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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14 2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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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무직자에, 사랑도 못해본 남성에게 정치란 그 모든 괴로움을 배설하는 대상이었을 것
–극단주의 이슬람의 어린 무슬림 세뇌, 아프리카의 소년병과 드루킹은 본질상 같은 프로세스
–부모 때렸다는 아들 변호하며 “맞는 사람, 이유가 있다”는 아들의 말 반복한 아버지의 심정


▲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폭행한 범인 [임명배 페이스북]


“그래 나는, 나는 병신이다. 내가 직업 있으면 여 왔겠나. 나도 병신이다. 인정한다. 여태까지 모쏠이고. 나는 어머니 때린 적도 있다. 아니 아버지도.”


드루킹 게이트 특검 통과를 위해 단식중이던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폭행한 30대 김 씨가 체포 당시 한 말이다. 이 말이 유독 머리에서 맴돌아왔다.


많은 경우에 정치는 배출구의 기능을 한다. 폭행범 김씨가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님에도 이토록 정치에 빠져든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가 절규하며 흘린 한 마디를 통해서, 30대 무직자에, 사랑 한 번 하지 못한 저 외로운 남성이 평소 어떤 심정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봐왔을지 감히 추측해본다. 그에게 정치란 그 모든 괴로움을 배설하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본인의 불행과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과 그 외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모든 무게. 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으로 ‘탓’할 수 있는 상대. 그가 정치를 통해 얻은 것은 그런 희생양이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 때문에 내 나라가 힘들고, 내 사회가 힘들고, 내 삶이 힘들다며, 그들을 욕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또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그들이 사라지면 세상이 바뀔 테니까. 틀림없이 내 삶도 나아질 테니까.


친일파니 일베니 하며 상대를 절대적인 악마로 만들고, 반대로 이 한풀이의 대상을 타작하는 일을 정의와 민주주의와 도덕과 인권과 그 외 온갖 좋은 단어들로 포장해갔을 것이다. 정치를 밥벌이로 하는 이들이 이런 주문을 계속해서 귓가에 속삭여준다. 드루킹도 그 중 하나였다. 편향된 정치논리는 아주 명확한 정답을 알려주고, 이 정답이 주는 안도감과 희망을 통해 김씨는 기운을 얻었을 것이다. 어쩌면 홀로 견디기 힘들었던 인생의 중력을 인터넷 상 동지라고 생각하는 자들과 함께 나누며 삶의 동력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삶이 힘들어지면 힘들어질수록, 한풀이 할 대상에 대한 분노와 혐오도 커졌다. 모르는 길 검색해가며 여의도로 가 야당 원내대표를 향해 테러를 가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확신이 있었을 터다. 종교적이고 맹목적인 그런 신념 말이다. 각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에 의해 김씨의 머리 속에 심어진 이 뒤틀린 생각들이 김씨의 삶을 지배했고, 결국에는 그의 인생을 내던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람을 착취하는 정치가 싫다.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은 방황하는 어린 무슬림들을 이렇게 세뇌한다. 아프리카의 군벌들은 소년병을 키우며 이런 교육을 한다. 근본적으로 같은 프로세스다.
값싼 동정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나는 30대 ‘무직’ ‘모쏠’ 청년이자 정치테러범이 된 김씨가 안타깝다. 자신의 밥벌이도 못하는 상황에서, 위정자들의 속삭임에 의해 장기말 노릇을 해주다 결국 스스로를 망가뜨린 이 청년의 비극에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 더러운 기분을 한층 더 심란하게 만든 건, 하필이면 오늘, 어버이날에 읽은 김씨 아버지가 쓴 편지다.


“제 아들은 술 한 잔도 안 마시면서 항상 남에게 희생, 봉사하는 삶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정말 순수한 청년입니다. 정말 올바른 정치인이라면 이 청년이 왜 이런 돌발행동을 했을까? 한 번은 관심을 가져 보는 게 진정한 국민의 대표라 생각합니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맞는 사람은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XX(가해자 김씨)가 기자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절망했다. 아들의 구속영장심사를 앞두고 ’사과문’이자 ‘호소문’으로서 언론에 보냈다는 이 편지. “사람을 때리는 것은 잘못이나, 맞는 사람은 이유가 있다”는 아들의 말을 다시 한 번 이 편지에 되풀이함으로서 아버지는 그를 완전한 테러범으로 만들었다.


아버지 딴에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쓴 글이겠지. 부모를 때린 적 있다고 떠들어댄 아들을 변호하고자, “맞는 사람은 이유가 있다”는 아들의 말을 되풀이한 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버이날이 참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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