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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08 10:01:21
  • 수정 2018-05-08 1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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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보내 준 어버이 날 시 한편을 여기 소개한다.
-바쁜 뉴스의 홍수 속에서도 이러한 여유 가져 보는 것, 좋지 아니한가?


▲ 맞잡은 가족의 손은 항상 따뜻하다. [pixabay]


"산 등성이"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야 어찌됐던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 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쾅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에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걸어 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고

큰 소리다.


나는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평생 네 아버지

집 나간다고 큰소리 치고는 저기 저

산 등성이

넘는 것을 못 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 모습,

잰 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리를 갈 듯 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를 치신다.


에이, 이 못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 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씩씩거리며 아버지는 집으로 천릿길을 내 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 놓은

대문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팔십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아들은 묻는다.

아버지 왜 저 산등성이 하나 못 넘느냐고.


아버지가 답한다.

가장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안 되는 거라고.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대문 앞까지

전등불을 켜놓느냐고.


어머니가 답한다.

남정네가 대문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아들 딸이 묻는다.

그럴 걸 왜 싸우느냐고.


부모가 답한다.

물을 걸 물어보라고~!


-시집 '악어'(2015)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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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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