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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평양에서 체면 구긴 시진핑, 김정은이 시진핑 뒤통수쳤다 닛케이아시아 "비핵화 언급 실종… 김정은, 정상회담의 승자로 부상" 2026-06-13
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닛케이, “김정은,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서 승자로 부상하다”]


일본의 대표적 중국통 기자가 시진핑의 7년 만의 평양 방문에 내린 결론은 단 한 줄, “승자는 김정은”이었다. 대국의 순방이 아니라 대국의 굴욕이었다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아는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이 끝난 직후, 이번 정상회담의 성격을 가장 압축적으로 규정한 분석 기사를 내놨다. 30년 넘게 중국 권력 내부를 추적해 온 베테랑 기자 나카자와 가쓰지(中澤克二)가 쓴 이 기사의 제목은 '김정은,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서 승자로 부상하다(Kim Jong Un emerges as winner in summit with Xi Jinping)'였다. 부제는 더 구체적이다. 닛케이아시아는 “시진핑의 방북은 북한 지도자의 외교적 줄타기, 비핵화 언급 실종이라는 결과로 귀결됐다”면서 “7년 만에 평양을 찾은 것은 시진핑이었지만, 회담의 전리품을 챙긴 것은 김정은이었다”고 분석해 눈길을 모았다. 


나카자와의 분석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시진핑이 빈손으로 다녀온 것을 넘어 무언가를 '내주고' 왔을 가능성이다. 닛케이는 이어 “시진핑이 6월 8일 김정은과, 북한과 두만강을 경유해 중국에 동해 해상 접근권을 내줄 거래를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기사 첫머리에 던졌다. 


닛케이는 “두만강 하구 출해권은 중국 지린성의 백년 숙원”이라면서 “과거라면 베이징이 평양에 '하사'를 요구했을 사안을, 이제는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대가를 치르고 구매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짚었다. 


포린폴리시 역시 방북 전 분석에서 “푸틴의 최근 방중 당시 중러 공동성명이 두만강 문제와 북한과의 협의 필요성을 재차 언급한 바 있다”면서 “이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으며 칼자루는 평양이 쥐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닛케이는 무엇을 근거로 '김정은 승리'를 선언했는가. 답은 회담 전후 일주일의 사실관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닛케이는 “시진핑이 평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의제가 봉쇄됐고, 회담 발표문에서 중국의 수십 년 공식 입장이 증발했으며, 시진핑이 돌아간 지 사흘 만에 김정은은 모스크바를 향해 '동맹'을 외쳤다”고 밝혔다. 그 전말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지금의 북중상황이 어떠한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근거 ① 시진핑이 착륙하기도 전에, 김정은이 회담의 규칙을 정했다]


닛케이가 말한 '외교적 줄타기'의 첫 수는 시진핑의 전용기가 뜨기 전에 두어졌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시 주석 도착을 앞두고 조선중앙통신(KCNA)을 통해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위협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여정은 또한 “국가수반이 선언한 자위적 핵전쟁 억제력 강화 정책은 무조건 집행돼야 할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확실히 못박았다.


행동도 뒤따랐다. 방문 직전 북한은 새 핵물질 생산 공장을 공개했고,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핵무력의 기하급수적 확대”를 지시했으며, 주요 군수공장을 찾아 “향후 5년간 미사일 생산능력을 2.5배로 늘리라”고 명령했다. 5,000톤급 구축함 강건함에는 딸 김주애와 함께 올라 해군 핵억제력 강화와 1만톤급 구축함 건조 계획까지 논의했다. 


이는 사실 시진핑이 착륙하기도 전에 정상회담의 조건을 규정하고, 비핵화 논의 자체가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북한 입장에서 과거에 볼 수 없던 수준의 자신감을 표출한 것으로, 그 배경에는 북러 밀착과 핵 생산능력 증대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65년 동맹조약의 '형님 국가' 중국 최고지도자를 초청해 놓고, 손님이 꺼낼 의제부터 사전에 금지한 셈이다. 정상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협상의 경계선은 평양이 그었다., 이것이 평양이 베이징에 보낸 첫 의전이었다.


[근거 ② 발표문에서 사라진 '비핵화'… 침묵은 곧 묵인이었다]


평양의 사전 경고는 회담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 6월 8~9일 정상회담에 대한 평양과 베이징 양측의 발표문 어디에도 비핵화나 한반도 정세 언급은 없었다. 중국이 비핵화 추진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던 2019년 시진핑 방북과의 명백한 결별이다. 이에 대해 신화통신은 “시 주석은 발전전략 연계, 국경 무역항 전면 재개방, 인적 교류 확대를 제안하고 외교·사법·군사 분야 교류 강화까지 언급했다”고 밝혔지만, 비핵화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 침묵의 무게를 미국 싱크탱크들이 짚었다. 미국기업연구소(AEI)는 6월 9일자 보고서에서 “시진핑이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암묵적으로 수용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점이 더 뼈아프다. 불과 몇 주 전 트럼프-시진핑 베이징 회담의 미국 측 발표문에는 “북한 비핵화가 양국의 공동 목표”로 명시돼 있었다. 트럼프 앞에서 약속한 목표를 김정은 앞에서는 꺼내지도 못한 셈이다. 포린폴리시의 표현대로 “결국 베이징은 북한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닛케이아시아도 서브 헤드라인에서 “비핵화 언급 실종”이라고 썼는데, 이는 바로 이 외교적 퇴각을 가리킨다.


[근거 ③ 방북 사흘 뒤, 김정은은 푸틴에게 '동맹'을 외쳤다]


닛케이가 '줄타기(balancing act)'라 부른 등거리 외교의 결정타는 시진핑이 베이징으로 돌아간 직후에 나왔다. 사흘 만인 6월 12일, 김정은은 러시아 국경일을 맞아 푸틴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모스크바의 대내외 정책들을 철저히 지지하고 언제나 러시아와 함께하려는 것은 나와 공화국 정부의 변함없는 의지”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오늘 조로(북러) 관계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며 진실하고 헌신적인 동지적 신뢰 관계, 동맹관계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강조했고, 이 축전 전문은 노동신문 1면에 실렸으며, 6면에는 러시아 국경일 소개 기사까지 배치됐다. 


단어 선택이 모든 것을 말한다. 시진핑과는 '전통적 친선'에 머물렀던 김정은이 푸틴에게는 '동맹'이라는 최상급 어휘를 썼다. 21발 예포와 백마 기병으로 시진핑을 환대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평양은 베이징과 모스크바 어느 쪽에도 종속되지 않겠다는 좌표를 공표한 것이다. 결국 이 축전은 김정은이 시진핑 방북 직후 푸틴과의 '동맹 강화'를 재확인하며 양다리 외교에 나선 행보라고 해석할 수 있다. 7년 만의 방북이라는 시진핑의 외교적 투자에 평양이 내놓은 답신은, 사실상 '중국은 여러 후원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통보였다.


[“중국이 이렇게 당당한 북한을 상대한 적은 없었다”]


닛케이의 '김정은 승리' 진단은 고립된 견해가 아니다. NBC뉴스는 “김정은이 보기 드문 강자의 위치(position of rare strength)에서 시진핑을 맞이했다”며, “러시아 전쟁 지원이 배당금으로 돌아왔고 핵 프로그램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굳혔으며 제재에 짓눌렸던 경제도 반등했다”고 진단했다. 


CBS뉴스가 인용한 밥 칼린 전 미 국무부 정보분석관의 평가는 더 신랄하다. 50년 넘게 북한을 분석해 온 칼린은 “중국이 이렇게 당당하게 활보하는(swagger) 북한을 상대해야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하며, “2023년 이후 김정은은 북한 전략정책의 중심축을 완전히 바꿨다”고 지적했다.


해외 중화권 매체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완웨이두자(萬維讀者網·creaders.net)는 6월 10일 자 논평에서 “시진핑의 2026년 첫 해외 순방이 평양이었음에도 이번 행보가 중국에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했으며 진정한 승자는 김정은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진핑 도착 직전 북한 관영매체의 핵보유 선언이 협상 공간 자체를 제거했고, 회담에서 비핵화가 실종된 것은 중국의 사실상 묵인”이라는 것이다. 이 논평은 결론으로 “부인 잃고 군사까지 잃었다(賠了夫人又折兵)는 삼국지 고사였다”는 말을 제시했다. 


미국의소리(VOA) 역시 “시진핑이 방북 기간 북핵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면서 조지프 보스코 전 미 국방장관실 중국담당관의 입을 빌려 “중국이 북핵을 막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행동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래도 시진핑이 가야 했던 이유… '러시아 공포'가 만든 수성 외교]


승산 없는 회담임을 알면서도 시진핑이 평양행을 택한 이유는 러시아에 있다. VOA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중관계의 역학 자체가 바뀌었다”면서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포탄·병력을 제공했고,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2023년 8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북한이 군수물자 수출과 파병으로 벌어들인 외화를 76억 7천만~144억 달러로 추산했다”고 보도했다. 합법 무역의 95%를 중국에 의존하던 북한이 대체 후원자를 확보한 것이다. 스탠퍼드대 오리아나 스카일라 마스트로 연구원은 6월 5일 CSIS 세미나에서 “푸틴이 방북해 밀착 관계를 재건한 순간, 중국인들이 자신의 처지에 공황(panic)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 패트리샤 김 선임연구원의 정리는 닛케이의 제목과 정확히 공명한다. 그는 “진화하는 이 전략적 삼각관계에서 북한이 최대 수혜자”라면서 “모스크바와 베이징 모두 평양을 자기편에 묶어두려는 강한 동기를 갖고 있다”고 짚었다. 


CNN도 “시진핑의 이번 방문은 북러 밀착 속에서 중국이 북한의 가장 중요한 경제·외교 파트너 지위를 재확인하려는 시도”라고 짚었고, CSIS 코리아체어의 애덤 패러 연구원은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에서 분명히 더 무모한 행위자”라며 “베이징은 불안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요컨대 “시진핑의 방북은 영향력의 과시가 아니라 영향력 상실에 대한 공포에서 출발한 수성(守城) 외교였다”는 것이다. 


[분석과 전망: 닛케이의 한줄, “갑을이 뒤바뀐 78년 북중관계”]


닛케이의 '승자는 김정은'이라는 한 줄은 단순한 회담 평가를 넘어, 78년 북중관계의 갑을이 처음으로 뒤바뀌었다는 시대 진단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수십 년 공식 입장인 비핵화를 평양 땅에서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못했고, 트럼프와 합의한 '공동 목표'를 김정은 앞에서 스스로 폐기했다. 김정은은 회담 전에 핵보유를 선언해 의제를 봉쇄했고, 회담 후에는 푸틴에게 '동맹'을 고백해 중국의 독점적 지위를 부정했다. 두만강 출해권이라는 중국의 숙원마저 이제는 평양이 가격을 매기는 상품이 됐다.


이 역전은 한국에 양면의 함의를 던진다. 첫째,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기대 북핵 해법을 모색하는 '중국 역할론'은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베이징조차 평양의 핵을 묵인하는 마당에 중국을 통한 비핵화 압박은 공허한 주문이다. 둘째, 김정은의 등거리 외교가 성공할수록 북한의 몸값은 오르고, 향후 어떤 협상에서도 평양의 요구 가격은 높아질 것이다.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북중 친선의 과시가 아니라, 핵을 손에 쥔 약소국이 두 강대국을 저울질하는 신냉전 동북아의 새 질서를 알리는 개막식이었다. 그리고 그 개막식의 주인공이 누구였는지는, 닛케이가 이미 제목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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