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이란은 남의 유조선 못 막고 미국은 이란 수출항 봉쇄…‘단방향 봉쇄’의 역설]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해 세계 에너지 시장을 인질로 잡으려던 이란의 승부수가 오히려 거대한 역풍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막으면 세계가 공포에 빠지고 트럼프가 먼저 굴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한국의 일부 언론도 이란의 위협과 협상 조건은 크게 전하면서 미국의 해상봉쇄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만들고 있는지는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다른 산유국의 유조선은 위치신호를 끄고 해협을 통과했지만, 미국의 감시망에 걸린 이란산 원유는 하르크섬 주변에 갇혔다. 세계를 봉쇄하려던 이란이 트럼프의 역봉쇄에 걸려 스스로의 재정 생명줄을 끊는, 말 그대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5일, “지난 2월 28일 미·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호르무즈해협의 통항량은 급감했는데, 이렇게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이 흔들리자 브렌트유는 4월 말 배럴당 126달러를 넘어섰다”면서 “그러나 7월 초에는 71.99달러까지 떨어졌고, 8월 14일에도 88.52달러에 거래를 마쳤는데, 전쟁 이전보다 높은 가격이지만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고 유조선 공격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시장은 이미 최악의 공급 중단 가능성을 상당 부분 걷어낸 셈”이라고 보도해 충격을 주었다. 이는 그동안 한국의 언론들이 지속적으로 보도해왔던 흐름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호르무즈해협이 정상화된 것은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7월 초 유조선 통행이 사실상 멈춘 수준이라고 전했고, 최근에도 전체 통항량은 크게 위축돼 있다. 다만 제한적으로 해협을 건너는 선박들은 AIS를 끄고 항적을 숨기는 ‘암흑 항해’를 확대했다. 블룸버그는 시그널 오션 자료를 인용해 “미국이 대이란 봉쇄를 재개한 7월 14일부터 8월 초까지 해협을 통과한 원유·석유제품 운반선의 62%가 한동안 위치신호를 송출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전체 물동량의 62%가 정상 운송됐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란이 실제 통과 선박조차 완벽히 탐지하거나 차단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로이터는 “실제로 지난 5월에는 초대형 유조선 3척이 총 600만 배럴의 중동산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는데, 일부 선박은 이란의 감시와 공격을 피하기 위해 위치신호를 차단했고, 중국계 또는 비서방 선박과 복잡한 소유구조를 활용했다”면서 “혁명수비대가 서방 국적·서방 보험 선박에는 상당한 위협을 가할 수 있지만, 국적과 선주를 바꾸고 공해상 환적까지 동원하는 ‘회색 선단’을 모두 통제하기에는 감시·식별 능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남의 배는 빠져나가는데 이란산 원유만 발이 묶였다]
이란의 불완전한 해협 봉쇄와 달리 미국의 역봉쇄는 이란의 수출 기반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7월 중순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를 다시 가동한 뒤,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를 처리해 온 하르크섬에서는 7월 31일 이후 한동안 신규 선적이 관측되지 않았다”면서 “8월 4일 위성사진에는 원유를 실은 유조선 13척이 하르크섬 동쪽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부두에서 선적 중인 선박은 한 척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핵확산방지단체 UANI는 “7월 28일 현재 이란산 원유를 적재한 뒤 미국의 단속을 피해 오만만 봉쇄선을 벗어난 유조선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란 수출이 통계적으로 완전한 ‘제로’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지만, 적어도 새로 선적한 원유의 정상적인 해외 반출은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UANI는 이어 “이란은 과거 제재를 회피할 때 활용했던 AIS 차단과 선박 간 환적 수법조차 미군의 위성·해상초계기·전자정보 감시망 앞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결국 남의 유조선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조금씩 빠져나가지만, 이란의 유조선은 자국 해안에 쌓이는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졌다”고 짚었다.
UANI는 “이란은 2025년 하루 평균 약 150만~180만 배럴을 수출하며 석유 판매대금을 정부 재정과 외화 확보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했지만, 이미 지난 5월 미국의 1차 봉쇄 때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전월 대비 93% 감소한 하루 평균 6만4921배럴까지 추락했다”면서 “당시에도 8000만 배럴 이상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봉쇄선 안쪽에 갇힌 것으로 추산됐다”고 설명했다.
이란이 당장 모든 석유수입을 잃은 것은 아니다. FT는 “봉쇄 이전에 출항해 아시아로 이동 중인 물량의 판매대금과 일부 비축 원유가 남아 있다”면서 “그러나 신규 선적과 현금화가 장기간 막히면 원유 저장시설이 포화되고 생산량까지 줄여야 하는데, 이로 인해 외화 공급 감소는 리알화 가치와 수입물가를 압박하고, 식량·의약품 보조금과 공무원·군인 급여 지급 능력도 약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대규모 지상전 대신 해상봉쇄를 택한 이유가 바로 이란 정권의 전쟁 지속 능력을 매일 조금씩 고갈시키는 데 있다.
[OPEC+와 우회 송유관…세계는 ‘이란 없는 시장’ 준비한다]
이란의 봉쇄 카드가 약화된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산유국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이라크·쿠웨이트·카자흐스탄·알제리·오만 등 OPEC+ 7개국은 9월부터 하루 18만8000배럴을 추가 증산하기로 했다”면서 “4월 이후 여섯 달 연속 이어진 공급 확대다. 증산 규모만으로 호르무즈 물동량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수요 증가세 둔화와 미국의 원유 재고 증가가 겹치면서 국제시장의 공포를 누그러뜨리고 있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미 에너지정보청 EIA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횡단 송유관과 UAE의 아부다비-푸자이라 송유관도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해 하루 최대 470만 배럴을 운송할 수 있다”면서 “이는 평소 해협을 지나는 약 2100만 배럴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공급 충격을 완충하고 걸프 산유국의 수출을 유지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미 에너지정보청 EIA는 이어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서 사라질수록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경쟁 산유국이 점유율을 가져가는 구조도 굳어지고 있다”며 “이란이 해협을 흔들수록 경쟁국의 전략적 가치와 수익은 커지는 셈”이라고 짚었다.
[호르무즈 협박이 정권의 재정위기로 돌아왔다]
물론 이란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8월 들어 UAE 국영석유회사 ADNOC 운항 선박들이 잇따라 공격받았고, 통항량도 여전히 정상 수준을 크게 밑돈다”며 “브렌트유가 80달러대 후반으로 다시 오른 것 역시 전쟁과 공급 차질 위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호르무즈 봉쇄를 ‘실패한 허풍’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다만 이란이 세계 원유 공급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는 공포는 약해진 반면, 미국이 이란의 석유수출을 선택적으로 질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FT는 “이란은 해협 정상화의 조건으로 미국의 공격 중단과 병력 철수, 제재 및 해상봉쇄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호르무즈 통항 재개보다 이란 원유수출 봉쇄에서 더 강력한 협상 지렛대를 확보했다”면서 “이란이 핵농축이나 대리세력 공격으로 맞서면 추가 군사공격의 명분을 주고, 봉쇄를 계속하면 자국 재정과 민생이 먼저 무너지기 때문에, 어느 선택도 이란에 유리하지 않은 진퇴양난”이라고 짚었다.
[Why Times Insight]
이번 호르무즈 사태의 본질은 세계 석유시장이 이란의 위협을 완전히 무시하게 됐다는 데 있지 않다. 시장과 서방이 이란의 위협을 피해갈 방법을 빠르게 찾아내는 동안, 이란은 미국의 정밀한 봉쇄를 피해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막으면 세계가 먼저 굴복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세계는 우회 항로와 증산, 암흑 항해로 충격을 분산시켰다. 그 결과 세계를 겨냥했던 봉쇄는 이란의 석유수출과 재정을 질식시키는 ‘자기 봉쇄’로 변했다. 호르무즈해협은 더 이상 이란만의 최후 카드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이란 정권의 생명줄을 조이는 거대한 덫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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