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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돈자랑하던 빈살만의 추락”…무너진 네옴, 트럼프마저 외면한 이유 있었다! 사우디의 25억달러 ‘하늘 경기장’이 멈췄다 2026-10-07
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사우디의 25억달러 ‘하늘 경기장’이 멈췄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오일머니를 앞세워 세계에 과시했던 ‘사막의 미래’가 하나씩 멈춰 서고 있다. 네옴·무카브·LIV 골프에 이어 이번에는 2034년 월드컵의 상징인 25억달러(3조 3273억원)짜리 ‘하늘 위 경기장’ 네옴 스타디움마저 무기한 보류됐다.


한때 미국과도 거리를 두며 중동의 새로운 실력자를 자처했던 빈살만은 이제 전쟁으로 안보가 흔들리자 다시 미국의 군사력을 찾았지만 트럼프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돈과 석유, 그리고 미국을 상대로 한 외교적 자신감까지, 빈살만의 위세를 떠받치던 세 개의 축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간), “사우디는 2034년 월드컵 경기장 가운데 가장 야심찬 사업으로 꼽혔던 네옴 스타디움 건설 계획을 사실상 무기한 보류했다”면서 “빈살만의 대표 프로젝트 ‘더 라인’의 지상 약 350m 높이에 4만6000석 규모 경기장을 만들고, 관중들이 자율주행 교통수단과 고속 리프트 등을 이용해 접근한다는 구상이었으며, 예상 사업비만 25억달러(3조 3273억원)였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동 건설시장 분석업체 MEED는 현재 이 사업을 ‘보류(on hold)’로 분류하고 있는데, 다른 월드컵 경기장과 관련 시설에는 2026~2033년 완공 일정이 제시돼 있지만, 네옴 스타디움에는 완공 예정일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돈과 기술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겠다’던 빈살만의 상징물이 공중에서 멈춰버린 셈이다.


[같은 날 ‘사우디판 그래미’도 잘라냈다]


더욱 눈여겨볼 것은 같은 날 나온 또 하나의 로이터 보도다. 로이터는 ”사우디가 ‘사우디판 그래미·오스카’로 키워온 Joy Awards의 내년 행사를 취소할 예정“이라면서 ”세계적인 스타들을 리야드로 불러들이며 폐쇄적인 석유왕국이 세계적인 문화·엔터테인먼트 허브로 변신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과시해온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사업“이라고 짚었다.


로이터는 이어 ”이제 긴축의 칼날이 건설을 넘어 문화·엔터테인먼트까지 향하고 있는데, 이는 네옴 스타디움 보류와 Joy Awards 취소를 따로 보기 어려운 이유“라면서 ”사우디가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던 사업부터 줄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70㎞ 미래도시, 이제는 “2030년까지 꼭 필요 없다”]


사실 네옴의 후퇴는 이미 시작돼 있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더 라인의 원래 구상은 높이 500m, 폭 200m의 거대한 구조물을 약 170㎞에 걸쳐 사막에 세우고 내부에 최대 900만명이 사는 수직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공사가 지연되면서 계획은 계속 조정됐다. 


결국 지난 4월 네옴의 소유주인 국부펀드 PIF의 야시르 알루마이얀 총재는 더 라인이 더 이상 최우선 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2030년까지 더 라인이 필요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PIF도 물류·광업·AI 등 상대적으로 빠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로 투자 방향을 옮기고 있다. 세계 최대 건축 프로젝트라고 자랑하던 사업이 어느 순간 ‘2030년까지 꼭 필요한 것은 아닌 사업’으로 밀려난 것이다.


[400m짜리 ‘돈자랑’ 무카브도 멈췄다]


리야드 한복판에 만들겠다던 초대형 정육면체 건축물 ‘무카브’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무카브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400m에 달하는 초대형 구조물이다. 내부 연면적만 약 200만㎡에 달한다. 빈살만식 ‘기가 프로젝트’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로이터는 지난 1월 “사우디가 무카브 공사를 중단하고 사업의 경제성과 자금조달 구조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우디의 투자 방향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 사우디는 미래형 건축물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기보다 2030 리야드 엑스포와 2034 월드컵, 디리야·키디야 등 완공 시한과 경제적 효과가 상대적으로 분명한 사업에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는 전제 아래 움직이던 빈살만식 개발 모델이 현실의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50억달러 쏟아부은 LIV도 결국 챕터11]


스포츠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PIF의 막대한 자금 지원으로 2022년 출범한 LIV 골프는 천문학적인 계약금을 내걸어 PGA 투어의 정상급 선수들을 잇따라 영입했다. 돈의 힘으로 세계 스포츠 질서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빈살만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PIF가 장기적인 추가 지원에서 물러난 뒤 LIV는 지난 9월 미국 뉴저지 법원에 챕터11을 신청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법원 자료상 부채는 5억~10억달러로 추산됐다. 다만 LIV가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10월 5일에는 BC Partners Credit이 최대 3억달러의 자금을 제공해 구조조정과 2027년 재출범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정확한 표현은 ‘LIV가 망했다’라기 보다, PIF의 사실상 무제한 지원을 등에 업었던 스포츠 실험이 결국 외부자금을 받아 구조조정해야 하는 단계까지 밀려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반년 만에 1년치 적자 전망의 97%]


그렇다면 빈살만은 왜 갑자기 돈을 아끼기 시작했을까. 결국 재정이다. 사우디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26년 예산은 수입 1조1470억리얄(422조 6천억원), 지출 1조3130억리얄(482조 7천억원)로 약 1650억리얄(60조6600억원)의 재정적자를 예상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만 누적 재정적자가 약 1600억리얄에 달했다. 당초 연간 적자 전망치의 약 97%를 불과 6개월 만에 기록한 것이다.


물론 이를 사우디의 국가부도 위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2분기 적자는 343억리얄(12조 6천억원)로 1분기의 1257억리얄(46조2천억원)보다 크게 줄었고, 사우디는 상반기 적자를 준비금 인출이 아닌 차입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우디가 당장 돈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모든 초대형 프로젝트에 무제한으로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리고 전쟁이 ‘오일머니 왕국’의 약점을 찔렀다]


여기에 이란전쟁이 겹쳤다.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가 흔들리자 사우디는 동서 송유관을 통해 홍해 얀부항으로 원유를 빼내는 우회로에 더 크게 의존해야 했다. 그런데 후티가 예멘 서부 해안을 따라 세력을 확대하면서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위협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동쪽 호르무즈가 막히면 서쪽 홍해로 원유를 빼내야 하는데, 그 홍해 통로까지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후티의 미사일·드론 공격은 사우디 본토의 에너지 시설까지 위협했다. 빈살만이 막대한 돈을 들여 ‘석유 이후의 사우디’를 만들려 했지만, 역설적으로 전쟁이 터지자 사우디 경제의 생명선이 여전히 석유와 그것을 실어 나르는 두 개의 해협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그때 빈살만은 트럼프에게 하루 두 번 전화했다]


바로 여기서 한 달 전의 장면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9월 10일 후티의 공세가 거세지자 빈살만은 트럼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미국이 후티를 타격해 달라고 요청했다. 두 정상은 이날 최소 두 차례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빈살만이 원했던 것은 미군의 직접적인 후티 타격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거절했다. 미국은 사우디에 정보와 표적정보를 제공하겠지만 미군이 직접 후티와 또 하나의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열흘 뒤 트럼프는 실제로 후티 공습을 다시 검토했지만 결국 또 보류했다. 악시오스는 “트럼프가 빈살만을 지원하려는 생각과 미국을 또 다른 중동전쟁에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판단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전했다.


[미국과 맞서던 빈살만, 왜 다시 미국을 찾았나?]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빈살만은 지난 수년 동안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는 사우디를 만들려 했다. 중국과 관계를 확대했고, 러시아와는 OPEC+를 통해 협력했으며, 2023년에는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외교관계까지 복원했다. 워싱턴을 향해 사실상 “사우디에는 미국 외에도 선택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이 전략적 자율성의 한계를 보여줬다. 미사일과 드론이 사우디 석유시설을 위협하고 홍해 수출로가 흔들리는 순간 빈살만에게 필요했던 것은 중국의 투자도, 러시아와의 석유협력도 아니었다. 미국의 정보력과 군사력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빈살만이 원하는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때 미국을 상대로도 자신의 몸값을 높였던 빈살만이 이제 미국의 군사력을 필요로 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Why Times Insight | 트럼프는 왜 빈살만을 구해주지 않았나?]


트럼프가 빈살만을 ‘버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은 정보와 표적정보를 사우디에 제공했고, 사우디와 예멘 정부군의 대후티 작전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사우디의 동맹이 끝났다고 보는 것도 과장이다. 하지만 빈살만이 미군의 직접 타격을 요청했는데도 트럼프가 이를 거절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미·사우디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트럼프의 계산은 오히려 단순할 수 있다. 미국이 직접 후티를 공격하면 이란전쟁에 이어 예멘이라는 또 하나의 전선이 열린다. 반면 미국은 직접 참전하지 않고 정보와 표적자료만 제공하면서 사우디가 스스로 싸우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굳이 미국이 빈살만을 위해 또 하나의 전쟁을 시작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협상력의 역전이다. 빈살만에게 선택지가 많을 때는 미국도 사우디를 붙잡아야 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미국의 안보 우산을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할수록 상황은 반대로 바뀐다. 트럼프가 빈살만에게 끌려갈 이유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트럼프의 거절과 네옴 스타디움의 공사 중단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된다. 돈이 넘칠 때 빈살만은 사막에 170㎞짜리 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400m짜리 정육면체를 세우겠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골프선수들을 돈으로 끌어모았다. 350m 상공에 월드컵 경기장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도 할 말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더 라인은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무카브는 멈췄으며, LIV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네옴 스타디움에는 완공일조차 사라졌고, 문화·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줄이고 있다. 동시에 안보에서는 다시 미국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곧바로 ‘사우디의 몰락’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우디는 2030 리야드 엑스포와 2034 월드컵의 다른 경기장, 디리야·키디야 등 전략적 우선사업에는 여전히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한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신호는 분명하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돈으로 세계 스포츠와 관광, 도시의 미래까지 바꿀 수 있다.” “미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선택지를 찾으면 된다.”


지난 10년간 빈살만의 위세를 떠받쳤던 이 세 가지 자신감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네옴 스타디움의 중단보다 더 상징적인 장면은 어쩌면 따로 있다. 한때 미국을 상대로도 자신의 몸값을 높였던 빈살만이 트럼프에게 하루 두 차례 전화를 걸어 군사개입을 요청했지만, 미국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돈자랑’하며 세계를 향해 으스대던 빈살만의 위세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트럼프가 지금의 사우디를 바라보며 하는 계산도 어쩌면 이 한마디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

“이제 누가 누구를 더 필요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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