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3-06-26 12:18:41
  • 수정 2023-06-26 12:19:00
기사수정


▲ [사진=Why Times]


국내의 어떤 기업은 신입사원 교육으로 한 달 동안 지정한 지방 곳곳을 걸어다니며 자사의 상품을 판매하며 얻는 수익금으로 본사까지 도착하는 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또 어떤 기업체는 입사 시험에 하프 마라톤 과목이 있어 지적인 수준이 높아도 회사가 정해준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 최종 합격된다고 한다. 내가 경영주라면 여기에 지원자의 윤리•도덕의 덕(德)수준도 합산하고 싶다. 군 조직에서는 계급 승진할 때 일정 기준의 체력점수를 통과하도록 해야 한다.


내가 젊은 시절에 잠시 기업체에 근무하고 있을 때 컴퓨터 모의 게임을 통해 10년 동안 기업을 경영하면서 영업 실패로 파산하는 경험도 맛보았고, 5명이 한 조가 되어 험한 산악지대에서 독도법(讀圖法)을 이용하여 본부가 지정한 지점까지 선착순으로 들어오는 산악 교육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기업의 한 식구가 되기 위해 풍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도덕과 윤리와 같은 덕, 협동정신과 체력과 같은 덕목들도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교육이었다.


인류가 수렵시대와 농경시대에는 지적 능력보다는 건강한 체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남자는 키가 크고 힘이 강해야 사냥을 더 잘 할 수 있었고 농사도 잘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도 밭에 나가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며 쌀가마도 번쩍 들어서 나르고, 아이들도 순산하고, 가정 일도 순조롭게 잘 해내는 다소 풍만하고 통통한 힘이 있는 몸매를 미인이라 했다.


그리고 이런 건장한 남성이 사냥을 해오면 사냥 능력이 부족한 이웃에게 기꺼이 나눠 주고, 농사를 넉넉하게 지으면 먹거리가 부족한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덕(德)이 필수적이었다. 그렇지만 산업화 시대를 거쳐 정보화 시대를 맞으면서 점차로 지적인 능력만을 중요시 하게 되고, 덕(德)과 육체적 능력은 무시하게 되었다. 모든 학교 교육의 중요한 목표인 지덕체(智德體) 중에서 오직 지(智)만을, 엄밀히 말하면 지식 중심의 지(知)만 남고 지혜를 포함하는 의미의 지(智)와 덕체(德體)에 대한 교육은 슬그머니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가 지식산업 시대로 발전하면서 지식만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많이 알아야만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더욱 많은 교육을 받을수록 부와 명예와 높은 지위를 보장 받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식 중심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자 덕체(德體)의 덕목은 오래전부터 실종되었다. 우리의 사회는 어느덧 많이 배워서 사회적인 지위가 높게 되면 도덕이나 양심과 같은 덕(德)에 손상이 되는 범법행위를 범해도 법망에 저촉되지 않게 되면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 철면피 같은 뻔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지식과 기술을 중심으로 물질 중심적인 경제력만 키우는 지(知)만이 최우선 과제인 세상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가 지식만능 주의에 빠지게 되자 “지식 일반화”라 하는 새로운 편견이 생겼다. 많은 지식이 있으면 도덕•윤리와 같은 덕(德)의 수준도 높아서 신뢰할 수 있고, 신체 조건도 건강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렇지만 물론 이 같은 편견은 아주 잘못된 신념이다. 예를 들어 예체능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어 머리를 써가며 이미지 훈련을 해도 기대하는 좋은 결과는 얻을 수 없다. 신체의 근육이 과거의 기억을 따라 주지 않아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면 절대로 희망하는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이와 같이 비록 지식이 많아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도덕과 윤리적인 덕(德)의 수준은 기대보다 훨씬 낮을 수 있다. 어느덧 우리의 사회는 여야 정치인, 국회의원이건 지방의회 의원이건, 공무원이건 국민이건, 배웠건 못 배웠건, 종교가 있건 없건, 직위가 높건 낮건 간에 모두가 기회가 되면 도덕과 윤리는 서랍 속에 꼭꼭 숨겨 두고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법과 불법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돈을 버는데만 혈안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간 저질러온 범법 행위가 밝혀지면 반성보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려는 사이비(似而非) 인간들이 선량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돈 푼이나 있거나 권력이 좀 있게 되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도 안하무인의 추태를 부리며 으스대는 꼴불견 세상이 되었다. 놀라운 일은 머리가 남들보다 좀 명석하다 하여 사회적인 명성과 지위를 얻게 되면 법을 어겨도 성추행을 해도 용서가 되는 웃지 못 할 사회가 되었다. 지식주의와 물질지상주의로 바뀌면서 앓게 되는 후유증이다.


분명히 지금 우리들은 총체적인 도덕 불감증으로 중증을 앓고 있다. 이렇게 된 결과는 정치인들의 지나친 포퓰리즘 정책이 근검절약의 정신을 물질풍요와 공짜 심리로 바꾸어 놓은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과 학교에서 오랫동안 덕(德)을 교육하지 않아서 전통적인 정신적인 가치관과 문화가 무너진 교육제도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교육의 부재로 그 동안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아 오던 동방예의지국의 나라로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지만 덕(德)이라는 윤리만큼은 자랑해 왔던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거리에 사람은 많지만 쓸 만한 사람이 없어 대낮에도 등불을 켜고 쓸 만한 사람을 찾고자 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처럼 우리도 이제 등불을 밝히고 쓸 만한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할 세상이 된 것 같다. 그가 거리에서 찾으려고 했던 쓸 만한 사람이란 머리만 영리한 사람은 분명 아니고 지덕체(智德體)를 균형 있게 잘 구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김형석 명예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아마도 윤리•도덕과 정의를 알면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도 하는 “시민”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국민들을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첫 번째 국민은 “민초”로 글자도 잘 모르고 푼돈에 약하고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고 복종을 잘 하는 이른바 무지렁이들을 말한다. 두 번째로는 “국민”이다. 국민은 글자도 잘 알고 세상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고 있지만, 속으로만 불만을 품으면서 표현하지는 못하는 계층으로 시키면 묵묵히 잘 따르는 사람이다. 세 번째 국민은 “시민”으로 불의에 저항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국민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 방안도 찾을 줄 아는 국민이다.


사실 우리의 선조는 일찍이 지육(智育)과 덕육(德育)과 체육(體育)을 아우르는 전인격(全人格) 교육에 힘쓴 기록이 있다. 신라시대 이전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통일신라부터 화랑도교육(花郞徒教育)을 실시했다. 신라에는 화랑도와 같은 독특한 교육제도가 존재했었기 때문에 국민의 의식을 고양하고 역량을 결집하고 삼국을 통일하는 대업도 이룰 수가 있었다. 화랑도(花郞徒)는 일명 원화(源花), 국선(國仙), 풍월도(風月徒)에서 풍류도(風流徒)까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진흥왕 37년(576년)에 원화(源花)를 봉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진흥왕 때에 새로이 창설되어 제도화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전에도 존재했던 기록이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화랑도와 같은 습속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진흥왕 시절에 마침내 그런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에서 공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화랑도의 기본사상과 교육내용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화랑도의 기본사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유불선(儒彿仙) 삼교(三敎)의 사상을 모두 포괄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류도(風流道)라 생각된다. 김대문의 화랑세기(花郞世記)에는 “어진 신하와 충신들이 모두 화랑 출신이며,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병사도 화랑 출신들”이라고 기록한 것에 비추어 볼 때, 화랑도의 교육목적은 국가에 헌신, 봉사할 수 있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들을 양성했을 것이다.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던 화랑도의 교육목적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풍류사상에 관련된 것과 무예 등이 화랑의 주요 교육내용이었을 것으로 추론 된다. 풍류사상은 유불선 삼교의 사상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고 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유교적 교양이 주가 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 진흥왕조 기록을 보면 화랑도의 교육내용과 방법의 일단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서로 도의(道義)를 연마하기도 하고, 서로 노래와 음악을 즐기기도 하고, 산과 물을 찾아 유람하였는데 아무리 멀다하여도 가지 않은 곳이 없다.”고 기록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화랑도는 평화 시에는 수양단(修養團) 역할을, 유사시에는 전사단(戰士團) 역할을 하는 집단교육 형태로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서 도의연마(道義鍊磨)와 가악상열(歌樂相悅)과 산수오유(山水娛遊) 등의 여러 가지 교육방법을 적용했음을 알 수 있다.


도의 연마를 통해 이성도야(理性陶冶)에 힘쓰고, 가악상열을 통해서 정서도야(情緖陶冶)에 집중하고, 산수오유를 통해서는 심신 단련 및 직관도야(直觀陶冶)에 해당하는 덕목을 교육했을 것이다. 지적 능력, 감성적 능력, 도덕적 능력과 신체적 능력까지 망라한 것이다. 화랑도의 교육이 지(智)와 덕(德)과 체(體)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추구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화랑도의 균형 있는 교육으로 신라에는 문무를 겸비한 많은 인재들과 지도자들을 배출하였고, 이로 인한 건강한 사회 분위기는 효과적인 국력을 결집하는 역할이 가능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삼국통일의 대업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기 어려운 지덕체(智德體)를 아우르는 초특급 제도로 완벽한 전인격 인간 육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이러한 전인적 교육제도가 해방 이후 서양식 문화와 가치관이 교육 현장에 스며들면서 전통적인 동양적 문화 가치관이 폄하되기 시작했다. 서구적인 개인/자유주의 가치관과 지식만능 주의에 편승한 물질주의로 인문주의적 색체가 강했던 동양식 정신문화가 붕괴되고 폄하되었다. 가족주의 정신과 집단주의 정신이 사라지고, 근면 청빈 겸손 예의 같은 전통적인 정신문화 가치관이 서양의 개인주의 정신과 물질주의 정신으로 대체되는 가치관의 대혼란을 겪게 되었다. 서양은 지(知)를 중심으로 하는 물질 중심적 가치관을 교육한다 해도 윤리 도덕의 문제는 전통적인 정신문화인 청교도적인 가치관이 살아 있기 때문에 실제로 지덕(智德)의 균형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아름다운 정신적인 전통 가치관은 서구적인 가치관에 의해 통째로 비판 받고 매도되면서 지덕체의 정신적인 기둥이 붕괴되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고유의 정신적 가치관과 교육제도가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 지덕체(智德體)의 조화로운 관계가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아직 지(智)도 아닌 지(知)라는 반쪽도 안 되는 덕목으로 겨우 지탱해 내고 있는 모양이다. 마치 곡예사들의 곡예를 보는 것처럼 매우 불안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한 번 더 지덕체(智德體)가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건강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아마도 상당 기간 동안 가치관의 큰 혼란 시대를 거쳐야 할 것 같다. 독일 국민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뒤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에 점령당하고 난 후에 사상가 피히테(Fechte)가 피를 토해 내는 심정으로 절규하며 외쳤던 “독일 국민들에게 고(告)함”이라는 우국적 윤리회복 운동이 우리에게도 시급히 필요하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hytimes.kr/news/view.php?idx=15371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