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1-04-12 18:05:28
  • 수정 2022-10-09 16:00:17
기사수정


▲ [사진=Why Times]


선물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누가 보낸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냉동상품인데다 추운 날씨에 서로 부딪히다 보니 주소가 벗겨져 버렸기 때문이다. 보낼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 볼까 하다가 그가 아니라면 마치 왜 선물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하는 게 될 것 같아 그도 그만 둔다. 분명 내게 보낸 것이고 또 금방 풀어서 먹어야 하는 것이니 그냥 놔둘 수도 없다. 내게 보내준 것은 맞으니 우선 먹고 누군가 연락을 해 오기만을 기다릴 밖에 없다. 선물을 보냈는데도 아무 인사가 없으면 필시 받지 못했느냐고 물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도 이렇게 누군지도 모르게 보내져 온 사랑과 도움의 선물이 많았을 것이다. 부러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고, 보내는 이가 이름을 쓴다는 것을 깜박 잊었을 수도 있다. 이번처럼 쓰긴 썼는데 운송과정에서 떨어져버린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잘 받았느냐고 확인하는 것도 번거롭고 멋쩍을 뿐 아니라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것처럼 나는 누가 보낸 지도 모르고 덥석 받아먹기만 할 수밖에 없다. 어쩠든 나는 보내 준 것을 아주 잘 받아먹었다.


요즘 가만 생각을 해보니 선물 받는 일에 제법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언제부터 이처럼 선물 받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고 했는데 더구나 받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늘 선물을 해야 하는 것에만 마음을 쓰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선물 받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는 말일 것이다. 내가 선물할 어른들이 많이 떠나셨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받은 만큼은 나도 뭔가로 갚아야 할텐데 주지도 않고 받아먹는 것에만 익숙해졌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도 선물을 해야만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닌데 말이다.


요즘 다섯 손녀에게서 심심찮게 선물을 받는다. 끄떡하면 카드를 만들었다고 주고 책을 만들었다고 주고 그림도 그렸다며 선물을 한다. 아무리 봐도 소장가치는 없는 것 같은데 녀석들은 아주 소중한 것인 양 내게 주곤 한다. 녀석들의 기준과 내 기준이 달라서일 것이다. 그렇고 보면 내가 받은 선물 중에도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받은 것은 없었을까. 선물이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 선물일 텐데 보낸 이의 형편까지도 내 기준에 맞춰 판단하지는 않았을까.


요새는 그러지 않지만 한 때는 지나다 선물 감으로 눈에 띄면 미리 사놓았다 선물 할 때 쓰곤 했다. 선물을 해야 할 곳이 생겼는데도 갑자기 선물 감을 찾으려면 마땅치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를 대비 미리 준비를 해놓으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선물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런 때엔 미리 사놓은 것으로 정말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언젠가 한 선배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일생 중에 받았던 가장 큰 선물은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간 것이라고 했다. 너무나 엄격한 아버지, 감히 아빠라고 불러보지 못할 그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목욕탕에 가자고 하더란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아버지를 따라 읍내의 목욕탕엘 갔는데 여기 앉어 등 내밀어라하시더니 등의 때를 밀어주고 앞가슴이며 팔이며 다리까지 때를 밀어주더란다. 그런 후 등판을 탁 때리면서 한 마디 많이 컸다하셨단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말 같아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단다. 딱 한 번 아버지와 함께 한 그 일로 그는 나는 꼭 아들을 낳아 아들과 자주 목욕탕에 가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딸만 셋을 낳았다며 아쉬워했다. 그러고 보면 선물이란 꼭 물건으로만 오고가는 것만도 아닐 것 같다.


선물이 뇌물이 되거나 받고 주는데 부담이 되면 선물의 의미를 잃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은 행복한 나눔이 되고 서로의 관계를 더욱 좋게 만든다. 부부간에도 선물은 좋은 것이고 부모자식 간에도 선물은 주어 기쁘고 받아서 즐겁다. 분명 요 며칠 사이에 선물을 보낸 누군가가 연락을 해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선물 잘 받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감사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큰 것이 선물이라며 굳이 연락을 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또 하나 사랑의 빚을 졌다. 내가 사랑의 빚을 지워주진 못하고 나만 빚쟁이가 되니 미안할 따름이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고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엔돌핀이 마구 솟아나는 일 아닌가. 그래 맞다. 받은 사람이 나처럼 조금은 애가 탈지 몰라도 나도 보낸 이 모르게 선물을 해야겠다.


지금은 아니지만 하이패스가 아니 되던 때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가 뒷차의 통행료를 가끔씩 내주었는데 그러면 뒷차가 쫓아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멋있다며 고맙다고 기분 좋은 인사를 하고 가는데 그러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더라고 했다. 어쩌면 내 선물의 위력도 그리 나타나지 않을까. ‘선물 잘 받아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밝은 목소리만큼 기분 좋은 하루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선물이잖은가.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hytimes.kr/news/view.php?idx=814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