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수출길 막히고 부채 800억 달러 폭발…생산해도 손실, 멈춰도 파산]
세계적인 산유국 이란이 정작 자국민에게 공급할 휘발유조차 부족해 배급제를 검토하는 참담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미국의 제재와 해상봉쇄로 원유 수출과 외화 유입이 막힌 가운데 이란 경제의 심장인 국영석유회사까지 800억 달러가 넘는 부채에 짓눌려 계좌가 동결됐다. 원유를 계속 생산하면 팔 곳과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 손실이 커지고, 생산을 멈추면 유전과 국가재정이 함께 무너지는 죽음의 덫에 갇힌 것이다. 그런데도 이란 강경파와 혁명수비대는 국민에게 더 큰 희생을 요구하며 ‘결사항전’을 외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결사항전인가?

영국에 본부를 둔 이란 전문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18일, “이란 국영은행인 산업광업은행이 지난 5일 국영석유회사 NIOC의 계좌를 동결했다”면서 “국부펀드인 국가개발기금에 2년 넘게 갚지 못한 약 10억 달러의 채무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이어 “NIOC에는 별도로 약 15억 달러 규모의 세금도 부과됐으며, 강제집행은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한 뒤에야 가까스로 중단됐다”고 짚었다.
이는 단순히 한 국영기업의 자금난이 아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NIOC는 이란 원유 생산과 수출을 사실상 독점하며 정권 운영자금과 군사비, 공무원 급여를 떠받쳐 온 이란 경제의 심장”이라면서 “그 회사의 은행계좌가 이란 국영은행에 의해 동결됐다는 것은, 미국의 압박이 마침내 이란 경제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드러난 부채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란인터내셔널은 “NIOC는 국제적으로 검증된 감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이란 예산도 국영기업의 부채를 회사별로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는다”면서 “올해 예산안에는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에서 빌린 550억 유로, 약 635억 달러의 원리금 상환을 다시 유예한다는 내용이 표 아래 한 줄로 처리돼 있다”고 밝혔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여기에 국가개발기금이 공개한 미상환 대출 170억 달러를 합치면 NIOC의 확인 가능한 채무만 800억 달러를 넘어선다”면서 “이는 시장환율로 환산한 이란 정부의 올해 전체 일반예산 약 370억 달러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라고 짚었다.
[제재를 피하려 만든 ‘회색시장’이 석유회사를 집어삼켰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이란은 2018년 미국의 핵합의 탈퇴와 제재 복원 이후 원유 생산을 포기하는 대신 비밀 수출망을 구축했다”면서 “혁명수비대 계열 기업과 국내 업체를 투입한 결과, 한때 하루 200만 배럴 아래까지 떨어졌던 생산량은 2024년 중반 약 360만 배럴로 회복됐는데, 겉으로만 보면 이란이 미국의 제재를 이겨낸 것처럼 보였다”고 짚었다.
그러나 생산량 회복은 수익성 회복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이란은 원유를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10~15달러 싸게 팔고, 그림자 선단과 해상 환적, 선박 신원 위장, 원산지 세탁과 복잡한 중개망을 동원해야 했다”면서 “중국의 독립계 정유사들이 이란산 원유의 대부분을 흡수했지만, 할인과 운송비·중개수수료·자금세탁 비용을 제외하면 이란에 실제로 들어오는 외화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결국 미국의 제재는 이란 원유 한 방울도 팔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한 것이 아니다”면서 “이란이 원유를 한 배럴 팔 때마다 더 많은 할인과 우회비용을 부담하도록 만들어, 수출을 계속할수록 국영석유회사의 재정이 마르는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이란 정권은 수출량을 선전했지만 그 뒤에서는 NIOC가 손실을 대출로 메우고, 그 대출의 이자를 다시 대출로 돌려막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생산해도 손실, 멈춰도 붕괴한다]
미국의 해상봉쇄가 강화되면서 이란의 선택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함정을 교대 배치해 대이란 봉쇄를 사실상 무기한 유지할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면서 “이란의 원유 수출이 급감하면 외화 수입이 끊기는 것은 물론, 생산된 원유가 저장시설에 쌓이면서 감산 압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전은 공장 스위치처럼 마음대로 껐다가 다시 켤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장기간 생산을 중단하면 압력 관리와 설비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전쟁으로 훼손된 생산·수송시설을 복구하려면 다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란은 생산을 계속하면 팔리지 않는 원유와 비용이 쌓이고, 생산을 줄이면 유전과 국가수입 기반이 함께 약화되는 덫에 걸렸다. 미국은 이란의 유전을 모두 폭격하지 않고도 이란이 스스로 석유산업을 소모하도록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포스트는 “실제로 미국의 봉쇄로 이란의 원유 수출은 사실상 바닥 수준까지 추락했고, 최대 원유 수출기지인 하르그섬에서도 선적 활동이 급감한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전직 미 재무부 관리 미아드 말레키는 이란 정부 급여 재원의 약 60%가 석유수입에 의존한다며, 봉쇄가 계속되면 수개월 안에 정권의 안정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빚은 국영석유회사가 내고,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이란인터내셔널은 “NIOC가 국가개발기금에서 빌린 170억 달러에 공개된 연 6% 금리를 적용하면 이자만 매년 약 10억 달러에 달한다”며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에서 빌린 635억 달러에 연 4%만 적용해도 이자는 약 25억 달러인데, 이는 이란 정부가 올해 의약품 수입에 배정한 외화 15억 달러를 훨씬 뛰어넘는다”고 짚었다.
NIOC가 갚지 못한 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은행은 부실대출을 정상자산처럼 장부에 남기고, 부족한 유동성을 중앙은행에서 공급받는다”며 “그 과정에서 통화량이 늘고 리알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폭등하게 되는데, 결국 국영석유회사의 부실을 떠안는 사람은 최고지도자도, 혁명수비대 지휘부도 아니며, 약값과 식료품값, 주거비 폭등을 견뎌야 하는 평범한 이란 국민”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란인터내셔널은 “리알화 가치는 2025년 초 달러당 약 90만 리알에서 현재 약 200만 리알까지 추락했다”면서 “외화로 표시된 NIOC의 부채는 그대로인데, 이를 갚아야 할 이란의 세입과 국민소득 가치는 반 토막 난 것”이라 설명했다.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입을 막아 외화를 끊고, 환율 폭락을 통해 기존 외화부채의 실질 부담까지 키우는 이중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 부국 이란이 휘발유 배급제를 검토하는 역설]
더 충격적인 것은 세계적인 원유 생산국인 이란이 자국민에게 공급할 휘발유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이란 전략에너지정책관리기구의 에스마일 사가브에스파하니 대표는 “국내 휘발유 생산량이 하루 약 1억2100만 리터인 반면 소비량은 약 1억3500만 리터에 달해, 매일 약 1400만 리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원유가 많다고 곧바로 휘발유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원유를 가공할 정유시설과 투자자금, 첨가제·부품, 원활한 수입망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장기간의 제재와 전쟁으로 정제시설이 노후화하고 일부 생산능력까지 훼손된 데다, 봉쇄로 휘발유 수입마저 어려워졌다”고 짚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이어 “이란은 지난 회계연도에만 휘발유 수입에 약 60억 달러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그 돈도, 수입할 통로도 부족하다”며 “이란 당국자는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3년 뒤 하루 부족량이 7000만 리터까지 확대될 수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소 130억~300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정부는 주유소별 공급량을 제한해 물량이 소진되면 판매를 중단하거나, 차량별 할당량을 강화하고 초과분에 시장가격을 적용하는 방안, 국민 한 사람당 매달 30리터를 배급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는 아직 전국적으로 확정·시행된 제도는 아니지만, 산유국 이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휘발유 배급을 논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에너지 체제의 실패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더구나 이란 정권은 휘발유 가격을 쉽게 올릴 수도 없다. 2019년 11월 기습적인 가격 인상은 100개가 넘는 도시의 대규모 시위와 유혈 진압으로 이어졌다. 케르만주에서 추진했던 초과 사용분 가격 인상 시범안이 시행 직전 돌연 보류된 것도 민심 폭발에 대한 정권의 공포를 보여준다. 이란 지도부는 재정 때문에 보조금을 줄여야 하지만, 보조금을 줄이는 순간 정권을 뒤흔들 반정부 시위가 터질 수 있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트럼프의 ‘원투펀치’, 이란의 돈줄과 숨통을 함께 조인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13일 “한 국가에 대한 경제적 고립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조치”를 예고했다. 그는 새로운 금융제재와 미 해군의 항구 봉쇄를 결합한 압박을 ‘원투펀치’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뉴욕포스트는 “첫 번째 주먹은 석유를 팔지 못하게 하는 해상봉쇄이고, 두 번째 주먹은 원유를 몰래 팔더라도 대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금융 고립”이라면서 “여기에 선박과 중개회사, 환전상, 암호화폐 지갑까지 제재하면 이란은 원유를 생산하고도 현금화하지 못하게 되는데,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압박은 이제 단순한 제재가 아니라 이란 경제의 혈액인 석유와 외화의 순환 자체를 멈추게 하는 전략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누구를 위한 결사항전인가?]
그럼에도 이란 강경파와 혁명수비대는 핵 프로그램과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포기할 수 없다며 결사항전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결사항전의 비용은 권력층이 아니라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국영석유회사의 부채는 인플레이션이 되고, 외화 부족은 의약품 부족이 되며, 수출 봉쇄는 휘발유 배급과 일자리 붕괴로 돌아온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66%에 달하고 기업 폐업과 고용 감소, 생활필수품 가격 급등이 이어지면서 지도부가 새로운 대규모 시위를 우려하고 있다”면서 “정권은 국민에게 저항을 요구하면서도 민심이 폭발할 가능성을 두려워해 바시지 민병대를 강화하고 언론인과 학생, 활동가에 대한 탄압을 확대하고 있다”고 짚었다.
[Why Times Insight]
이란은 이제 석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석유에 모든 것을 의존했기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최대압박은 원유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키지 않고도 수출 할인과 우회비용, 결제 차단, 외화부채와 봉쇄를 결합해 이란이 생산할수록 더 깊은 손실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이란 경제의 심장인 NIOC는 800억 달러가 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계좌까지 동결됐고, 세계적인 산유국의 국민들은 휘발유 배급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도 강경파는 항복보다 국민의 희생을 택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 약을 구하지 못하고,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하지 못하며, 물가 폭등으로 생계를 잃는 국민에게 결사항전을 강요하는 것은 애국이 아니다. 그것은 정권과 혁명수비대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 전체를 제물로 바치는 정치적 인질극이다. 트럼프의 무한압박은 바로 그 모순을 폭발시키고 있으며,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은 NIOC의 회계장부만이 아니라 이란 신정체제의 경제적 생존 기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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