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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20 15: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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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목동병원 사고가 주사기 재활용 때문이라고? 사실이라면 관계자들 살인죄로 처벌해야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곳이지 균주 투여해 죽이는 곳이 아니다. 괴담은 환자 불안감만 조성
–잘못된 사회구조에선, 개인의 실수가 불가피하다. 쓰레기통 없애면, 몰래 버리는 사람 생겨


▲ 8일 오후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들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 3명 구속 규탄 집회를 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혹자들은 주장한다.

이대목동병원 환아 집단사망 사건이 주사기 ‘재활용’ 때문이라고.

많이들 솔깃한 모양이다.


실제 주사기를 재활용했다면, 더 이상 논란이 필요없다.

최소한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중범죄이기 때문이다.

겨우 과실치사죄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니다.


“혈액형 좀 다르면 어때? 귀찮은데 아무 거나 투여하자.”


이런 의료진이 존재할까?

마찬가지다.


주사기 재활용은 혈액형이 다른 피를 주입하는 행위와도 같다.

결과를 뻔히 예상하면서, 그런 짓을 했다고?

한번 사용한 주사기는 감염덩어리다.


관리가 까다롭다.

찔리면 나 또한 감염된다.

실제로 사고가 종종 발생하기에, 의료진들은 사용한 주사기를 병적으로 혐오한다.


10원짜리. 심지어 내 돈도 아닌 병원 비품.

이걸 아끼겠다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감수한다고?

무엇을 위해?


주사기 재활용은, 감염균을 직접 몸 안에 투여하는 무서운 행위다.

학생들도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런 주장이 진짜라면, 이는 환아 4명을 죽일 목적으로 저지른 범죄이다.

 행위 당사자뿐 아니라, 관계된 모든 이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


나는 범죄자도 인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실치사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살인죄를 물어서는 안된다.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곳이다.

균주를 투여해 사람을 죽이는 곳이 아니다.

괴담 유포는 멀쩡한 환자들을 불안에 떨게 할 뿐이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


감염은 주사기를 재활용하지 않아도 일어난다.

분주 과정에서 입구를 손으로 한번 만지기만 해도, 침 한 방울만 튀어도 발생할 수 있다.

환자들 상처를 처치할 때, 수술용 장갑을 끼는데, 정신없이 일하다 주변 어딘가에 손이 살짝 스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즉시 장갑을 새로 갈아낀다.

겨우 이 정도 사건에도, 이미 나는 오염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모여있는 균을 숟가락으로 퍼다 먹여야만 감염이 생기는 게 아니다.

옷깃만 스쳐도 생길 수 있다.


*


지질영양제를 4개로 분할했는데 그 모두가 감염되었다면, 최초 술기 과정에서 원본을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부주의한 조작이 있었을 텐데, 오염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다.

뚜껑을 열다가 손이 살짝 스치는 등, 아주 사소한 실수라면 간과하기 쉬우니까.


분주는 원래 위험한 작업이다.

약국에서 무균 상태로 해야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간호사는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현장에서 굳이 작업을 했을까?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특히 주말엔 더욱 그렇다.

여기저기 모든 일감을 간호사에게 몰아준 것이다.

대다수의 병원이 그렇다.

이렇게 운영해도 거의 모든 대학 병원은 적자를 모면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게 또, 위험하긴 하지만 숙련된 시술자가 집중해서 하면, 리스크를 거의 0에 가깝게 줄일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감염 원리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20년간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관행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년간 추가 비용 한 푼 없이, 1년이면 수 천 건의 분주 과정을, 수 많은 신규 간호사들이 교대로 하면서도,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니?

이게 더 놀라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평온한 날이 이어지면 사고는 반드시 일어나니까.


*


의료는 0과 100으로 딱 나눌 수 있는 문제들만 있는 게 아니다.

주사기 재활용의 위험성은 100이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모든 게 이렇게 판단이 쉬우면 고민할 일이 없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리 쉽나?


분주의 위험은 30~40쯤 되는데 숙련도가 쌓이면 3~4 정도의 위험으로 낮출 수 있다.

보호자들이 중환자실 면회오는 건 10 정도 위험이고, 너무 급해서 환자를 볼 때 손을 안 씻으면 20 정도의 위험이 생긴다(임의의 수치라는 것을 말씀드린다).


의료의 모든 행위는, 이렇게 연속선상에서 얼마쯤의 위험을 지닌다.

해서는 안될 일, 해도 되는 일로 쉽게 나눌 수 없다.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가 더해져, 어느 정도의 위험은 떠안는 게 일상이 되었다.

관행이 생겨난 이유다.


20년간 한 건의 사고도 없었으니, 그 위험성은 0에 가깝게 생각했을 것이다.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관행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모든 위험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여기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이대목동병원이 받았다는 JCI인증 같은 세계 표준대로 병원을 굴리려면, 환자 수를 현재의 반의 반으로 줄여야 한다.

당연히 병원 망한다.


그럼 평가는 어떻게 패쓰한 걸까?

장학사가 방문한 교실을 떠올리면 된다.

평가를 위한 평가를 받는다. 해보면 안다.

세계 표준이 얼마나 높은지, 표준이란 기본이 얼마나 어려운지. 돈 안쓰면 별 수 없다.


*


메르스도 시스템의 부재로 터졌다.

응급실을 콩나물 시루처럼 운영하면 위험하다.

병상 간격이 좁으면 감염이 옆 환자로 타고 넘어간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환자 한번 보는데 손을 몇번씩 씻어야 하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모른 체하며, 모두가 눈 감고, 그렇게 수십 년을 버텼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 중 하나도 마찬가지였다.

사고가 터지는 건 필연이었다.


만약 당시에 관리 책임을 물어서 의사를 처벌했으면 어땠을까?

다행히 그때는 의사들이 고군분투했고, 의료진마저 감염되어가며 메르스를 막아냈다.

이게 알려지면서 결국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다.

사건이 끝난 후, 개인의 처벌보다 시스템 개선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국내 대부분의 응급실이 감염 확산에 어느정도 내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번 이대목동 사건은, 시스템 보완보다는 개인의 처벌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그 결과는 아마 의료진들의 중환자영역 기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이런 움직임은 벌써 시작돠고 있다.


*


의사들 의견은 통일되는 경우가 드물다. 각자 위치와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을 부리는 의사, 누군가에게 착취당하는 의사, 공무원처럼 사는 의사, 남을 위해 사는 의사, 장사치처럼 버는 의사 등등.

이렇게 다양한 의사들이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똑같은 주장을 한다면, 뭔가 의구심을 갖는 게 좋다.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했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까.


*


4명 아이의 생명을 잃은 이대목동병원 진료가 정당했다는 이는 없다.

분명 많은 잘못이 있었고, 이에 대한 책임 소재는 가려야한다.

이 사실을 부인할 의사는 없다.

지질영양제를 분주 투여하는 과정에서 감염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아이들이 죽었다.

이 과정을 담당한 간호사는 과실치사죄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의 주장은 크게 2가지다.


1. 분주 투여를 직접 지시하지 않은 이상, 의사가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간호사를 관리 감독할 의무를 이런 경우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개인병원이 아니다.

대학병원에서는 의사 또한 월급쟁이다.

간호부 조직도는 개별 의사 아래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그들을 관리 감독할 권한이 없다.

책임을 물으려거든 병원 자체 혹은 병원 수뇌부(관리자)에 물어야한다.

또한 병원의 질관리 책임을 지닌 복지부와 공무원에 물어야 한다.


2. 간호사의 분주 투여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지만, 관행에 따른 것이었다.

나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으므로 책임을 경감해주길 바란다.

무리한 업무량을 고려해달란 얘기다.

주사제 상온 비치, 투여자 불일치 등 이대목동병원 측의 잘못으로 알려진 모든 관행을 떠올려보자.

모두 일을 빠르게 처리하려는 분업(테일러-포디즘) 형태이지 않은가?


10일 이내에 빌딩을 세우라는 사업주가 있다.

제 날짜에 못하면 돈을 주지 않는단다.

현장에서 무리한 작업 도중 인명피해를 입었다.

사업주는 빨리 하라고만 했지, 안전수칙을 어기라고 한적은 없단다.


잘못된 사회 구조하에선, 개인의 실수가 불가피하다.

거리의 쓰레기통을 모조리 없애면,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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