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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6-13 04: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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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당연히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 우리 습관이었다. 정스러운 사람은 이웃집에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도 알았고, 집안일도 미주알고주알 다 참견하며 살았다. 그 때는 미안한 것도, 감사한 것도, 정을 나누는 것도 당연한 일이여서 참으로 살맛나는 정스러운 세상이었다. 이런 '정'이라는 뜻은 서양인에게는 없는 심리적인 마음의 구조이기 때문에 영어로는 해당하는 단어조차 없다. 그런데 서양식으로 의식구조가 바뀌면서 우리의 전통적 정신문화까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서양식 산업화 시대에 살기 시작하면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같은 승강기를 사용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매일 만나도 인사도 없다. 심지어는 같은 층에, 출입문을 서로 마주하고 살아도 인사 한 마디 없이 살아간다. 가족도 모두 해체되어서 친척들의 왕래도 없다. 부모 자식 간 관계까지도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져서 최소한의 정마저도 마를 대로 말라 버렸다. 정은 눈곱만치도 없는 냉정하고 차가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과거 한 때에는 우리 스스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란 EQ(Emotional Quetient)의 시대를 살아오다가 해방된 이후부터 갑자기 IQ(Intrlligence Quetient) 중심적인 시대로 변하게 된 까닭이다. 그래서 요즘은 살면서 EQ시대의 정겨웠던 이웃 간의 정이 상당히 그리워진다. 요즘은 감성지수(EQ)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사회지수 SQ(Social Quetient)도 거론하며 정감이 말라버린 현대사회의 모순을 걱정하고 있다.


서양인들은 원시 시대부터 거친 환경에 도전하며, 험한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사냥감을 잡아 육식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남성적이고 이성적인 좌뇌 중심적인 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 이런 삶의 과정은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게 됐고, 아직은 끝도 없는 자원을 활용하여 산업사회를 이끌고, 결국에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물질문명의 사회를 이룩해 놓았다. 우리의 인류는 지금 물질만을 탐욕 하는 치료하기 어려운 중병에 시달리면서, 여기에 더하여 이기주의적인 개인주의 사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모두 냉정한 경제동물로 변화하여 모두가 돈벌이에 사활을 걸며 살아가는 냉혈동물로 변하고 있다. 요즘 일반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고위급 인사들이 합법적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어쩌다 걸리면 그런 법이 있는 줄 몰랐다며 유감을 표하는 성명서 하나 발표하면서 그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면 끝이다. IQ만 높아서 이런 저런 좋은 자리에 앉아서 꿀만 빨아 먹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 변하여 지역민이나 국민을 사랑하는 EQ와 SQ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자기들 스스로 마치 세상을 떡 주무르듯이 경거망동(輕擧妄動)한다.


이른바 모두 경제동물의 모습인 “99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100에 1이 부족한 사람들이 100을 채우기 위해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유하는 말이다. 갖게 된 재물이 아무리 많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한 1을 채워서 100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일하는데 매달리는 사람을 “99의 노예”라고 한다. 행복 경제학의 이론에 의하면 행복이라는 것은 재물의 절대적인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비교할 이웃 친구들과 경제적인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 비교되는 친구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이나 빈곤을 느끼면 불행하게 생각하게 된다. 서로 평등하게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힘이 들더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등 그 이상의 재물이나 권력을 바라면 그 때부터는 과욕이고 불행의 씨가 싹트게 된다.


이제 우리는 지나친 남성적이고 이성적인 좌뇌 중심적인 생활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기능하는 “전뇌”형의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서 여성성이 우세한 우뇌적 기능을 적극 활용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감성 지수(EQ)와 사회지수(SQ) 개념은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골만(Daniel Goleman)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나 이외의 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능력과 자신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EQ로, 이런 감성을 가지고 사회적인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능력을 SQ라 정의하고, 이런 능력은 IQ와 달리 얼마든지 교육에 의하여 개발할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IQ는 일생을 거쳐 거의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태어날 때 IQ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EQ와 SQ는 연습을 통해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이 말라버린 냉정한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감정이 풍요로운 사람으로 바꿀 수 있고, 행복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한다.


EQ의 능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진정한 기분을 스스로 자각하면서 이를 존중하고 진심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둘째, 충동을 자제하고 불안과 분노 같은 스트레스 원인인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 목표 추구에 실패했을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격려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넷째,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이다. 다섯째 집단 내에서 조화를 유지하며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인 능력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EQ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과 삶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내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SQ는 이런 EQ를 공유하며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 능력이다. IQ가 이기적인 개인능력이라면 SQ는 함께하려는 사회관계 능력이며, EQ는 개인적 성향이 강한 IQ와 EQ의 중간 쯤 되는 능력이다.


그렇지만 IQ에 남녀 간의 성차가 있듯이 EQ와 SQ에도 남녀 성차가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EQ와 SQ 수준이 더 높다. 보통 여성은 남성의 어설픈 행동을 보면 상황을 정확히 짐작하는 눈치 100단이라고 한다. 얼굴표정, 어조, 행동형, 비언어적인 감정 표현의 학습과 이해, 거짓 언행 알아채기, 공감하기 같은 전반적인 감정적인 해석에서 여성이 남성들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다. 정서의 통제, 감정 표현의 정확도 등의 전반적인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에서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우세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감정적인 표현에 대한 인식, 즉 슬픔과 공포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상태를 식별하는데 있어서 여성들의 능력이 우세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중립적 얼굴인식 능력에서는 여성이 우세한 편이다. 다만 남성들은 분노와 공격성 같은 위험성이 있는 신호의 예측력에서는 여성에 비해 훨씬 더 민감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러한 공감과 사회 능력의 남녀의 차이는 남성이 운동능력에서 우세하게 진화했고, 여성은 언어능력 등에서 우세하게 진화해 온 것처럼 오랜 시간을 거쳐 진화한 남녀 간의 성역할 차에서 왔을 것이다. 여성은 남자의 사냥 환경과 사냥한 성과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고, 가정관리 문제, 자녀양육 상황에서 문제점을 신속하게 파악해서 적절하게 대처한 오랜 경험의 진화 결과이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과 사회와 산업현장에서 점차 여성의 역할이 더 중대해지고 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와 국방의 책임자의 역할도 점차 여성 역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에 있다. 남성의 패권주의적인 전쟁 역사에서 EQ와 SQ가 뛰어난 여성적 특유의 능력을 발휘하여 국가 간 갈등을 조절하고 협력하여 인류가 평화적인 진화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서양에서 말하는 만족의 의미는 기대했던 어떤 욕구가 충족되었다는 상태나 느낌을 말한다. 그런 상태나 느낌은 개인에 따라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상대적이라 다다익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양에서 만족의 개념은 한계가 없다. 그러나 동양권에서 “만족(滿足)”이란 말은 “찰 만(滿)”에 “발 족(足)”이라 쓴다. 말 그대로 만족이라는 개념은 머리끝까지 꽉 차는 포화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목까지 차는 상태를 말한다. 발목 이상으로 차면 과욕인 것이다. 노자는 “지족자부(知足者富)”, 즉 “만족할 줄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다”라는 교훈을 남겨 놓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공자의 말씀도 있다. 밥을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물질에 과욕을 부리면 정신력이 약해진다. 적당한 선을 지키지 못하면 무엇이든 탈이 난다. 통계적으로 전체 인구 중에서 물질에 과욕을 부리는 7%의 인구와 반대로 물질에 대한 절대적 금욕을 주장하는 7%의 인구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지나친 과욕이나 금욕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대부분 서양식 문화에 물들어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물질적인 과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서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감성지수와 사회지수를 더 개발하고 살아간다면 엔돌핀보다 4,000배나 강력한 다이돌핀 호르몬이 쏟아지는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송을 들었던 예전의 아름다운 풍습이 온 세상에 다시 한 번 더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지능지수(IQ)는 선천적인 능력이라 개발 가능성은 없지만, 감성지수인 EQ와 사회지수인 SQ 능력은 교육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는 잠재성이 큰 능력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열심히 교육하고 훈련하여 권력과 재물중심의 이기적 지능(IQ)중심화 된 현실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감성지수(EQ), 사회지수(SQ)중심의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사회지수(SQ)의 핵심 능력인 타인에 대한 감성과 공감과 이타심이 발휘되어 따뜻한 사회적인 관계를 갖게 되면, 그 동안 유지해온 패권주의적 권력과 물질 풍요 중심적 현대사회가 낳은 부조리를 해소하고 소외와 고립을 끊고 인류의 공존과 행복을 위한 초석을 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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