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전쟁터에서 못 얻은 것, 유럽의 공포로 얻겠다는 푸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유럽의 방산기업 경영진을 직접 겨냥하는 암살 공작을 확대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경고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5개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인용해 “러시아 군사정보기관이 조직범죄 집단까지 활용하면서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축시키려 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폴란드에서는 총리와 국방장관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남성이 체포되면서 유럽 지도부의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장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러시아가 이제 유럽 후방의 민간인까지 공포에 몰아넣으려 한다는 점에서 푸틴의 전쟁 방식이 새로운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전쟁 방식이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면서 “유럽 5개국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러시아가 유럽 방산기업 최고경영자와 고위 임원들을 겨냥한 암살 공작을 확대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대형 방산업체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드론과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 경영진까지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이어 “유럽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경제적 압박 속에서 서방의 무기 지원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보타주와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을 확대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서 “하이브리드 전쟁이란 정규군의 군사작전 외에 해킹, 시설 파괴, 허위정보 유포, 비밀공작 등을 결합해 상대국을 압박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제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철도나 통신망 같은 시설을 넘어 사람의 생명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유럽 고위 정보 관계자는 FT에 “유럽에서 재산뿐 아니라 인명에 대한 위협까지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기업의 경영진을 직접 위협해 무기 생산과 지원 자체를 위축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하는 러시아…암살도 '하청' 주는 크렘린]
더 충격적인 것은 러시아 정보기관의 공작 방식이다. FT에 따르면 유럽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군 정보총국(GRU)이 이러한 암살 공작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조직범죄 집단과 협력하고 여러 나라에 걸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작전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터넷에서 돈을 주고 모집한 이른바 '일회용 요원'에게 임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표적의 동선을 파악하는 사람, 자금과 장비를 준비하는 사람, 실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을 따로 두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 사람이 붙잡히더라도 전체 조직을 추적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다.
이러한 방식은 러시아 정부가 배후라는 사실을 감추는 데도 유리하다. 조직범죄 집단이나 현지 협력자가 체포되더라도 크렘린은 자신들과 무관한 개인의 범죄라고 주장할 수 있다. 국가가 직접 군대를 보내지 않고도 상대국의 민간인을 위협하면서 책임은 회피할 수 있는 셈이다.
독일 국내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의 시난 젤렌 청장은 최근 연방의회에서 “러시아가 국가 또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 세력을 통해 개인을 겨냥한 폭력 행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조직범죄 집단의 활용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라인메탈 CEO 암살 음모…러시아의 위험한 공작은 이미 시작됐다]
이러한 위협이 단순한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2024년 독일에서 드러났다. 로이터는 “당시 미국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의 아르민 파페르거 최고경영자를 암살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서 “미국은 이를 독일 정부에 전달했고, 독일 보안당국이 경호를 강화하면서 암살 계획을 저지한 것”으로 보도됐다.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에 포탄과 군용차량을 공급하는 핵심 기업이다. 파페르거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현지 생산시설 확대를 적극 추진해 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셈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당시 암살 음모가 파페르거 한 사람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CNN은 미국과 서방 당국자 5명을 인용해 “유럽 방산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여러 암살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CNN은 이어 “러시아는 관련 의혹을 일축했지만, 파페르거는 지금도 강화된 신변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한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 민간기업 경영자의 생명까지 겨누려 한다면, 이는 전쟁의 기본적인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암살하지 않아도 성공?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는 푸틴의 계산]
러시아의 이러한 공작이 더욱 교활한 이유는 반드시 암살에 성공해야만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 정보기관 관계자는 FT에 “러시아의 핵심 목표가 심리적 압박”이라고 설명했다. “방산기업 경영진들이 자신도 암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크라이나와의 거래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정보기관은 방산업체 경영진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보안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일부 기업 경영진은 정부 권고에 따라 개인 경호인력을 늘렸으며, 해외 출장 때 특별 경호를 받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부담은 대기업보다 중소 방산기업에 더욱 치명적이다. 우크라이나에 드론이나 부품을 공급하는 신생기업들은 경영진 경호와 공장 보안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기 어렵다. 일부 기업은 러시아의 위협을 우려해 생산시설을 이전하기까지 했다. 러시아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용과 불안의 확산이다. 유럽 기업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할 때마다 경영진의 생명과 기업의 안전까지 걱정해야 한다면, 무기 공급망 전체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러시아의 위협이 커질수록 유럽 정부가 방산기업 보호를 국가안보 문제로 받아들이고 공동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푸틴이 공포를 통해 유럽을 분열시키려다가 오히려 유럽의 대러시아 결속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의미다.
[폴란드 총리까지 암살 위협…유럽 지도부에 번지는 불안]
이런 가운데 11일 폴란드에서는 총리와 국방장관을 겨냥한 공격 위협 사건이 발생해 유럽의 긴장감을 더욱 높였다. AP통신은 “폴란드 경찰은 도날트 투스크 총리와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국방장관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남성을 체포했다”면서 “마르친 키에르빈스키 폴란드 내무장관은 용의자가 온라인에 게시한 내용을 분석해 신원을 파악했다고 밝혔으며, 폴란드 정부는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경찰과 정보기관이 참여하는 긴급 대응에 나섰고, 투스크 총리도 신속하게 대응한 경찰에 감사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번 사건을 러시아의 암살 공작으로 단정할 근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폴란드 당국은 외국 세력과의 연관성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FT가 보도한 러시아의 방산기업 경영진 암살 공작과 폴란드 총리 공격 위협 사건은 별개의 사건으로 구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폴란드의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 지원이 이동하는 핵심 통로이자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 온 나토 회원국이다.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폴란드 최고지도부에 대한 공격 위협까지 발생했다는 사실은 유럽이 직면한 안보 불안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제 유럽은 전쟁이 우크라이나 영토에만 머물 것이라고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Why Times Insight | 푸틴의 비열한 암살 전쟁, 강함이 아니라 궁지의 표현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푸틴이 왜 이런 위험한 수단에 의존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막대한 인명과 경제적 비용을 치렀지만 전쟁을 원하는 방향으로 끝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무기 공급을 차단하는 것은 러시아에 중요한 전략적 과제가 됐다.
첫째, 암살 공작 확대는 러시아의 전략적 한계를 드러낸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을 전장에서 충분히 꺾지 못하자 후방의 무기 공급망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압박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푸틴의 강함을 보여준다기보다 기존 군사적 수단만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둘째, 푸틴은 나토와의 직접 충돌은 피하면서 유럽을 공격하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정규군 대신 정보기관과 범죄조직을 활용하면 책임을 부인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러시아 국가기관의 지휘 아래 나토 회원국 영토에서 암살이 실행된 사실이 확인된다면 유럽의 대응은 지금과 전혀 다른 수준으로 격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자동으로 나토의 집단방위 조항이 발동되는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외교·안보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셋째, 푸틴의 가장 큰 오판은 공포가 반드시 굴복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데 있다. 유럽의 방산기업들이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각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기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방산 공급망 보호와 정보기관 공조,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푸틴이 전쟁의 경계를 얼마나 위험하게 넓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이어 그 나라를 돕는 유럽의 민간인까지 암살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면, 이는 결코 정상적인 국가안보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전쟁터에서 얻지 못한 승리를 암살과 공포로 얻겠다는 푸틴의 계산은 비열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그리고 그 계산이 실패한다면 러시아가 마주할 것은 유럽의 굴복이 아니라 더욱 강력한 대러시아 공동전선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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