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러시아 지원기업 제재부터 저가상품 관세까지…유럽의 대중 압박 전면화]
중국이 미국의 관세 장벽을 피해 수출을 확대해 온 유럽 시장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EU가 러시아 군수산업을 지원한 중국 기업들을 무더기로 제재한 데 이어 저가 소포 관세, 전기차 추가관세, 강제노동 제품 금지까지 잇달아 가동하며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다층적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내수가 무너진 중국은 지금 수출로 성장률과 제조업 고용을 간신히 떠받치고 있다. 그런 중국에 EU의 압박은 단순한 무역마찰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수출 생명줄’을 조이는 치명적인 공격이 될 수 있다.

EU 이사회는 지난 7월 23일, “21차 대러 제재 패키지를 채택했다”면서 “개인 48명과 단체 170곳 등 총 218건을 신규 제재 대상에 올렸는데,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단일 패키지 기준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럽정책 및 국제정세 전문 매체인 ‘유러피안 릴레이션’은 지난 9일, “이 가운데 대러 군산복합체 지원 혐의로 이중용도 품목 수출통제 대상에 새로 오른 51개 단체 중 14곳이 중국(홍콩 4곳 포함) 소재였다”면서 “EU 이사회는 이번 조치가 마이크로전자, 공작기계, 반도체 가공 장비 등 러시아의 군사·기술 역량 강화에 쓰일 수 있는 품목의 유입을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중국의 맞불 제재, EU 압박 막기에는 역부족]
이와 관련해 중국은 곧바로 맞대응에 나섰다. AP 통신은 “중국은 곧바로 라인메탈과 타트라 트럭스 등 유럽 기업 14곳을 수출통제 명단에 올렸다”면서 “해당 기업에는 중국산 이중용도 품목 공급이 금지되고, 제3국 기업도 중국산 관련 제품을 우회 공급할 수 없게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양측의 조치는 외형만 ‘14대 14’일 뿐 실질적인 파급력은 전혀 다르다. 중국의 조치가 특정 유럽 방산기업을 겨냥한 맞대응이라면, EU의 압박은 제재·관세·기술통제·공급망 실사를 결합해 중국 수출산업 전반을 흔드는 구조다. 중국이 유럽 방산기업 일부에 불편을 줄 수는 있지만, EU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이 받게 될 충격을 상쇄할 만한 카드는 아니다.
무엇보다 EU의 조치에는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 차단’이라는 명분이 있다.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이중용도 품목 공급을 계속할수록 EU가 추가 제재를 확대할 정치적 근거도 더욱 강해진다. 중국의 맞제재는 당장의 체면을 세울 수는 있어도 유럽의 대중국 압박을 멈추게 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내수는 얼어붙고 수출만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중국에 더욱 위험한 것은 제재가 시작된 시점이다. 중국 경제는 부동산 침체와 소비 부진, 기업 수익성 악화, 지방정부 재정난이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공식 성장률은 여전히 목표치 부근을 유지하고 있지만 물가 변동을 반영한 GDP 디플레이터는 장기간 하락했고, 내수 회복세도 극히 미약하다.
미국의 독립 리서치 및 경제·정책 분석 컨설팅 기관인 로디움그룹은 “중국의 2025년 실제 성장률은 공식 발표치보다 훨씬 낮은 2.5~3.0% 수준으로 추산된다”면서 “중국의 소비와 투자가 충분한 성장동력을 만들지 못하는 가운데 수출산업의 생산 확대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디움그룹은 이어 “중국의 무역흑자는 2024년 약 1조 달러에 육박한 데 이어 2025년에는 11월 이전에 이미 전년도 규모를 넘어섰다”면서 “반면 같은 기간 위안화 기준 수입 증가율은 0.1%에 불과했다”고 짚었다.
수출이 늘어나는 동안 수입이 사실상 정체됐다는 것은 중국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국내 소비와 투자 수요가 약해 외국산 제품을 사들이지 못하는 반면, 국내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을 가격을 낮춰 해외로 밀어내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부동산과 소비가 무너진 자리를 막대한 무역흑자가 대신 메우는 기형적인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유럽 시장이 닫히기 시작하면 충격은 수출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장 가동률 하락과 기업이익 감소, 임금 삭감과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는 중국에 수출가격 하락과 생산과잉이 겹치면 기업들은 더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밀어내야 하고, 이는 다시 각국의 반덤핑 조사와 보호무역 조치를 부르는 결과로 이어진다.
[테무·쉬인·알리익스프레스에도 관세 장벽]
EU의 대중 압박은 대러 제재에 그치지 않는다. EU는 지난 7월 1일부터 150유로 미만의 소액 직구 상품에 품목 범주당 3유로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150유로 이하 소포가 관세 없이 EU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 통로가 사실상 막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 조치의 실질적인 표적은 테무와 쉬인,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계 전자상거래 플랫폼이다. 이들의 경쟁력은 초저가 상품을 중국에서 유럽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데서 나왔다. 품목별 관세와 통관비용, 상품안전 검사까지 강화되면 저가 판매 전략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추가관세와 공급망 보조금 조사, 2027년 12월부터 전면 적용되는 강제노동 제품 금지 규정까지 겹친다. 신장위구르 지역의 원료나 부품이 포함됐는지 입증하지 못하면 중국산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섬유제품 등이 EU 시장에서 차단될 수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공급망 추적 능력이 부족한 중국 중소 수출기업에는 사실상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될 수 있다.
[미국 피해 유럽으로 향했지만, 그 퇴로마저 닫힌다]
중국은 미국의 고율관세를 피해 동남아시아와 중동, 유럽으로 수출 물량을 돌려왔다. 그러나 값싼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 철강, 태양광 제품이 쏟아지자 유럽 역시 산업 기반 붕괴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에서 밀려난 중국산 제품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차이나 쇼크 2.0’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EU의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유럽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U의 관세와 공급망 실사 기준은 영국과 캐나다, 호주를 비롯한 다른 선진국의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에 멕시코와 브라질, 인도, 동남아 국가들까지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중국산 제품 규제에 나서면 중국의 수출 우회로는 급격히 좁아진다.
중국은 생산과잉을 줄이면 공장과 고용이 흔들리고, 생산을 유지하면 더 많은 저가 상품을 해외로 밀어내야 한다. 그러나 수출을 늘릴수록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가 강화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동안 중국 경제를 살려온 수출이 이제는 국제사회의 대중국 공동 대응을 불러오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Why Times Insight]
EU와 중국의 제재 공방은 표면적으로 ‘강 대 강’ 대치처럼 보이지만, 양측이 감당해야 할 충격의 무게는 전혀 다르다. 중국산 제품을 제한하는 것은 EU에는 비용과 선택의 문제이지만, 내수와 부동산이 무너진 중국에는 성장과 고용을 떠받치는 생명줄의 문제다.
더욱이 EU는 러시아 지원기업 제재, 저가 소포 관세, 전기차 추가관세, 강제노동 제품 금지라는 네 개의 압박축을 동시에 가동하고 있다. 이는 특정 기업 몇 곳을 제재하는 차원이 아니라 중국산 제품이 유럽 시장에 들어오는 비용과 위험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조치다.
중국이 내수 회복이라는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수출 확대에만 매달린다면 EU의 압박은 단순한 통상마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유럽 시장이 흔들리는 순간 중국 제조업의 가동률과 기업이익, 고용과 소비가 연쇄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중국산 제품을 밀어내기 시작한 지금, 베이징이 직면한 위기는 수출 감소가 아니라 중국 경제를 마지막으로 떠받쳐 온 성장모델 자체의 붕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