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마하 9’ 자랑하던 지르콘 뜯어봤더니... 형편없는 러시아 수준]
러시아가 세계를 위협해온 대표적인 ‘공포 무기’ 가운데 하나가 해부대 위에 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방 방공망을 뚫을 전략무기로 자랑해온 3M22 지르콘의 내부 구조와 생산망을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 공개했는데, 확인된 내용 가운데 일부는 크렘린이 만들어온 이미지와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는 러시아 대표단을 둘러싸고 유럽 국가들이 집단 반발했다. 푸틴이 러시아의 위상을 떠받쳐온 두 축, 즉 ‘군사적 공포’와 ‘강대국의 위신’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총국(GUR)은 지난 8월 31일 자체 정보 포털 ‘War & Sanctions’에 지르콘의 인터랙티브 3D 모델과 내부 구성, 생산업체와 관계자 정보를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총국(GUR)은 이 보고서에서 “러시아 3M22 지르콘 미사일 길이는 약 8m, 직경 0.666m, 탄두 중량은 약 120㎏”이라면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속도로, 지르콘의 제원상 최고속도가 마하 8~9로 표시돼 있지만, 별도로 ‘Maximum fixed speed’, 즉 확인된 최고속도는 마하 6.8”이라 밝혔다. 러시아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숫자와 실제 확인된 수치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추진기관이다. Business Insider는 “GUR이 공개한 내부 구성에는 ‘3L2211 solid-fuel missile engine’, 즉 3L2211 고체연료 미사일 엔진과 별도의 발사용 엔진이 명시돼 있다”면서 “GUR은 포털에서 지르콘을 아예 ‘3M22 Zircon 탄도미사일(ballistic missile)’로 분류하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이것만으로 지르콘에 스크램제트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지르콘의 내부 구성 일부가 실물·생산자료를 통해 공개되면서 러시아의 공식 선전과 실제 구조를 비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지르콘이 별것 아닌 무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확인된 최고속도 마하 6.8만으로도 극초음속 영역이며 방어 측에는 매우 위협적인 무기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에서 지르콘을 비롯한 고속 탄도계열 무기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기존 순항미사일과 드론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방어능력이 향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이번 폭로의 핵심은 ‘지르콘은 가짜’가 아니라 ‘러시아가 선전해온 지르콘과 실제 전장에서 확인되는 지르콘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에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미사일보다 ‘러시아 군수산업의 속살’]
이번 자료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지르콘 한 발의 성능보다 그 뒤에 숨어 있던 군수산업 생태계다. GUR은 지르콘 생산에 관여한 기업 70곳과 주요 기업 관계자 84명을 공개했다. 엔진과 레이더, 전자장비, 유도장치뿐 아니라 생산업체가 사용하는 공작기계와 시험장비까지 추적했다. 러시아가 최고의 전략무기 가운데 하나로 내세워온 지르콘이 어떤 기업과 기술망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상당 부분 베일이 벗겨진 셈이다.
특히 지르콘 관련 자료에는 미국 트라이퀸트 세미컨덕터(TriQuint Semiconductor, 미국의 RF 반도체 업체로, 통신·레이더·항공우주·방산 등에 쓰이는 고주파 증폭기와 반도체 부품을 만들던 회사), 현재 코르보(Qorvo, 미국 반도체 회사) 계열의 TGA2704 증폭기 같은 외국산 전자부품이 등장한다. 생산시설에 사용되는 장비 목록에도 한국산 음향현미경과 X선 검사장비, 일본산 머시닝센터, 미국산 워터젯 장비, 중국산 공작기계 등 다양한 외국산 설비가 확인된다. 이는 러시아 군수산업이 제재 아래에서도 외국산 전자부품과 생산설비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바로 이 지점이 푸틴에게 뼈아프다. 지르콘 한 발이 요격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더 위험한 것은 러시아 첨단무기를 둘러싼 ‘기술적 신비감’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사일의 구조와 생산업체, 관계자, 외국산 부품과 제조장비까지 파악한다면 그 무기는 더 이상 정체불명의 공포가 아니다. 공급망을 차단하고 취약점을 분석하며 새로운 요격방법을 연구할 수 있는 하나의 공학적 대상으로 바뀐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포 무기’를 덜 두려워하는 이유]
우크라이나전은 이런 러시아의 신화를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전쟁 초기만 해도 러시아의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와 극초음속 무기는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떨어진 미사일 잔해를 수거하는 수준을 넘어 내부 부품과 생산기업, 공급망, 생산설비까지 추적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불과 며칠 전인 8월 27일에는 이스칸데르-M에서 확인된 러시아·외국산 부품 140개와 관련 생산기업 35곳, 관계자 108명의 정보도 공개했다.
공포는 상대의 능력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극대화된다. 반대로 무기의 구조와 한계, 생산기반이 하나씩 파악되는 순간 공포는 ‘대응해야 할 위험’으로 바뀐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의 군수시설과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하면서 러시아의 보복능력을 과거처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모습 역시 이런 전쟁 경험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같은 날 G20에서도 푸틴은 체면을 구겼다]
더 공교로운 장면은 같은 8월 3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에서 벌어졌다. 로이터는 “러시아 재무장관 안톤 실루아노프가 미국의 초청으로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침공 이후 처음 G20 재무장관회의에 직접 참석했다”면서 “그러나 유럽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러시아 대표의 복귀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고 보도했다.
상징적인 것이 단체사진이었다. 로이터는 “유럽 측은 실루아노프가 포함된 전통적인 G20 ‘패밀리 포토’ 촬영을 거부했고, 결국 러시아 대표가 빠진 사진이 촬영됐다”면서 “독일의 라르스 클링바일 재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는데, 결국 러시아는 회의장에는 돌아왔지만 ‘정상국가로의 복귀’까지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라고 짚었다.
더욱 주목할 것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실루아노프의 별도 회동이다. 로이터는 “실루아노프가 양국의 금융·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했지만, 베선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경제적 협력을 진전시키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면서 “미국이 러시아와 대화의 문 자체를 닫은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가 기대할 법한 경제적 정상화까지 허용하겠다는 의미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러시아 안에서도 ‘끝없는 전쟁’ 피로가 쌓인다]
푸틴에게 더욱 신경 쓰이는 부분은 러시아 내부의 변화다. 그렇다고 이를 ‘러시아 국민이 푸틴에게 등을 돌렸다’고 단정하면 사실과 다르다.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Levada Center)가 8월 실시한 조사에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군사행동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여전히 68%였다. 반대는 21%였다. 물론, 사회적 감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여서 소신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어려운 사회 상황이 배경에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사회의 전쟁 지지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고 볼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숫자를 보면 분위기는 복잡하다. 59%가 군사행동보다 평화협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전쟁 지속을 원하는 응답은 31%였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55%가 전쟁이 앞으로 1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는 점이다. 이는 해당 조사에서 역대 최고치다. 러시아인 상당수가 승전 기대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전’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쟁이 러시아 국민들의 일상으로 파고든 정도도 커졌다. 레바다 조사에서는 10명 중 6명가량이 이 전쟁이 자신 또는 가족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영향을 받았다는 응답자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지인의 사망, 드론 공습, 가족관계 단절 등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었다. 군사작전을 지지하는 것과 ‘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지금 러시아 여론의 특징인 셈이다.
[지르콘의 굴욕이 중국에도 불편한 이유]
여기서 중국에 대해서도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다만 이번 지르콘 분석을 근거로 중국 미사일 역시 성능이 부풀려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국은 DF-17 등 자체적인 극초음속 무기체계를 개발해왔으며 중국 미사일 전체를 단순히 러시아 무기의 복제품으로 보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에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중국군은 오랜 기간 소련·러시아 무기와 군사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흡수하면서 자체 무기체계를 발전시켜왔다. 그렇다면 실전검증 경험이 제한된 국가가 발표하는 최고속도·사거리·요격회피능력 같은 제원을 어디까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지르콘 사례가 중국 무기의 성능을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발표된 스펙’과 ‘실전에서 검증된 성능’은 다르다는 교훈만큼은 중국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Why Times Insight — 푸틴이 잃은 것은 미사일 한 발이 아니라 ‘공포’다]
푸틴에게 이번 지르콘 공개가 뼈아픈 진짜 이유는 최고속도가 마하 9가 아니라 확인된 최고속도 마하 6.8이었다는 숫자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강대국의 힘은 실제 무기의 파괴력뿐 아니라 상대방이 그 무기를 얼마나 두려워하느냐에서도 나온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서방이 막기 어려운 신형무기를 잇따라 공개하며 바로 그 ‘공포’를 전략자산으로 활용해왔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의 탱크와 방공체계,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이 하나씩 실전에 투입됐고 상대는 이제 잔해를 수거해 내부를 뜯어보고 있다. 미사일의 엔진과 전자부품을 넘어 생산기업과 기술자, 생산설비까지 추적한다. 지르콘 역시 더 이상 이름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미지의 무기’가 아니라 구조와 공급망을 분석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체계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국제회의장에서는 러시아 재무장관과 한 장의 단체사진을 찍는 것조차 거부하는 유럽 국가들이 있었다. 러시아 국내에서는 군사작전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높지만 동시에 59%가 평화협상을 원하고, 과반은 전쟁이 앞으로도 1년 이상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전장에서는 무기의 신비가 벗겨지고, 외교무대에서는 강대국의 권위가 도전받고, 국내에서는 장기전에 대한 피로가 누적되는 세 장면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푸틴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러시아가 당장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만이 아니다. 세상이 러시아를 예전만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지르콘 한 발의 실패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패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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