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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15 07: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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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루이스 “여성은 한 가정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하나님이 특별히 창조하신 존재”
–<아모르파티>가 권하는대로 살아온 여성이 최종적으로 만나는 운명의 민낯 “내가 누구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살면 자유와 환희, 큰 쾌락이 기다리는 것 같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의 한 장면.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S. 루이스는 소설가이자 평신도 신학자, 기독교 변증론자이기도 하다. 그의 어떤 책을 읽다가 기억에 남은 구절.


‘여성은 한 가정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이 특별히 창조하신 존재’


저런 인식 자체도 뭔가 아슬아슬 위험하지만, 루이스는 한 술 더 뜬다.


‘그래서, 한 가정의 머리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 여성은 한 가정의 배타적인 이익이라는 데 중심을 두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평한 견해를 갖기 어렵다. 다른 가정들과 사회의 객관적이고 중재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


정확한 표현 그대로는 아니지만, 저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메시지에서 드러나는 사고 방식은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극혐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루이스의 저 인식이 여성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성경에서는 심지어 ‘남자가 여자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고, 여자가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갑자기 논쟁을 유발하기 쉬운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그동안 제목만 알고 실제로 들어보지는 못한 <아모르파티>인가 하는 유행가를 유튜브에서 얼마 전 들어봤기 때문이다.


‘쏜 화살처럼’, ‘슬픔이여 안녕’ 등 유명한 서양 문학의 일부 구절과 제목을 대충 주어와서 써먹은 표현들도 웃기지만


말해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돼
하지만 더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갈 한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하면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이런 가사가 문득 내가 과거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며 봤던 어떤 짤막한 장면을 문득 떠올렸기 때문이다. 최소한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녀가 길거리에서 투닥거리며 다투고 있었다. 집에서 못다한 부부싸움을 길거리에까지 들고나와서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나치는데 문득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됐는데?”


자세한 스토리야 알 길이 없지만, 나는 한 가정을 깨트린 대가를 뒤늦게 함께 치르게 된 한 남녀의 그 후유증을 우연히 목격했다고 느꼈다.


그래,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되기야 되지…
어차피 한번 왔다 갈 인생인데
연애는 필수고 결혼은 선택이고
가슴이 뛰는대로 하면 되는 거지
그 과정에서 눈물이야 이별의 과정의 부산물일 뿐이고,
그럼에도 다시 새로운 사랑은 다가오고,
그걸 두려워하지 말자는 거지…


<아모르파티>가 권하는대로 살아온 여성이 최종적으로 만나게 되는 자신의 운명의 민낯이 내가 우연히 목격한 그 남녀의 길거리 싸움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설계도가 그리 만만할까? 그 설계도를 벗어나서 가는 길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여성이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서 살면 당장은 자유와 환희와 훨씬 큰 쾌락이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물론 매순간 새로운 사랑은 다가오겠지.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도 기억해두자.


‘쾌락으로 가는 길은 처음에는 대로처럼 넓지만 나중에는 바늘끝보다 좁아진다’


내가 교회학교 중고등부 성경공부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선악과와 뱀의 유혹 부분에서 꼭 물어본 질문이 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니가 선악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거라고 하셨는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어. 그래서 어떻게 됐지? 더 오래 살아서 애도 낳고 그랬잖아?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이 맞은 거야, 틀린 거야? 하나님이 아담한테 사기치신 것 아닐까?”


이거 대답하는 중고등부 애들이 그리 많지 않다. 내 지레짐작으로는 연식 오래된 집사님들 중에도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본다.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뭇가지를 꺾은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도 그 싱싱함은 유지된다. 꽃병에 물을 담아서 거기에 꽂아두면 더 오래 싱싱함이 유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싱싱함은 유한하다. 결국 그 나뭇가지는 시들어 죽고 만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존재가 그러하다. 당장은 하나님을 떠나도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하나님이 인간에게 애초에 주신 ‘생명’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소멸되기 시작해 최종적인 죽음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또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란 결코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우리의 모든 가치는 시간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뛰어넘는 분이시다. 인간의 최종적인 죽음의 숙명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바로 예수님의 구원이다.”


교회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래 전 기억이 떠올라서 주절주절 해보는 얘기. 이 세상은 항상 죄악으로 가득차,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만 <아모르파티>의 가사가 말하는 메시지는 드디어 어느 고비를 넘었다는 느낌이 문득 다가와서, 해보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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