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가장 최근엔 팔라우…中 경고했지만 대만은 들어왔다]
중국이 외교의 절대선으로 규정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이 곳곳에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아프리카 유일의 대만 수교국 스와티니는 중국의 경제·외교 압박에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팔라우는 중국이 공개적으로 경고했는데도 대만 외교장관을 국제회의 관련 행사에 받아들였다. 소말릴란드와 리투아니아 역시 중국의 반발과 경제적 보복을 감수하면서 대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NO” 하면 상대국이 결국 물러서던 외교공식에 예외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일, “중국은 남태평양 팔라우(Palau)에서 열린 태평양도서국포럼(PIF)에 린자룽 대만 외교부장이 참석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대만 측 참석에 ‘후과’가 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개최국 팔라우는 물러서지 않았고 린 부장은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면서 “호주와 뉴질랜드도 누가 행사에 참여할지는 태평양 국가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는데, 결국 중국이 대만의 참석을 막으려 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어 “팔라우는 대만과 공식 수교관계를 유지하는 태평양 3개국 가운데 하나”라면서 “중국은 여행과 관광 문제까지 거론하며 압박해왔지만 팔라우는 관계를 바꾸지 않았는데, 결국 이번 장면은 ‘중국이 반대하면 작은 나라가 물러선다’는 기존 외교공식이 더 이상 항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스와티니에는 “떠나라”…그런데 중국기업부터 안 떠났다]
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났다. 범아프리카 다국어 뉴스 네트워크인 Africanews(아프리카뉴스)는 지난 8월 27일, “중국은 8월 자국민에게 아프리카 유일의 대만 수교국 스와티니(Eswatini) 방문을 자제하고 이미 체류 중인 사람은 철수하거나 남아공 등으로 이동하라고 권고했지만, 스와티니 정부는 외교정책 선택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반발했다”면서 “그런데 더 상징적인 것은 현지 중국기업의 반응이었는데, 음파케니 댐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계 컨소시엄은 ‘공사를 중단하거나 축소할 계획이 없다’며 예정대로 프로젝트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뉴스는 “중국 정부는 철수를 권고했지만 현지 중국기업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대로 남은 것인데, 베이징의 정치적 압박과 중국 자본의 경제적 이해가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었다”고 짚었다. 한마디로 중국 정부의 영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것이다.
아프리카뉴스는 이어 “중국의 스와티니 압박은 여행경보에 그치지 않았다”면서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무관세 혜택을 확대하면서 스와티니만 제외했는데,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베이징이 아니라 타이베이와 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스와티니 방문 과정에서도 중국의 압박은 확인됐는데, 세이셸·모리셔스·마다가스카르가 잇따라 중국 요구에 따라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첫 일정은 무산됐지만, 라이 총통은 결국 다른 방식으로 5월 스와티니에 입국했다”면서 “중국이 길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방문 자체와 양국 관계까지 막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소말릴란드·리투아니아도 “중국이 NO 해도 간다”]
소말릴란드(somaliland)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로이터는 “소말릴란드는 중국과 소말리아의 반발에도 대만과의 대표부 관계를 유지·확대하면서 누구와 관계를 맺을 것인지는 자신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면서 “소말릴란드가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승인된 독립국은 아니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중국의 반대가 곧 관계 단절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유럽에서는 리투아니아가 대표적이다. 리투아니아는 2021년 빌뉴스에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Taiwanese)’ 명칭의 대표처 개설을 허용했고, 중국은 외교관계를 격하하고 경제적 보복에 나섰다. 하지만 대표처는 유지됐고, 오히려 EU가 중국의 무역압박을 문제 삼아 WTO에 제소하면서 중국의 양자 압박은 유럽 전체의 ‘경제적 강압’ 대응 문제로 확대됐다.
[가장 큰 예외는 미국…중국의 ‘원칙’과 미국의 ‘정책’은 다르다]
가장 큰 예외는 미국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의 ‘One China principle’과 미국의 ‘One China policy’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했지만 대만관계법과 미중 공동성명, ‘6개 보장’을 바탕으로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방어용 무기 제공의 틀도 계속 유지해왔다. 중국은 미국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라고 반복적으로 요구하지만 워싱턴은 베이징이 요구하는 방식 그대로 대만을 고립시키지는 않는다.
중국은 올해도 미국의 대만 관련 행보에 대해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미국과 대만의 경제·안보 협력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이 가장 강력한 국가를 상대로 자신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적용 범위를 완전히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은 중국을 향한 ‘자동복종’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물론 스와티니나 팔라우 몇 나라의 사례만으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외교가 무너졌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대만의 공식 수교국을 12개국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고 지금도 상당한 경제·외교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국의 힘이 사라졌느냐가 아니라, 그 힘이 상대국의 ‘자동복종’으로 연결되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느냐다.
중국 외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중국에 NO라고 하면 큰 비용을 치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중국시장 접근이 막히고, 투자와 관광객이 줄고, 원조와 외교관계까지 손상될 수 있다는 공포가 상대국의 선택을 제한했다. 그런데 스와티니가 버티고, 팔라우가 중국의 경고에도 대만 외교장관을 받아들이고, 소말릴란드가 “관계는 우리가 결정한다”고 선언하며, 리투아니아가 경제적 보복에도 대표처를 유지한다면 다른 국가들의 계산도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이 반대하면 안 된다”에서 “중국이 반대해도 버틸 수 있는가?”로 질문이 바뀌는 순간, 중국 외교의 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Why Times Insight]
이번 사태의 진짜 의미는 스와티니나 팔라우 한두 나라가 대만을 지지했다는 데 있지 않다. 중국이 지난 수십 년간 구축해온 외교적 영향력의 핵심은 군사력 자체보다 거대한 시장과 투자, 무역 그리고 이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바로 그 힘이 가장 강하게 작동했던 영역이다.
그런데 지금 나타나는 변화는 중국이 요구하면 상대국이 무조건 물러나는 구조에 예외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스와티니에서 철수를 권고했는데도 중국기업이 공사를 계속하겠다고 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정치적 압박을 강화할수록 중국 자신도 이미 확보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포기해야 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아직 ‘하나의 중국’ 외교전략의 붕괴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거대한 제방도 처음에는 작은 틈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어느 한 국가가 중국의 압박을 거부하고도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다른 국가들도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게 된다.
시진핑에게 진짜 위험한 것은 대만의 수교국 하나를 더 빼앗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중국이 NO라고 해도 별일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둘 확인하기 시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의 중국’ 외교에 생긴 가장 위험한 균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