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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26 23: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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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러시아 북-중 접경에서 연구중인 동아대학교 강동완 교수가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소회를 보내왔다.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게재한다.
-강동완 교수는 현재 북한이탈주민지역적응센터(부산하나센터) 센터장도 맡고 있다.



▲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 전경. 【뉴시스】



저는 지금 접경에 있습니다.

갈 수 없는 내 조국의 반쪽 땅이기에, 한 발자욱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고자 홀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중국에서 러시아로 넘어오는 건 국제버스 터미널에서 표 한 장만 끊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국가와 국가를 가로지르는 국경선인데, 그리도 쉽게 넘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접경, 이 곳에는 참으로 많은 우리네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이십대의 꽃다운 청춘들이, 14살 나이에 엄마와 함께 팔려온 조선의 딸들이, 국가에 바칠 충성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장에서 피눈물 쏟는 우리의 형님과 아우들이 있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건설장에는 야간 조명 아래 쇠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냉면을 나르고 접대하며 손님들의 흥을 돋우기 위한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의 노래 소리도 여전합니다.


누가 그들을 이리로 내몰았습니까?


남북 정상이 만나는 자리가 진심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 '사람 사는 세상'은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반쪽 조국인 북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먼저라 하셨고, 민주화를 위해 그리도 많은 인고의 시간을 겪으신 분들이라면, 북한 주민의 인권도 바로 우리의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두 정상이 만나는 날, 평양 냉면을 먹는다지요. 특별히 요리사와 기계까지 설치해서 말이지요.

그 냉면 한 그릇에는 밤늦은 이 시간까지도 눈물 흘리며 일하는 북한 식당 여종업원의 아픔이, 노동자의 거친 한숨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북한 식당에서 냉면 한 그릇 먹고 돌아서 나오는 길에, 그저 종업원에게 한 마디 건넸습니다.

통일되는 그날까지 꼭 앓지 말고 건강하라고 말입니다.


남조선 사람과는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눈치를 보고, 영업 시간이 끝나면 당 생활총화를 하며 자신의 과오를 점검하는 이 기막힌 생활이 어찌 정상적이라 할 수 있습니까.


독재자와 함께 냉면을 먹는 그 자리가 진정성 있게 평화를 만드는 자리가 되려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정상국가로 가는 길은 핵무기를 없애는 것은 물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고 가두는 일을 멈추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정은을 '경제개혁 마인드를 가진 승부사'라는 말로 포장한다면, 당신들이 지난 시기에 치떨리게 투쟁하며 거부했던 '개발 독재'에 대해서도 그리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독일 광부로, 간호사로, 베트남으로, 중동의 건설 현장으로 그렇게 청춘을 조국에 바친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계시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조국이 이토록 잘 살게 되고 민주화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조국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에 죄송하며 고마울 따름입니다.


독재자가 오는 길에 의장대 사열까지 한다지요.

군의 최고통수권자로서 그리 할 수는 있겠지만, 명령을 받는 대한민국의 군인은 수치와 치욕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명예로운 군인의 길을 걷는 그 누군가는 그 명령을 거부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를 국빈급 정상으로 맞아서는 안 될 휴전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쇼와 허울뿐인 선언만으로 가득찬 정상회담이 된다면, 역사 앞에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기획된 쇼가 아니라, 진정으로 통일과 평화를 갈망하는 남과 북의 사람들의 애절함이 그 자리에 함께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권 재창출, 정권 연장을 위해 평화를 가장한 '분단 장사'를 한다면, 그건 '안보 장사'를 했다는 사람들보다 더 악랄한 과오가 될 것입니다.


설마 하는 마음이지만, 행여라도 '1국가 2체제'의 영구 분단, 한반도 중립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리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한맺힌 절규 앞에 우리는 고개를 들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두 정상이 만나는 그 자리가 분단으로 인해 더 이상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는,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첫 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또 기대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의 쌀, 문재인 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낸 부산의 흰살생선구이, 김정은이 유년시절을 보낸 스위스의 뢰스티를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감자전....


그 만찬 테이블에 탈북민들이 눈물을 삼키며 먹는 두부밥과 인조고기밥을, 납북자의 딸로 살며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매일같이 손수 지어올린 밥 한 공기를 올렸으면 어땠을까요.


독재자와 마주할 만찬 테이블에 오를 이벤트성 메뉴 선정보다, 협상 테이블에 어떤 메뉴를 올릴지가 더 궁금해지는 '접경의 밤'입니다.


제발 부탁드리오니, 저쪽 반쪽 조국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우리와 똑같은 꿈을 꾸고자 하는 사람들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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