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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26 22:28:36
  • 수정 2022-10-09 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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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너무나도 앙증맞다. 보는 것만으로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신지 않았는데도 이러니 맞는 발에 신기면 얼마나 더 이쁠까.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 놔두고 오는데 자꾸만 뒤가 돌아다 봐진다. 하얀 아기 고무신이었다.산길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좌판을 놓고 팔고 있는 몇몇 상품 속에서 그 하얀 아기 고무신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제 손주들도 저걸 신을만한 아이는 없지만 사다가 장식용으로라도 놓을까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고무신 세대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닌 때문이었지만 그때 고무신은 어찌 그리도 잘 찢어졌는지 5일 만에 서는 장날이면 으레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따라 장에 가서 신발을 때우는 게 주간 행사처럼 되었다.


어릴 때의 고무신은 만능 장난감이기도 했다. 물에 띄우면 배가 되고 뒤축만 뒤집으면 차가 되었다. 고기를 잡아 담아가기도 했고, 힘에 부친 싸움에선 더러 무기가 되기도 했다. 이 고무신이란 게 산에 나무를 하러 갔을 때 제일 취약했다. 나무그루터기나 잘린 가지에 살짝 걸려도 여지없이 찢겨나갔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과 내 검정고무신은 댓돌 위에서 늘 현재의 우리 식구 수를 증명하곤 했다.


처음으로 운동화를 선물 받았다. 중학교 입학 기념이었다. 삼십 리를 걸어 다녀야 하는 내 첫 운동화에겐 너무 가혹한 형벌 같았다. 처음 며칠은 친구들의 눈을 피해 고무신을 신고 가다 학교 가까이에서 갈아 신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해보니 불편하기도 하고 눈치를 피하기도 어려웠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신을 신었을까.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선 신을 신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안전 문제만 아니라면 맨발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신발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는 것을 임보 시인의 시를 보니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제 나름의 신발들을 신고 있다

배는 물의 신발 위에 있고

달은 구름의 신발을 달고 있는 셈이다

임보 <</span>신발>


그렇다면 신발 없이 사는 사람들까지도 보이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 아닌가.


언젠가 전철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다섯 살쯤 된 손자를 데리고 탄 할머니가 내 옆에 앉았다. 한데 아이가 잠시도 가만있질 않았다. 사람들이 꽉 찬 전철 안인데도 무릎 자세로 자리에 앉는가 했더니 신발을 벗고 의자로 올라가 대롱거리는 손잡이를 잡고 매달렸다. 할머니가 그러는 아이의 신발을 집어 들고는 애가 이리 난잡해서 신발도 남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끝에 누군가가 나는 신발이 몇백 켤레가 닳아져도 좋으니 내 아이가 신발을 신고 한 발짝만 걸어보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라고 했다. 내 눈도 그쪽으로 향해졌는데 젊은 여인이 눈물이 그렁한 채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아이는 여섯 살인데 다리에 힘이 붙지 않고 발도 자라지 않아 일어서지도 못한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신발을 신고 걸어보지 못한 여섯 살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엄마의 마음은 애간장이 탔을까. 그런데 지금 그보다 어린 이 아이는 극성맞을 만큼 너무 나대어 신발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니 젊은 엄마는 한 세상에서도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집에는 신지도 못한 신발이 여러 켤레나 있다고 했다. 나이에 맞게 예쁜 신발을 사다 놓고 그걸 신을 수 있기만을 기도한다고 했다.


요즘은 신발이 발을 보호하는 도구만이 아니라 패션의 중요 부분이 되어 있다. 실용성도 취하면서 미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패션으로서의 신발이라서인지 값도 만만치 않았다. 며칠 전엔 집 앞 백화점에 들렀다가 아내가 샌들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나 하나 사줄까 하고 가격표를 보았다. 그런데 정말 재료도 들어간 것 없는 것 같은데 25만원, 35만 원 해서 깜짝 놀라 슬그머니 돌아서고 말았다. 아이들 운동화도 그랬다. 어른 구두값보다도 비쌌다. 물론 비싼 만큼 좋은 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값 차이만큼 좋은 차이도 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유명메이커라는 그 이름값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터였다.


사실 나도 신발 부자인 것 같다. 어느 날 보니 신발장 가득 채워져 있는 신발들, 구두만이 아니라 운동화도 한두 켤레가 아니었다. 산에 갈 때 신는 것, 편하게 야외에 나갈 때 신는 것, 일상에서 신는 것, 운동할 때 신는 것 등 용도에 따라서도 가지가지이고 색깔로도 여러 종류였다. 구두도 정장에 신는 것, 편하게 신는 것 등 여러 가지였다. 다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아마 세일 때나 가서 질러를 했을 것이다.


내 발목에 끼운 신발들은 모두 선량한 짐승들의 가죽이었다

그동안 내 몇 놈의 소와 말의 가죽에 얹혀 세상을 살아 왔던가

문득 오늘 아침 내 발이 사뭇 부끄러워

잠시 맨발로 땅에 내려 서 본다.

(임보 시인의 <</span>신발> )


시인의 부끄러움에 내 부끄러움도 얹는다. 하지만 나는 시인의 그런 부끄러움보다 고무신 한 켤레도 애지중지하고 운동화 한 켤레로 평생이나 신을 것처럼 아끼던 그런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더 안타깝고 부끄럽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리 많은 신발을 거느리며 살고 있는지, 과연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니 더 부끄러워진다. 한 번도 신고 걸어보지 못한 아이의 신발엔 엄마의 안타까운 사랑이 가득이지만 필요 이상 눈이 시키는 대로 질러버린 내 신발들은 어쩌면 주인 잘못 만나 사랑도 제대로 못 받는 존재일 수도 있다.


전철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의 신발들을 보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그만큼 사람들의 취향도 각양으로 다르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취향이 어떻든 신발들은 언제나 제 주인 섬기기를 하늘같이 한다. 늘 눌리고 밟히면서도 그게 제 몫이라며 억울해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행복으로 안다. 신발은 그렇게 사랑받는 기쁨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신발을 내려다본다. 바지 색깔에 맞춘다고 오늘은 하얀 운동화이다. 모양도 예쁘고 탄력도 좋지만 어린 날 처음 신었던 천 운동화의 감격이나 편리함 그리고 사랑은 따라갈 수 없다. 내가 보았던 그 이쁜 아기 고무신은 누가 사 갔을까. 그걸 손주에게 신겼을까. 아니면 내 생각처럼 장식용이 되었을까. 사오지 못한 아쉬움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아무래도 고무신에의 향수인 것 같다. 언젠가 아내가 사다 주었던 흰 고무신을 오늘은 신발장에서 꺼내놓아야겠다. 그런데 앙증맞은 고 작은 하얀 아기 고무신이 왜 자꾸 눈에 아른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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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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