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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04 12:34:42
  • 수정 2023-05-04 18: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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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Why Times]


초등학교 시절 학년 초마다 있었던 반장선거는 긴장과 기대감이 교차되는 연례행사였다. 반장으로 추천이 되고 몇 표를 받아 일 년 동안 학급을 이끌어 가느냐 하는 것은 아이들뿐 아니라 담임선생님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3학년 때까지 이사와 아버지 직장관계로 여러 번의 전학을 다녔기에 늘 낯선 환경에 새롭게 적응하기 바빴고 담임선생님의 신뢰를 얻을 기회도 없었다. 자연히 학급의 일에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4학년 때 있었던 몇 가지 일로 예기치 않은 주목을 받았다.


학교신문에 나의 동시가 실리고 교외 백일장과 지역구의 학력경시대회에서 상을 타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내게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영향은 5학년 반장선거로 이어졌고, 4년 내내 반장을 했던 네 명의 친구들과 열띤 경쟁을 하기에 이른다. 가슴은 두 방망이질을 쳤지만 포기하지 않고 100명이 넘는 반 친구들 앞에서 ‘내가 반장이 된다면’으로 시작되는 짧은 연설을 했다. 우리는 베이비부머 첫 세대로 2부제, 3부제 수업을 해도 빡빡한 콩나물교실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기에 생년월일 순으로 매기는 학생번호가 100번이 훨씬 넘었다. 당시에는 반장이 담임선생님을 대신해서 자습시키기, 숙제검사, 시험지 채점, 환경정리와 청소, 급식관리를 하며 거의 조교의 역할을 했기에 권력자의 성향을 보이는 반장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기존에 반장을 했던 사람보다 교외에서 특별한 상을 탔다는 새로운 인물에게 쏠림현상이 일어나 나는 졸지에 5학년 9반의 반장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반장이 된 것이 이번 동네 반장이다. 이사를 온 지 12년이 되었고, 3년째 우리 동네 반장 일을 맡고 있다. 모든 주민이 바쁜데다 순서가 되어 안 맡을 수가 없었다. 바깥일도 바쁜 형편에 반상회를 잘 하지 않는 대도시에서 무슨 반장이냐 하겠지만 지난 연말에 받은 반장증에는 매우 중요한 반장의 임무가 적혀 있었다. 반장은 복지대상자와 동네 공공 시설물 파손에 대해 주민센터에 알릴뿐 아니라 동네를 두루 살펴야 한다.


우리 동네는 적은 수의 가구가 살기에 거의 형편을 알고 있는데 복지대상자는 아직 없고 쾌적한 공동생활을 위해 종종 알림 글을 써 붙인다. 비록 적은 수가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라도 서로 양보하고 협조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경비원 인건비와 공공요금을 챙기고, 정원관리와 청소, 물탱크와 정화조 관리를 해야 한다. 기금을 모아 몇 년에 한 번씩 보수공사를 하는 것도 반장이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다.


반장은 순수하게 자원봉사의 역할을 한다. 통장은 봉급이 있지만 반장은 온전히 심부름을 할 뿐 별다른 보상이 없고, 설날과 추석에 2만 5천원씩 온누리상품권을 받는다. 온누리상품권으로는 대부분 전통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반장을 맡고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부터 사고의 틀이 바뀌어 정책에 대해 진지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교육ㆍ복지정책 시민대토론회에 나가 직접 정책 제안을 했다.


그동안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대선을 치르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국민이 깨어있어야 나라도 성숙해진다. 그래서 혼자만 잘 살려고 하기보다 우리 동네일부터 관심을 갖기로 했다. 개인의 문제와 이해당사자의 관심이 결국 사회의 이슈가 되고 정치적 아젠더가 된다. 하지만 정책 입안과 예산 실행의 과정이 멀기만 하니 힘을 가진 정책결정자가 되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가 보다.


마침 반장증에는 반장이 동주민센터와 협력하여 행정업무를 지원한다고 써 있다. 이웃에 대한 보살핌과 사회안전망 구축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선별적 복지를 넘어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회복지사의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눈을 더 크게 뜨고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일을 잘 하고 있는지 철저히 감독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믿는다.


그나저나 고작 동네주민 몇 가구와 소통을 하면서도 어려울 때가 많은데, 수천만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얼마나 큰 귀와 넓은 가슴과 지혜로운 눈과 부지런한 손발을 가져야 할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본다. 부디 나라 일을 맡은 이들이 진정한 일꾼으로 평화로운 나라와 살만한 나라를 만들어 가기 바라며, 행복의 나라로 가고자 하는 크고도 작은 꿈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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