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러시아 내부서 터졌다…“아름다운 보고서가 전쟁 망친다”]
“러시아군이 푸틴에게 거짓말하고 있다.” 리만 전선이 흔들리자 러시아 내부에서 결국 폭발이 터졌다. 친러 군사블로거들이 현장의 패배와 후퇴가 상부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승리’로 둔갑하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이른바 ‘아름다운 보고서(beautiful reports)’ 관행을 공개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거짓 승전보가 선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잘못된 전황이 잘못된 명령을 낳고, 그것이 다시 패배를 만들어내는데도 푸틴은 여전히 러시아군이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허위 보고 지역이 리만 지역에 대한 전과 보고다. 이번 리만 사태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거리가 아니다. 러시아군 내부에서 터져 나온 ‘거짓보고’ 폭로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지난 9일, 러시아 군사블로거들을 인용해 “리만 전선 상황이 러시아군에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일부 전방 진지에서 철수해야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면서 “특히 한 러시아 군사블로거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수개월 동안 계속됐는데도 러시아군 지휘부가 실제보다 훨씬 낙관적인 전황을 상부에 보고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내부에서 이런 허위·과장 전황보고를 비꼬는 표현이 바로 ‘아름다운 보고서’다. 패배했다고 보고하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전진했다고 보고하면 칭찬받는다. 결국 현장에서는 밀리고 있는데 상황판에서는 전진하고, 점령하지도 않은 마을이 러시아군 통제지역으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거짓보고 때문에 우크라군이 보여도 포격을 못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거짓말이 실제 러시아군의 전투까지 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군이 특정 지역을 이미 점령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고 가정해보자. 실제로 그곳에 우크라이나군이 남아 있어도 포격이나 공습을 요청하기가 어려워진다. 자신들이 이미 장악했다고 보고한 지역을 공격해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앞선 점령보고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접부대는 더 위험하다. 옆 부대가 특정 지역을 확보했다고 믿고 측면을 비운 채 전진했는데 실제로는 우크라이나군이 버티고 있다면 공격부대와 보급로가 그대로 노출된다. 러시아 군사블로거들까지 이러한 거짓보고가 화력지원과 인접부대의 작전계획을 왜곡하고 결국 더 큰 작전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러시아군 안에서 ‘패배→은폐→허위 점령보고→잘못된 작전→추가 패배’라는 자기파괴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푸틴까지 속았다…“점령했다”던 도시에서 우크라 지휘관 등장]
그리고 이 ‘아름다운 보고서’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했다. 푸틴은 9월 1일 러시아군이 도네츠크주 스뱌토히르스크를 장악했다고 직접 주장했다. 그런데 불과 엿새 뒤인 7일 우크라이나 제3군단장 안드리 빌레츠키 준장이 바로 그 스뱌토히르스크 시내 한복판에 나타났다.
빌레츠키는 영상을 촬영하면서 러시아군이 이곳에 없으며 스뱌토히르스크는 사실상 제3군단의 ‘후방지역’이라고 밝혔다. ISW 역시 “러시아군이 이 도시를 점령했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으며, 친러 군사블로거들조차 우크라이나가 도시를 통제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러시아 측에서 점령 증거로 내놓은 영상마저 과거 영상을 재활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푸틴이 세계를 향해 발표한 승전보가 우크라이나 지휘관의 현장영상 하나에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전선에서는 러시아 돌출부가 사라지고 있었다]
푸틴이 승리를 말하고 있는 동안 실제 리만 북부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ISW는 11일 러시아 군사블로거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의 광범위한 반격으로 러시아군이 리만 북쪽에서 방어로 전환했다”고 전했다. 한 러시아 소식통은 “우크라이나군이 리만 북부 러시아 돌출부를 사실상 제거하고 러시아군을 이바니우카·테르니 일대 제레베츠강 방향까지 밀어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ISW는 이미 1일 우크라이나군이 리만 북쪽에서 반격과 드론을 이용한 보급로 차단을 병행하면서 러시아군을 일부 지역에서 철수시켰다고 분석했다. 출처별 추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러시아가 장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던 상당한 지역이 축소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ISW는 정확한 탈환 면적과 러시아 돌출부의 완전한 제거 여부는 아직 공개자료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고 신중하게 평가했다.
[러시아가 공들인 슬로뱐스크 북방 포위축도 흔들렸다]
리만 북부의 후퇴는 단순히 몇 개 마을을 빼앗긴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군은 이 돌출부를 확대해 스뱌토히르스크를 거쳐 슬로뱐스크로 접근하고, 우크라이나의 핵심 돈바스 ‘요새 벨트’를 북쪽과 북동쪽에서 압박하려 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으로 이 접근축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ISW는 리만 일대 반격 때문에 러시아군이 북동쪽에서 슬로뱐스크로 접근하기 어려워져 향후 동쪽 공격축에 더욱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핀란드 블랙버드그룹의 에밀 카스테헬미 역시 로이터에 우크라이나 제3군단이 리만 부근 러시아 돌출부를 절단하는 데 성공한 징후가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군 전체가 무너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한 병력과 시간을 투입해 만든 슬로뱐스크 북방 압박축이 다시 밀려났다는 사실은 러시아군에는 상당한 작전적 손실이다.
[Why Times Insight — 푸틴은 지금 어느 전쟁을 보고 있는가?]
이번 리만 사태의 본질은 우크라이나가 몇 ㎢를 되찾았느냐가 아니다. 푸틴이 보고 있는 전쟁과 실제 전쟁이 같은 것이냐는 문제다. 현장 지휘관은 패배를 숨긴다. 상급부대는 전과를 부풀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보고서’가 군 수뇌부를 거쳐 크렘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최고통수권자인 푸틴은 그 보고서를 근거로 “러시아군은 전진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스뱌토히르스크는 그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러시아군이 장악하지 않은 도시를 푸틴이 직접 점령했다고 선언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잘못된 전황 인식이 푸틴의 종전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이기고 있다고 믿는 지도자에게는 타협할 이유가 없다. 조금만 더 싸우면 더 많은 영토와 더 좋은 협상조건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러시아군의 ‘아름다운 보고서’는 단순한 군 내부의 부패 문제가 아니다. 패배 → 패배 은폐 → 가짜 승전보 → 푸틴의 오판 → 잘못된 명령 → 추가 패배 → 다시 거짓 보고.... 이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러시아군의 가장 위험한 적은 우크라이나군만이 아닐 수 있다. 자신들이 만들어 크렘린에 올려보낸 ‘가짜 전쟁 보고서’가 러시아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이 실제 전쟁보다 자신이 듣고 싶은 전쟁을 믿기 시작했다면, 러시아의 패배는 전선보다 먼저 크렘린의 상황판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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