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미사에서 기도하는 우크라이나 시민 [EPA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정교회 부활절을 기해 일시적 휴전에 합의했으나, 서로 상대방이 먼저 약속을 파기했다며 거센 비난전을 이어갔다.
양국 군 당국은 11일 오후 4시부터 시작된 32시간의 휴전 기간 중 발생한 위반 사례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며 대립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12일 오전 7시를 기준으로 러시아군이 총 2천299건의 휴전 수칙을 어겼으며, 여기에는 479건의 포격과 747건의 드론 타격이 포함됐다고 상세히 발표했다. 이에 러시아 측도 국영 메신저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포병과 전차 사격 등 1천971건의 도발을 감행했다며 즉각 맞받아쳤다.
양측의 날 선 공방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열기는 이전보다 다소 식은 모습이다. 평소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에 쏟아졌던 러시아의 장거리 샤헤드 드론이나 미사일 공격은 이번 휴전 기간 중 보고되지 않았다. 이러한 소강상태 덕분에 북동부 하르키우 등 최전방에 배치된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잠시 총을 내려놓고 부활절 미사에 참석해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양국은 지난해 부활절에도 30일간의 휴전에 합의한 바 있으나, 당시에도 서로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아 '허울뿐인 합의'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전면적인 전투 중단보다는 대규모 공습을 자제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진정한 의미의 휴전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이번 합의는 전통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던 미국의 개입 없이 양국 간의 제안으로 성사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번 일시 휴전이 교착 상태에 빠진 종전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올해 초 미국 중재로 세 차례에 걸쳐 대화가 오갔으나 영토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더욱이 지난 2월 말부터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여파로 국제 사회의 시선이 중동으로 쏠리면서,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논의는 사실상 멈춰 선 상태다.
결국 부활절을 맞이한 짧은 평화는 전장의 피로도를 잠시 씻어내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미사일 공격이 멈춘 이 날의 정적은 종전을 향한 서막이라기보다,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일시적인 쉼표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양측의 뿌리 깊은 불신이 수천 건의 위반 주장으로 표출되는 가운데, 정교회 성절을 맞이한 양국의 기도는 여전히 포성 섞인 긴장 속에 울려 퍼졌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