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궁지에 몰린 러시아 푸틴, 크렘린 내부도 위기감 확산]
러시아가 개전 이후 가장 심각한 군사적 압박에 직면했다. 푸틴 대통령은 핵 탑재 가능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오레슈니크'까지 꺼내 들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지만, 남부전선 균열과 후방 보급망 압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공격과 영토 수복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방 정보기관들마저 "시간은 더 이상 러시아 편이 아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26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을 넘어선 지금, 전쟁의 서사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드론은 크렘린 4마일 이내까지 타격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상당 시간을 지하 벙커에서 보내고 있을 정도인데, 결국 푸틴은 극초음속미사일까지 꺼내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공격했지만 이는 푸틴이 그만큼 수세에 몰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서사였다”고 보도했다.
에스토니아 외국정보국장 카우포 로신도 지난 2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크렘린 내부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선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면서 “앞으로 4~5개월 내에 푸틴이 더 이상 유리한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할 수도 있으며, 시간은 러시아 편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러시아 정보를 장기간 추적해온 에스토니아 정보기관 수장의 이 평가는 서방 정보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ISW가 확인한 '마이너스 전환': 3년 만의 구조적 역전]
전장의 수치는 이 같은 정보 평가를 정확하게 뒷받침한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는 지난 20일자 보고서를 통해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19일까지 4주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약 69제곱마일(약 179㎢)의 순 손실을 기록했다”며 “이는 직전 4주간의 순 손실 규모인 2제곱마일과 비교해 35배에 달하는 후퇴 속도”라면서 역사적 전환점에 가까운 수치를 제시했다.
ISW는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는 지난 18개월 동안 최소 3분의 2 이상 둔화됐다”며, “지난 1~4월 기준 하루 평균 영토 확보량은 2.9㎢로, 2025년 같은 기간의 9.76㎢에 비해 약 70%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ISW는 또 “4월 한 달간 러시아군이 116㎢의 순 영토 손실을 기록했다”며, “우크라이나가 2024년 8월 이후 처음으로 빼앗긴 땅보다 많은 영토를 수복했다”고 평가했다.
ISW는 또 지난 5월 10일 자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올해 겨울·봄 동안 탈환한 영토가 러시아가 4월 한 달 점령한 면적보다 컸다”면서 “특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후방 물류·군사 기반 시설과 석유 시설에 대한 장거리 타격 작전이 러시아의 대규모 공세 지속 능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부전선 균열: 크름반도 보급망이 흔들린다]
전황 악화의 가장 직접적인 진원지는 남부전선이다. 친러 군사 분석가들조차 “러시아 남부전선과 크름반도를 연결하는 후방 물류 체계가 개전 이래 가장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5월 초부터 헤르손·자포리자·크름반도 방향 수송 차량에 대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빈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고, 연료 공급에도 제한이 가해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가 후방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중거리 타격으로 물류 보급선을 뒤로 밀려나게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것이 남부 작전 능력 전반을 잠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이어 “올해 5월까지 우크라이나군은 오레호프·토크마크·아조프해 연안 접근로에 전력을 집중하며 크름반도로 향하는 육로 보급로와 도네츠크 전선에서 이동하는 러시아 예비군에 대한 체계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면서 “이는 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 대반격이 교착 상태에 빠진 바로 그 전선”이라 짚었다.
텔레그래프는 “그러나 3년 전과는 전쟁의 질이 달라졌다”며 “올해에는 상용 위성 기업이 제공하는 거의 매일 업데이트되는 고해상도 영상 데이터, 항속거리 200km의 중고도 정찰 드론, 최전선에 촘촘히 배치된 소형 공격 드론으로 구성된 통합 정보·타격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다”고 짚었다.

카멘스코예-셰르바키 방어선이 뚫릴 경우, 러시아군은 보급 루트를 바실리우카, 더 나아가 토크마크·베르댠스크·마리우폴 등 훨씬 먼 후방 거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이는 물류 비용과 전략적 위험을 동시에 끌어올리게 된다.
남부전선의 지각 변동은 단순한 전술적 우위를 넘어 전략적 영토 수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알자지라는 “우크라이나가 2023년 이후 처음으로 의미 있는 영토 회복에 성공했다”면서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와 자포리자주 일부에서 약 460㎢를 수복했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밝혔으며,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는 주요 사령관이 ‘거의 전체 영토가 해방됐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매달 최대 3만 5,000명을 잃고 있다”며 “손실이 새로 동원되는 병력과 거의 같은 수준에 달했다. 이들은 위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 달치 미사일을 하루에: 오레슈니크와 절박한 반전 시도]
이처럼 누적된 군사적 열세 속에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새벽 사상 최강도에 가까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텔레그래프는 “러시아는 2025년 5월 한 달 동안 발사한 미사일 83발을 훌쩍 넘는 규모를 이날 단 한 번의 포격에 쏟아부었다”며 “키이우의 모든 구역이 타격을 받았으며, Kh-101 순항 미사일, 이스칸데르-M/S-400, Kh-47M2 킨잘, 3M22 지르콘, 그리고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오레슈니크까지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공군은 “이날 공격에는 드론 600대와 미사일 90발이 동원됐으며, 우크라이나 방공군은 드론 대부분과 미사일의 절반 이상을 요격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이번 오레슈니크 사용은 2024년 11월 드니프로, 2026년 1월 르비우 지역에 이어 세 번째로, 키이우에서 약 80km 남쪽의 인구 20만 도시 빌라 체르크바에 명중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래프는 “오레슈니크 미사일 한 발의 비용만 약 3,700만 파운드(약 680억 원)이며, 이날 공습 전체 비용은 약 2억 6,800만 파운드(약 4,920억 원)에 달했다”고 추산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공격이 루한스크주 스타로빌스크의 학생 기숙사에 대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보복”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영 통신 타스는 “기숙사 공격으로 18명이 사망했다”고 전했으나, 우크라이나는 군사 시설만을 겨냥했다고 반박했다. 공습 다음 날 러시아 측은 “이번이 시작에 불과하다”며 “키이우의 의사결정 센터(정부 청사)와 지휘소에 대한 체계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 예고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미국 외교관과 시민들을 키이우에서 대피시킬 것”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정치적 공갈’…유럽의 역풍과 분위기 반전 실패]
그러나 이번 대규모 공습이 러시아에 유리한 심리적 전환점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서방 전문가들의 시각은 냉정하다.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이번 공격은 무모한 확전”이라고 비판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민간인 대상 공격을 규탄하면서 “오레슈니크 사용은 러시아의 전쟁이 막다른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규정했다. EU 외교 정책 수장 카야 칼라스는 “이번 오레슈니크 사용은 정치적 공갈이자 무모한 핵 벼랑 끝 전술”이라고 직격했다.
영국 왕립 채텀하우스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객원 연구원 케어 자일스는 텔레그래프에 “러시아가 최근 수 주간의 전세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전선의 점진적 후퇴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종심 타격은 러시아의 '필연적 승리' 서사에 깊은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최근 경고들이 재래식 군사적 맥락에서 의미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서사 전환을 위한 시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텔레그래프는 “오레슈니크는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수준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다만 핵탄두 탑재 가능성은 서방 파트너 국가들을 계속 불안하게 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방위 산업 전문가인 흐랍친스키((Anatolii Khrapchynskyi))도 “이런 공격의 상당 부분은 결정적인 군사적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언론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러시아의 미사일 전략 비축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징후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무한한 능력'이라는 선전 이미지 뒤에서 소진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오레슈니크 투입은 전세를 뒤집는 실질적 전략 무기의 운용이라기보다, 심화되는 군사적 열세를 공포 심리로 덮으려는 크렘린의 절박한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남부전선의 구조적 압박, 크름반도와 연결된 보급망 붕괴 위기, 영토 수지의 마이너스 전환이라는 복합적 현실 앞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의 위협만으로는 전장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서방 분석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전쟁 초기 러시아의 '필연적 승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던 시절과 지금은 다르다. 하루 평균 1,000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하루 70m씩 전진하던 군대가 이제는 그 전진마저 멈추고 영토를 내주기 시작했다. 징집 규모가 손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귀환 병사들이 사회 범죄를 키우고, 크렘린 안에서 쿠데타 소문이 돈다.
케어 자일스 채텀하우스 연구원의 표현대로, 러시아가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전선이 밀려서가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서사 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레슈니크는 공포를 만들 수는 있어도 전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남부전선 균열, 보급망 압박, 병력 소진, 영토 손실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직면한 위기는 무기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소진에 가깝다. 전쟁 초기 '필연적 승리'를 확신했던 러시아는 이제 정반대 질문 앞에 서 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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