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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5 0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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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소리를 들을 만큼 영적인 기가 충만했고 눈에서 레이저 같은 강력한 빛 발사하는 카리스마
-신체적 성적으로 특이하다는 소문이었지만 특별한 점 없어… 복부비만 없고 탄탄한 근육질 몸매
-음탕한 강간범, 색광, 황후 범한 자, 성스럽게 보이는 악마, 말 도둑 등 덮어씌워 ‘속죄양’ 만들어


‘사악한, 변태 수도승’, 예언자 라스푸틴은 정치 음모의 희생자였다. 제정 러시아 황실 가문 내부의 권력 다툼과 차르(러시아 황제) 반대 혁명 세력은 유언비어를 유포해 순례자 라스푸틴을 괴물로 만들었다.

 

나는 지난 번 라스푸틴 연재 게시 후 거의 일 주일 동안 라스푸틴이 승려인가 성직자인가의 문제, 즉 러시아 정교회에서 승려 서품(ordinatio, 敍品)을 받았던 적이 있는가란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정확한 신분을 알아야 그의 평가에 대한 진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라스푸틴 암살을 보도한 신문(왼쪽)과 라스푸틴.


라스푸틴 암살 당시의 신문까지 찾아보았다.

 

라스푸틴은 승려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닌, 신비를 믿는 ‘승려 또는 수사 차림의 일반 평신도’였다. 지난 번 게시에서 ‘승려’란 표현은 잘못 사용된 것이므로 ‘신심이 깊은 순례자’ 또는 ‘구도자’ 정도로 이해해주시길 부탁한다.

 

그는 시베리아 서쪽 끝에 있는 시골에서 1869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러시아 인구의 대다수인 농노가 1861년 명목상으로는 해방되었으나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했다. 라스푸틴 부모는 조금의 농지와 가축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자유농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7세 때부터 순례를 시작했다. 한 동안 고향으로 돌아와서 18세에 결혼했다. 자녀도 출생했다. 딸 마리아는 아버지 라스푸틴이 암살된 후에도 살아남았고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1945년 그녀는 미국시민이 됐다.

 

마리아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라스푸틴에 대한 진실, 1926>, <소설같은 삶, 1930> 등 몇 권의 책을 남겼다. 결혼했던 마리아는 두 명의 딸을 두었다. 그 중 한 명은 그리스 주재 네덜란드 대사와 결혼했다. 마리아는 아버지 라스푸틴에 대해 “큰 마음과 위대한 신통력을 가진 단순한 남자였고 러시아와 신 그리고 황제를 사랑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15년간의 긴 순례 생활을 했던 라스푸틴은 김삿갓 같은 ‘방랑 순례자(Strannik, a holy wanderer, pilgrim)’이었다. 그는 종교적 신비와 진리를 찾아 그리스의 성지 아토스(Athos)까지 순례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재했던 시점에는 당시로서는 매우 먼 곳인 성지 예루살렘까지 순례했다.

 

그는 많은 이름난 수도원을 방문, 체류했고, 수도원 소유의 가축을 돌보고 또는 종교 강연을 해 주는 대가로 얻었던 소득으로 순례비용을 충당했다. 그는 종교적 모임과 교리강좌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이름 있는 큰 스님인 수도자들은 그의 열정에 감동하여 비밀스런 신통력과 치유방법을 전승해 주었다고 알려졌다.

 

라스푸틴은 현자 및 성자 소리를 들었을 만큼 영적인 기가 충만했고 눈에는 레이저 같은 강력한 빛을 발사하는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었던 보기 드문 기인이었다고 라스푸틴을 만났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 그의 기도를 듣고서 심령의 위기와 불안 신경증을 치유 받았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그는 한때 러시아 정교 당국으로부터 러시아 정교가 이단으로 분류하는 종파의 신자 또는 지도자가 아닌 가 의심을 샀으나 러시아 정교 당국의 조사 결과 이단 종파에 속하지 않았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붕괴된 후 차르 황실과 고위 정치가들의 비리와 국정농단을 조사하는 특별 적폐 조사위원회의 라스푸틴 담당 13조사부는 라스푸틴의 모든 공적, 사적 생활과 활동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라스푸틴은 소문과 같은 사악한 악마적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체적으로 성적 특이점을 갖고 있었다는 소문이었지만 사실 특별한 것도 없었고, 그의 남근도 보통 남자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점도 없었다. 다만 그는 복부비만이 없었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갖고 있었다.

 

떠도는 소문처럼 황당한 사생활은 없었다. 황실에서 소외된 귀족들, 차르체제 반대세력, 혁명세력들이 한 목소리로 첫째는 라스푸틴과 황후를 한 묶음으로 겨냥하고, 그 다음 황후를 넘어 니콜라이 2세 황제, 최종적으로 제정 러시아를 공격해 무너뜨리기 위해 라스푸틴을 악마의 승려로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승려도 아니었다.

 

임시정부의 적폐 조사위원회는 라스푸틴의 친구, 황실, 친인척, 황실 경호대 요원, 정적, 은밀히 만났던 인사들, 매춘부들 등 모든 관련된 사람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차르 재임 중에도 라스푸틴의 일거수일투족은 비밀경찰의 감시 아래 있었다. 비밀정보원은 그의 아파트 일층과 계단에서도 감시했고, 라스푸틴이 외출할 때는 비밀경찰의 자동차가 따라 붙었다.

 

귀족부인, 매춘부, 채권자, 청원자 등 모든 방문객의 이름과 방문시간, 떠난 시간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그가 식사했던 식당에서의 동향은 물론이고 파티 장면, 대신 방문 내역 정보도 모두 수집, 기록돼 있었다. 그가 황후에게 추천했던 공직 후보자들에 관한 내용도 비밀경찰 기록에 남겨져 있었다.

 

한 명의 매춘부에 대한 심문 조사에서는 그녀가 음악대학 졸업생으로 제국극장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라스푸틴의 도움을 받고자 라스푸틴에게 접근했으며, 라스푸틴이 “내 맘에 들면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걸 다 해 주겠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다른 매춘부는 이 무대 예술 지망생이 라스푸틴의 뜻에 따라주고 난 후 그는 그녀를 곧바로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쫓아내었다고 진술했다.

 

라스푸틴은 부탁을 위해 방문했던 여성들과 간혹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며, 이 성적 관계도 누가 먼저 유혹했는가는 밝혀지지 않았다. 유태인 등 부자들에게 금전을 대가로 원하는 것을 알선해 주었던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드려났다. 라스푸틴은 성직자 신분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모든 귀족이나 부자들처럼 매춘부들과 관계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사결과에서 그는 일시적으로 모험적인 연애관계도 가졌던 바 있었지만, 복잡한 연애관계보다는 뒤끝이 없는 매춘부를 선호했다.

 

그러나 라스푸틴이 악마와 같은 짓을 하고 엄청난 비행을 저질렀다는 소문은 전부 날조된 것이었다. 당시 제정 러시아에서 귀족이나 부유한 남자들이 보통으로 저지르는 정도의 일탈은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모스크바 시장은 라스푸틴이 식당 야르(Jar)에서 ‘성적 광란’의 축제를 열었다고 공개 비난했으나 경찰 조서에는 사실이 아닌 거짓이라고 밝혔다.

 

모스크바 시장의 발언은 풍선처럼 부풀었고 인간의 모든 상상력을 자극해 더 큰 소문으로 유포되었다. 라스푸틴에 대한 나쁜 소식은 센세이셔널리즘(sensationalism)에 빠진 당시의 신문들이 서로 경쟁하며 한 목소리로 마치 ‘여론전선’을 형성하듯이 보도했다. 그의 정적인 브라디밀 푸리쉬케비치(Wladimir Purischkewitsch) 두마(의회) 의원은 극우 반유태주의자로서 “어떤 어두운 힘이 라스푸틴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러시아제국의 존립이 위협 받고 있다”고 발언하며 라스푸틴을 반역자로 몰아갔다.

 

황궁에서 점차 발언권을 잃어가고 있었던 황실 친인척들도 라스푸틴을 극도로 증오했다. 그 중 가장 중요인물은 양성애자(兩性愛子)인 펠릭스 유소포프와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인 드미트리(Dmitri Pawlowitsch Romanow) 대공이었다. 이 두 사람은 결국 암살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

 

일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황후와 라스푸틴과의 친밀한 관계는 제정 러시아의 존립에 위협적일 만큼 큰 스캔들로 비화되었다. 심지어 라스푸틴이 니콜라이 2세의 황후와 성적 관계를 갖고 농락했다는 유언비어도 퍼졌지만 적폐청산위원회는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황후는 라스푸틴의 조언을 받고 황후의 모국인 독일제국과의 평화협정을 황제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샀다.

 

라스푸틴에게 음탕한 강간범, 색광, 황후를 범한 자, 성스럽게 보이는 악마, 말 도둑 등등 모든 악행을 덮어씌웠다. 정치적으로도 국정농담 주범, 제국의 배신자, 독일간첩 등등 모든 나쁜 죄를 범했다고 왜곡 유포했다. 로마노프 왕조의 모든 적폐와 비리는 결국 라스푸틴의 잘못으로 귀착되었다. 라스푸틴은 속죄양이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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