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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8-24 12: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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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언덕에서 바라 본 드니프로강 풍경. 러시아가 침공하기 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더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군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자신들보다 더 잘 살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실은 우크라이나군 의무병 예고르 피르소우의 기고문 제목이다.


지난 4월, 수도 키이우에서 60km 남짓 떨어진 안드리우카에 우크라이나 방위군 중대원으로 진입했다. 한 달 동안 러시아군이 점령한 뒤 처음으로 진입한 부대였다. 포탄 포장지와 탄약 상자가 곳곳에 널려 있었고 집들이 모두 부서져 있었다. 한 주택 마당에는 불에 탄 러시아 탱크가 잔디밭 위에 있었다.


러시아군은 안드리우카 주민들을 살해하고 약탈했다. 현지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이례적 행태를 전해줬다. 전기자전거와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돌다가 거리로 나가 평소 원하던 생일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들처럼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환하게 웃었다고 했다.


며칠 전까지 부차에 있었다. 악명 높은 학살이 벌어진 현장이다. 그곳 주민들은 러시아군 정찰대가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여기가 키이우냐고 물었다고 했다. 목가적인 공원과 주택들이 수도가 아닌 곳에 있을 것으로 상상도 못한 것이다. 그들이 집집마다 약탈했다. 돈과 싸구려 가전제품, 술, 의복, 시계를 빼앗았다. 그런데 처음 로봇 청소기를 보고 놀라서는 한 대도 약탈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 주민은 자기 집에서 러시아군에 인질이 됐을 때 욕실이 2개인 것을 두고 러시아 군인들이 이 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냐고 끈질기게 물었다고 했다.


이번 전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제재나 엄청난 전사자 및 장비 손실이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시골 출신 병사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전쟁 전까지 이들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가난하고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실상을 깨닫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잘 사고 있다는 현실 말이다.


나도 전쟁을 겪으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 잘 산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30년 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두 나라의 경제는 똑같이 지하 자원에 의존하고 있었고 부패와 가난이 만연했었다. 외국에선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일부로 생각했고 우크라이나인들조차 러시아와 우리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두 나라가 다른 길로 들어섰다.


나는 동부 돈바스 지방 도네츠크 지역 아우디우카 출신이다. 어릴 적 고열에 시달릴 때 할머니가 앰뷸런스를 불렀지만 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자 휘발유가 없어서 못 간다고 했다. 그 때 입원했던 병원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닥의 러시아산 리놀륨이 낡아서 헤져 있었다. 사람들은 직접 수건을 가져와야만 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이웃 사람도 생각난다. 돈을 벌지 못한 공장에서 임금을 닭으로 줘서 수많은 닭들이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2014년 러시아 지원 반군이 아우디우카 동부를 도네츠크인민공화국으로 선포하면서 아우디우카를 떠났었다. 당시 도로는 온통 큰 구멍이 나 있었지만 보수하는 사람이 없어서 사람들이 난방용으로 태우고 남은 석탄재로 구멍을 메웠다. 구멍이 커서 자동차가 망가지기 일쑤였다. 이번에 돌아가는 길에 키이우에서 아우디우카까지 약 740km를 10시간 동안 달리는 동안 도로가 완벽했다.


병원에 갔더니 서유럽의 작은 마을 병원에 온 느낌이었다. 건물은 완전히 새로 단장했고 장비들도 모두 새것이었다. 2015년 포격에 파괴됐던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깨끗이 새단장됐고 최신식 컴퓨터가 교실마다 설치돼 있었다. 이 병원과 학교는 최근 러시아군에 의해 다시 완전히 파괴됐다.


우크라이나는 도로와 학교, 병원을 재건하는 법을 배웠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2017년부터 유럽연합(EU)에 비자 없이 갈 수 있다. 2019년 신인 정치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반부패 친유럽 정책으로 당선하자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이 즉각 물러났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아직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아직 부패가 심하다. 사법제도가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법원은 독립돼 있지 않다. 전쟁 전까지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폴란드 등 다른 나라로 갔다. 우리는 여전히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문제들은 러시아와는 비교가 안된다. 푸틴이 20년 동안 집권한 러시아에서 선거는 전혀 의미가 없다. 러시아 전국의 도로는 엉망이고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투옥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한다고 밝힌 지역의회 의원 알렉세이 고리노프가 7년형을 선고 받은 것처럼 말이다.


10년전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유럽챔피언 축구 경기를 보며 러시아인들과 맥주를 함께 마셨다. 당시는 우리가 발전하고 있고 러시아는 퇴보한다는 걸 몰랐다. 우크라이나는 자유의 길에 나섰고 러시아는 국영 TV와 석유 달러로 소련 시절로 회귀하고 있었다. 결국 두 나라는 멀어졌고 단절됐다.


지난 몇 달 동안 매일같이 우리가 이룬 것을 지키다가 부상한 우크라이나 사람을 옮기는 일을 해왔다. 침략자들도 이제서야 우리가 이뤄낸 것을 보고 있다. 그들은 이런 진실을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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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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