 겨우 흉내 내기 시작했으니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최근에 전통 트롯가요가 크게 유행하는데 아마도 시대적으로 너무 지식 중심으로 살다 보니까 이제 감성과 감정 같은 따듯한 가슴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 세상에 싫증이 난 모양이다. 멜로디에 붙여진 노랫말이 그렇게도 애절하고 감성적이어서 청중들의 가슴을 울리고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것 같다. 잃어버린 감성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좌우뇌가 적절히 작동하는 건강한 사회가 그리워질 때가 왔다. 감성지수와 감정지수가 많이 연구되어 그런 지수를 측정할 수 있고, 그런 기능을 길러주기 위한 학교교육, 가정교육, 사회교육이 강화되고 사회에서 그런 인재들을 선발해서 쓰는 건강하고 즐거운 그래서 좌우뇌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로 변화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식과 감성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자는 지식을 담당하는 머리와 감성과 지혜를 담당하는 가슴간의 물리적 거리는 30c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머리에 담아 놓은 지식을 감성과 지혜로 승화시켜 실천에 옮기는 데는 30년이라는 긴 수련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단순한 지식을 지혜롭게 실천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데는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아니 이제는 더 배울 것이 없는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거드름피우는 지식 만능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사람을 알고 사회를 이해하고 자연을 사랑하여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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