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뉴질랜드 "대규모 스파이 국가는 중국이 유일"]
뉴질랜드 정보당국이 중국을 자국에서 ‘대규모(at scale)’ 간첩 활동을 벌이는 유일한 국가로 공식 지목했다. 중국계 기관이 민간 협력사를 앞세워 군사적 가치가 있는 우주정보 수집망을 설치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뉴질랜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 인사들이 군용기 교신을 감청하고 한미연합훈련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중국의 정보전이 이미 한국과 주한미군의 핵심 안보망까지 겨냥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로이터통신은 14일, “뉴질랜드안보정보국(NZSIS)은 13일 공개한 연례 평가서 '2026년 안보 위협 환경'(Security Threat Environment 2026)에서 여러 국가가 뉴질랜드를 상대로 스파이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대규모로 활동하는 것으로 탐지된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고 명시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은 뉴질랜드의 최대 교역국이지만, 뉴질랜드 정보당국은 경제적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가장 적극적인 외국 개입 세력으로 공개 지목한 것이다.
앤드루 햄프턴 NZSIS 국장은 “지난 12개월 동안 뉴질랜드를 겨냥한 악의적 행위가 더욱 노골화됐다”면서 “특히 중국 정보기관이 사이버 침투와 내부자 포섭은 물론 학술협력, 채용회사, 위장기업, 상업적 중개인까지 동원해 정부기관과 대학, 기업의 비공개 정보와 첨단기술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의 정보전이 더 이상 외교관 신분의 전통적 간첩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쯔진산 천문대, 위장 협력사 통해 우주 인프라 노려]
보고서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적시된 사례는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 쯔진산(紫金山) 천문대 건이다. 뉴질랜드안보정보국(NZSIS)은 “중국 기반의 쯔진산 천문대가 지상 기반 우주 인프라를 뉴질랜드 현지 업체를 통해 설치하려 했으며, 해당 업체는 이 장비가 군사적 가치를 지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NZSIS는 해당 업체명이나 계획을 어떻게 차단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뉴질랜드는 남태평양에 위치해 위성과 우주물체, 우주 잔해물의 궤도를 추적하는 지상시설을 설치하기에 유리하다. 따라서 천문연구와 우주협력을 명분으로 설치한 장비도 중국군의 위성 궤도 파악, 미국과 동맹국의 우주자산 감시, 군사위성 활동 분석에 전용될 수 있다. 연구 목적의 관측자료와 군사 목적의 우주정보 사이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더욱이 중국 국가정보법은 중국의 개인과 기관에 정보기관의 요구에 협조할 의무를 부과한다. 중국 기관이 “민간기업”이나 “학술기관”이라는 간판을 내걸더라도 중국공산당과 군·정보기관의 요구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다고 믿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의 군민융합 전략 아래에서는 민간 기술과 연구자료가 언제든 국가안보와 군사력 증강에 전용될 수 있다.
중국 정보기관은 온라인 구인 플랫폼에서도 컨설팅업체나 싱크탱크, 채용회사 관계자로 신분을 위장해 전·현직 공무원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처음에는 공개자료를 정리해 달라며 정상적인 자문료를 지급하지만, 신뢰가 쌓이면 내부 문서와 정책 결정 과정, 정부 관계자의 성향과 인맥, 비공개 회의내용을 요구한다. 학술교류와 취업 제안, 민간사업이 포섭의 입구로 변하는 이른바 ‘회색지대 정보공작’이다.
[한국도 뚫렸다…중국군 출신이 전투기 교신 감청]
더 충격적인 것은 한국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11일,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군사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 중국인 2명을 구속했다”면서 “60대 중국인은 군산공항에서 약 1㎞ 떨어진 호텔에 소프트웨어 정의 무선수신기(SDR)와 안테나, 노트북을 설치하고 한미 전투기와 관제탑 사이의 교신을 감청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남성이 단순한 무선통신 취미가 아니라 2024년부터 국내 군사시설 주변을 돌며 정보를 수집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군용기 교신을 장기간 수집하면 전투기 출격 시간과 훈련 패턴, 운용부대의 활동주기까지 분석할 수 있다. 개별 교신 내용이 최고 수준의 기밀이 아니더라도 이를 지속해서 축적하면 한미 공군의 작전 태세와 훈련 일정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또 다른 중국군 출신 40대 남성은 주한미군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한국인과의 사적 관계를 이용해 금품을 제공하고, 한미연합훈련과 미군 무기 이동, 인사 변동 등에 관한 자료를 확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자감청과 내부자 포섭이 결합한 전형적인 정보공작 수법이 한국에서 동시에 적발된 것이다. 경찰은 이들이 수집한 정보가 중국 당국에 전달됐는지, 배후 조직과 지시·보고 체계가 존재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이는 갑자기 등장한 사건도 아니다. 국가정보원은 2024년 6월 이후 중국인이 한국군 부대와 공항·항만, 국정원 청사 등 국가중요시설을 무단 촬영한 사례가 최소 11건에 달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부산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촬영했고, 수원과 오산 일대에서는 전투기를 반복 촬영하다 적발된 중국인들이 석방된 뒤 다시 같은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을 단순한 관광이나 우발적 촬영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표적과 수법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개별 사건만 떼어놓으면 경미한 촬영처럼 보이지만, 여러 사람이 군 기지와 미군 자산을 지속해서 촬영하면 경계시설과 초소 위치, 항공기 배치, 출입시간, 경비 대응방식을 축적할 수 있다. 저강도 정보수집을 반복해 방첩기관의 대응능력을 시험하고 사회의 경각심을 무디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한국군은 군부대에 설치된 중국산 감시장비 약 1,300대가 특정 중국 서버로 영상을 전송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실을 확인해 철거하기도 했다. 실제 정보 유출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사시설을 감시해야 할 장비가 오히려 외부 정보수집의 통로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중국 정보전은 사람과 드론뿐 아니라 통신장비, CCTV,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서버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경고다.
[중국 간첩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한 한국]
그런데 이번에 구속된 중국군 출신 피의자들에게도 간첩죄가 아닌 일반이적죄 등이 적용됐다. 기존 형법상 간첩죄의 상대방이 사실상 ‘적국’으로 한정돼 중국이나 다른 외국을 위한 정보활동을 적발해도 간첩죄로 처벌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외국 정부와 외국 단체를 위한 간첩 행위까지 처벌하도록 개정된 형법은 오는 9월 13일 시행되지만, 이번 사건에는 소급 적용할 수 없다.
중국군 출신 인사가 한미 전투기 교신을 감청하고 연합훈련 정보를 수집해도 법적으로는 ‘중국 간첩’이라고 처벌하지 못하는 제도적 모순이 이어져 온 것이다. 한국의 방첩체계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북한만을 적대세력으로 상정한 채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 정보기관의 활동에는 사실상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은 개정 간첩죄 시행만으로 안심해서도 안 된다. 중국의 정보전은 군사기밀뿐 아니라 반도체·배터리·원전·조선·우주항공 기술, 정부 정책자료와 한미동맹의 작전정보를 동시에 노린다. 중국으로 유출되는 핵심 산업기술도 단순한 기업 범죄가 아니라 중국의 군민융합 전략과 국가 역량 강화에 기여할 경우 국가안보 범죄로 다뤄야 한다.
[백악관 200m 앞 건물 매입…미국도 경계 강화]
중국의 스파이 활동 때문에 미국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보수 성향 비영리 뉴스기관인 데일리콜러 뉴스 재단(DCNF)은 13일 단독 보도를 통해 “미국에서는 중국 공안·국가안보 분야와 통일전선 관련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는 중국계 인사가 이끄는 재단이 백악관에서 약 198m 떨어진 건물을 매입했다”면서 “전직 CIA 공작관은 이 건물이 통신 감청과 인적정보 수집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미국은 이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심사 대상을 확대해 약 227개 군사시설 주변의 외국인 부동산 거래를 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핵미사일 기지 인근 토지를 매입한 중국계 암호화폐 업체에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린 전례도 있다”고 짚었다. 백악관과 정보기관, 군사시설 주변 부동산에 대해서는 국적만이 아니라 실소유자, 자금 출처, 외국 정부·군·정보기관과의 관계를 조사하는 것이 당연한 안보 조치라는 판단이다.
[Why Times Insight] 눈을 감는 순간 ‘교류’는 침투 통로가 된다
중국은 간첩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정상적인 교류를 정치화한다”며 반발한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 드러난 위장 협력, 한국에서 적발된 군 통신 감청과 내부자 포섭은 서방의 우려가 단순한 반중 정서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중국의 정보공작은 학술기관·기업·문화단체·채용 플랫폼·부동산처럼 개방사회가 쉽게 거부하기 어려운 통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한국은 개정 간첩죄 시행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국가중요시설 주변 외국인 부동산 취득과 장기 임대에 대한 안보심사, 군사시설 인근 드론·고성능 촬영·전파수신 장비 통제, 중국산 통신·감시장비의 공급망 검증, 핵심 연구기관의 외국 자금 및 공동연구 공개, 전·현직 공직자 대상 위장채용 신고체계를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군·정보기관과 반도체·원전·조선 시설 주변에서는 반복 촬영과 감청을 개별 경범죄가 아니라 연계된 정보수집 활동으로 분석해야 한다.
물론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래와 연구를 일률적으로 막는 방식은 해법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국적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 아니라 중국 정부·군·정보기관과의 연계, 실소유 구조, 자금 흐름, 장비의 데이터 전송 경로를 기준으로 한 정밀한 심사다. 개방성은 민주주의의 힘이지만, 그 개방성을 적대적 정보기관이 무기로 바꾸도록 방치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안보의 직무유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