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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2-08 06: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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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냇가에는 야생 오리들이 쌍을 이루며 부부의 여유를 즐긴다. 어쩌다 짝을 이루지 못한 놈이 이들 영역을 침범하면 수놈이 침입자를 바로 쫓아버린다. 자기 부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연구에 의하면 모든 조류의 90%는 일부일처제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 혼수품에서도 원앙금침(鸳鸯衾枕)이 빠지지 않는데, 신랑과 신부가 원앙처럼 사이좋게 백년해로하며 잘 살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조류 중에서 원앙 부부의 금슬은 그렇게 다정하지 않다고 한다.


원앙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는 “성 선택권”이 있어서, 선택을 받은 수컷이 암컷 주위에 찰싹 달라붙어 다른 수컷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방어하느라 암컷을 졸졸 따라 다니는 것을 보고 옛 선조들이 이를 사이좋은 부부 금슬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부부가 되어 암컷이 알을 낳고 둥지에 들어가면 수컷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잠시 다른 암컷을 찾아 둥지를 떠나는 바람둥이라고 한다.


대부분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는 조류와는 달리 5,000여 종의 포유류 중에서 극소수인 3~5%만이 일부일처제를 따른다고 한다. 이 같이 드물게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포유류도 사실은 90%가 호시탐탐 기회를 봐서 적당히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개는 대체로 난혼관계를 갖지만 늑대, 여우, 비버, 재칼, 수달 등은 일부일처제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 수달과 들쥐는 지독한 일부일처 사랑꾼이다. 들쥐는 암컷과 짝을 이룬 후에 다른 암컷이 접근하면 수컷이 그 암컷에게 공격행위도 불사한다고 한다.


여우와 늑대도 야생동물 중에서 얼마 안 되는 단혼제 동물로서 수컷은 거의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랑꾼이다. 만일 암컷 늑대가 죽게 되면 간혹 재혼도 하지만 대부분의 수컷은 사냥도 않고 굶다가 죽은 암컷 곁에서 최후를 맞이한다고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중에서 아마도 늑대만한 애처가는 없을 것이다. 늑대 같은 남자만 만난다면 아마도 평생 가장 행복한 남자를 만나는 행운일 것이다.


그래도 포유류 중에서 인간처럼 일부일처제를 강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어째서 인간들이 일부일처제를 채택하는지를 설명하려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가설이 “미숙아 양육설”이다. 소나 말과 같은 포유류 새끼는 출산하자마자 바로 걷는다. 이에 비해 인간은 미숙아 상태로 출산하여 오랫동안 적극적인 보호와 양육을 해야 한다. 엄마 혼자서는 양육의 부담이 크므로 부부가 힘을 합쳐 함께 미숙아를 보살피면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부일처제가 정착되었다는 가설이다.


조류의 90%가 일부일처제를 택하는 까닭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 한다. 새들은 둥지를 틀어 알을 품어야 하고, 알을 부화해도 새끼가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암수가 번갈아 먹이를 공급해야 한다. 이처럼 일부일처제의 가장 큰 장점은 암수가 함께 협력해 새끼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숙한 새끼 양육이라는 문제만으로 일부일처제를 완벽하게 설명하기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아프리카의 작은 영양도 일부일처제를 택하고 있지만 수컷은 새끼 양육에 별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동물세계의 일부일처 습관을 좀 더 세분하여 세 가지 부류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첫째로 일정 기간 항상 한 짝과 짝짓기를 하는 “성적 일부일처제”, 둘째로 암수가 짝짓기를 한 뒤 새끼를 공동으로 양육하지만 바람은 피우는 “사회적 일부일처제”, 셋째로 한 암컷이 평생 한 수컷의 새끼만 낳는 “유전적 일부일처제”로 세분하여 설명한다.


암컷의 “주거 밀도설”도 일부일처제를 설명하는 또 다른 가설이다. 주거 습성상 암컷이 멀리 흩어져 생활할 경우, 수컷은 두 가지 전략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 먼 거리를 힘들게 왕래하면서 여러 암컷을 관리하는 방법을 택하거나, 아니면 한 곳의 암컷만을 선택해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런데 한 암컷과 살아가는 방법이 종의 번식에 유리하다는 경험 때문에 결국 일부일처제를 택하게 되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동물이 북미의 흰발생쥐와 올드필드 흰발생쥐의 사례다. 이 두 종은 서로 매우 가까워서 교배를 하면 생식능력을 지닌 새끼를 낳을 수 있을 정도로 발생학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흰발생쥐는 여러 암컷과 짝 짓기를 하지만, 올드필드 흰발생쥐는 일부일처제를 지킨다. 흰발생쥐는 비교적 넓은 지역에 고밀도로 분포하며 살고 있는데 반해 올드필드 흰발생쥐는 사막에 띄엄띄엄 분포해서 살아간다는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영장류는 사실 이와는 정반대다. 서식 밀도가 높은 인간은 일부일처제이지만, 서식 밀도가 낮은 침팬지와 고릴라, 보노보 등은 일부일처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가설이 “성병 가설”이다. 인간이 저밀도로 흩어져 살던 수렵시대에는 침팬지처럼 난교 생활을 해도 성병이 크게 확산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경생활로 접어들면서 한 곳에 정착하게 되고 사회규모가 커지고 집단 간 접촉이 늘어나면서 성병이 급속히 늘어나자 일부일처제가 정착되었다는 설이다. 결국 성병의 확산이 사회규범 제도를 일부일처제로 변화시켜 왔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학설로 “착한 남자 가설”이 있다. 자연계에서는 보통 수컷끼리 힘겨루기를 통해서 이긴 수컷이 암컷을 차지한다.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새끼를 원하는 암컷은 당연히 이렇게 힘이 강한 수컷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수컷끼리 싸움을 하는데 힘을 소비하는 수컷 대신 힘은 약하지만 암컷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하위 서열의 수컷을 선택하는 암컷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이런 수컷을 선택하면 암컷 자신에게는 물론 새끼를 키우는 데도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한 남성 대신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장기적으로 제공해 주는 “착한 남자”가 여성의 선택을 받으면서 일부일처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가설은 수컷끼리 힘을 소모하는 에너지를 아껴 다른 쪽에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부일처제를 택하는 인간은 수컷끼리 힘을 겨룰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에너지를 두뇌나 손의 기능 등 다른 능력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전용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착한 남자라도 자신의 에너지를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마냥 내어주지는 않는다. 여성도 일부일처제를 이루기 위해서 착한 남자에게 무엇인가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제공하는 보상은 바로 “섹스”와 “정절”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암컷이 배란기에만 발정해서 섹스와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 여성은 “배란 은폐”를 통하여 발정기가 아닌 때에도 남성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섹스를 제공하도록 진화해 왔다. 이러한 섹스 이외에도 여성은 착한 남성에게 “정절”이라는 또 다른 보상을 제공하면서 일부일처제를 확고히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DNA 분석을 통하여 정절의 수준을 평가해 보았더니 아주 재미있는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부 금슬이 좋은 것으로 잘못 알려진 원앙 암컷의 새끼 중에는 무려 40%가 남편이 아닌 다른 수컷의 새끼로 밝혀졌다. 일부일처의 상징인 고니 역시 부계를 조사한 결과 6마리 중 1마리 정도가 다른 수컷의 새끼임이 밝혀졌다.


90% 이상 일부일처제를 고집하고 있는 조류의 경우 평균 10% 정도는 부성이 불일치 한다. 수컷 조류들이 자기 암컷에게 접근하는 수컷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숫자는 상당히 놀랄만한 사실이다. 그래서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로빈 베이커 교수가 국제 항구인 리버풀에서 인간의 혼외정사 실태를 조사한 결과(1993년), 조류와 비슷하게 10% 정도가 부성이 불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일반인들도 조류처럼 부성불일치가 평균 10%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하고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전통적인 명문 집안의 Y염색체를 조사해 친자 여부를 확인하는 최근 연구에 의하면 부성 불일치율은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즉 부성 불일치율이 10%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예상치의 1/10인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런 결과를 볼 때 조류와 포유류를 포함해서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가장 잘 지키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평범한 인간들도 100명 중 한 명은 부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다. 우리나라 가구는 2,000만이 조금 넘는다. 그 중에서 30%는 혼자 사는 노인이나 30세 이하의 미혼 가구라 하니 1,400만 가구가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가구가 된다. 이 가구 중에서 1/100이라는 단순 통계로 보면 부성 불일치 자녀가 대략 14만 명 정도는 된다고 추산된다. 전 세계에 부성이 불일치하는 인구가 수천 만 명이 된다고 추산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증거 자료에도 불구하고 일부일처제를 택하고 있는 동물 중에서 그래도 인간만이 “유전적 일부일처제”를 가장 잘 지키고 있는 대표선수라는 점에서 다소의 위안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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