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IRGC 거물 레자이도 움직였다…“조건 맞으면 호르무즈 연다”]
이란전쟁이 중대한 변곡점으로 접어들고 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힘과 존엄을 유지하고 있을 때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취지로 종전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데 이어, 이번에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총사령관을 지낸 모흐센 레자이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이란이 공식적으로 여전히 “항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무조건 항복’을 통한 종전 수순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란 안보 책임자의 이번 발언을 주목하게 만든다.

로이터통신은 27일(현지시간), “이란의 대통령에 이어 이란 강경파를 대표해온 안보라인의 핵심 인사까지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넘어 ‘어떤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고 호르무즈를 열 것인가’를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면서 “적어도 이란 지도부 내부에서 전쟁의 출구를 찾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로이터는 이어 “결정적인 변화는 27일 나왔는데, 모흐센 레자이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레바논 알마나르TV와의 인터뷰에서 중재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조건을 타진해 왔으며 이란 정부가 현재 요구조건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면서 “레자이는 개방조건에 이란을 둘러싼 전쟁의 종식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더 중요한 것은 레자이가 미국이 이란 측 요구를 수용한다면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된 중앙항로를 통해 통항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라면서 “아직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인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러나 이란이 무조건적인 봉쇄 지속을 주장하던 단계에서 ‘어떤 조건이면 다시 열 것인가’라는 협상 단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짚었다.
로이터는 “레자이는 단순한 정부 관료가 아니다”면서 “1981년부터 1997년까지 IRGC 총사령관을 지낸 대표적인 강경파이며, 지난 10일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에 임명됐다”고 설명했다. 로이터는 그의 임명을 보도하면서 “레자이는 이란의 대표적 강경파 인사”라고 평가했다. 그런 인물이 이제 호르무즈 개방과 전쟁 종식을 하나의 협상구도 안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정치적 무게가 다르다.
[“열지 않겠다”에서 “조건 맞으면 열겠다”로]
이 변화가 더욱 중요한 이유는 불과 얼마 전까지 이란의 입장이 훨씬 강경했기 때문이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는 11일 미국이 행동을 바꾸고 이란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호르무즈 해협을 계속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레자이 역시 미국의 경제 압박에 동참하는 국가에는 보복하겠다는 강경한 경고를 내놓았다.
그런데 이제 메시지가 “열지 않겠다”에서 “어떤 조건이면 열겠다”로 이동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이란의 항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 지속만을 외치던 강경파가 구체적인 종전조건과 호르무즈 개방방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 적어도 테헤란의 전략적 계산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더구나 이란과 오만은 실제로 호르무즈의 새로운 통항회랑 설치를 협의하고 있다. 로이터는 26일 “양국이 회랑에 관한 세부사항을 계속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자이도 “오만 영해와 이란 영해 양쪽에 걸친 새로운 회랑 구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를 ‘봉쇄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다시 선박을 통과시킬 것인가’로 논의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페제시키안 이어 레자이까지…“어떻게 끝낼 것인가”가 의제로]
이러한 변화는 레자이 한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최근 “우리가 힘과 존엄을 가진 위치에 있을 때 전쟁을 끝내는 것이 낫다”는 취지로 공개적인 종전론을 제기했다. 동시에 그는 항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종전을 패배가 아닌 ‘승리한 상태에서의 종료’로 포장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 지도부의 공식적인 수사와 실제 행동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란 최고지도부가 미국에 대한 ‘항복’을 공개 선언하는 것은 체제의 성격상 정치적으로 극히 어렵다. 중요한 것은 ‘항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다.
페제시키안은 종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레자이는 호르무즈 개방조건을 작성하고 있다. 이란은 오만과 새로운 통항회랑을 협상하고 있다. 이 흐름을 하나로 연결하면 적어도 테헤란 내부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못지않게 ‘어떤 조건으로 끝낼 것인가’가 국가안보의 핵심 의제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카타르·오만·파키스탄까지…테헤란으로 몰려가는 중재자들]
중재국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알자지라는 “카타르의 셰이크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총리는 27일 테헤란을 방문해 이란 지도부와 긴장 완화와 대화 재개 문제를 논의했다”면서 “카타르는 지난 6월 미국과 이란 사이의 일시적인 합의를 중재했던 핵심 국가”라고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이어 “오만에 이어 파키스탄도 움직이고 있다”면서 “파키스탄의 아심 무니르 군 최고지도자는 24일 테헤란을 방문해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레자이 등 이란 지도부를 만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그의 방문 목적은 이란전쟁의 평화와 안정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연장선”이라고 전했다.
카타르·오만·파키스탄이 잇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단순한 외교적 탐색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실제로 알자지라는 27일 이러한 움직임을 분석하면서 “양측이 적어도 군사적 긴장 완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서두르지 않는다]
문제는 미국의 태도다. 로이터는 “이란과 중재국들이 출구를 찾으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의 합의조건으로 되돌아가는 데 선을 긋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과거 휴전 조건으로 돌아가는 방안을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제유가가 2% 이상 상승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오히려 군사압박과 함께 경제압박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로이터는 “이란의 원유수출과 국제금융 접근을 차단하고 이란에 경제적 생명줄을 제공하는 제3국과 기업까지 압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결국 미국으로서는 이란이 먼저 협상조건을 낮출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결국 현재 협상구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란은 출구를 찾기 시작했는데 미국은 아직 조건을 낮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비대칭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경제…이란 국민들의 삶부터 흔들린다]
이란 지도부의 태도가 달라지는 배경에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난이 있다.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이란의 핵심 외화수입원인 원유수출이 거의 완전히 중단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리알화는 달러당 205만 리알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정부도 국민들에게 앞으로 1년 동안 경제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식탁의 충격은 더욱 크다. 알자지라는 “이란 통계당국 자료에 따르면 7월 식료품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28% 이상 상승했다”면서 “의약품 부족과 정전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테헤란과 마슈하드·카라지 등 여러 도시의 주유소에서는 연료가 떨어져 긴 차량 행렬까지 나타났는데, 산유국인 이란에서 국민들이 휘발유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단순한 경제지표 이상의 문제다. 알자지라는 “연료 가격을 올리면 물가가 다시 치솟고 사회적 불만이 폭발할 위험이 있지만, 지금처럼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면서 초저가 연료체계를 유지하는 것도 지속하기 어렵다”면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군사적 부담뿐 아니라 체제 내부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Why Times Insight]
이란 지도부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 항복한다”고 선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 인정이 아니라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구축된 반미체제의 정통성 자체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판단하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한다.
페제시키안은 항복을 부인하면서 종전을 이야기한다. 레자이는 미국을 위협하면서도 미국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호르무즈를 열겠다고 한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계속 통제하겠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오만과 새로운 통항회랑을 협상한다. 여기에 카타르와 파키스탄까지 테헤란을 오가며 종전 중재에 나서고 있다.
결국 이란이 보내는 메시지는 하나로 모인다. “항복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전쟁을 끝낼 출구는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지금 테헤란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다. 특히 대통령에 이어 IRGC 총사령관 출신의 안보수장까지 ‘전쟁 종식’과 ‘호르무즈 개방’을 동시에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란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에서 체제와 경제를 보존할 수 있는 출구를 확보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반면 트럼프는 과거의 합의 조건으로 돌아가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고 경제적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전쟁이 끝나는가’가 아니다. 이란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어디까지 양보할 것인가'다.
이란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페제시키안의 종전론에 이어 레자이의 호르무즈 개방조건 작성, 오만과의 통항회랑 협상, 카타르와 파키스탄의 중재외교까지 연결해 보면 전쟁의 중심축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은 분명하다.
미사일과 드론이 지배하던 전장에서 이제 ‘종전의 가격’을 둘러싼 협상전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6개월을 끌어온 이란전쟁은 마침내 종착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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