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3-05-04 12:33:17
  • 수정 2023-05-04 18:25:56
기사수정



수필가요 소설가인 문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혈액암(백혈병)으로 6년간을 투병하다가 아쉬움 가득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의 투병 중에 보내져 온 그 많은 사랑의 선물들, 그리고 위로와 격려와 기도. 삶이란 이렇게 베풀고 나누는 것이구나 다시 느끼게 하는 절절한 마음 나눔의 광장이었습니다.

나중엔 매일이다시피 혈소판 수혈을 받으며 생명의 촛불을 위태롭게 켜고 있더니 결국 그는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우리의 곁을 떠나간 것입니다.

처음 2년의 치료 후 아주 많이 좋아졌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났다는 기쁨이, 그리고 감사가 그를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그는 살아있음의 기쁨과 감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잠시도 멈추지 않는 바람 같은 사람, 그의 베스트셀러 수필집 "삶의 향기 바람에 날리며"의 제목처럼 그의 삶도 그렇게 삶의 향기를 바람에 날리며 사는 삶이었습니다.


아주 떠나기 전 날 그의 손을 잡았을 때, 그가 이미 떠날 때가 되었음이 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그를 위해 해 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벌써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눈을 뜨고 바라봐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내가 고작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떠나는 그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거나 그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는 것으로 마지막 이별을 했던 것입니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힌다지만 그가 간 자리는 그냥 빈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그는 빈자리를 남겨 두고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라지만 이렇게 떠나간 그를 보며 나는 그저 그가 없어져 버린 세상이 그냥 그대로임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는 갔지만 그의 빈자리도 어쩌면 벌써 없어져 버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슴속에 드리워졌던 그의 자리와 그림자는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할 길, 결코 나만 예외일 수 없는 것처럼 떠날 날을 준비하는 마음은 지금 당장도 빠른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만치 봄이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봄은 벌써 내 가까이 와 있었고 그걸 깨달았을 때에는 산과 들이 온통 그의 세계였습니다. 어느새 그렇게 되었을까 미처 생각지도 못 했는데 또 그 봄이 가고 여름이 밀려왔습니다. 두터운 옷을 나도 모르게 벗어버렸었고 살랑거리는 봄바람 그리고 따스하지만은 않게 내리쬐는 햇볕을 의식하며 또 나는 가벼운 옷조차 덥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몇 번쯤 여름이라는 생각을 하려 들면 가을이 와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계절에게 우린 아무것도 해준 게 없습니다. 그들은 때맞춰 우리에게 와 주었고 그들의 선물은 우리를 황홀케 했습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감사도 못 했습니다. 당연한 것처럼 의례 그런 것처럼 받아들였고 그 속에서 누리기만 했습니다.


문우와 꽤 많은 세월을 함께 하면서도 그도 나도 시간은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일들에 바빴습니다. 그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고 나중엔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것은 아니 내 것은 없었습니다. 죽은 듯 마른 가지에서 잎이 피어나고 거기서 꽃이 피고 그리고 그 꽃이 질 때도 우린 그런 자연의 흐름과 진행이 그들만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것은 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도 길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습니다. 마치 그걸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꽃 속에서 나무는 열매를 준비했고 꽃은 그걸 알자 아무런 미련 없이 목숨 줄을 놓아버렸습니다. 그 자리에 너무나도 이쁜 아주 작은 열매가 열렸습니다.


삶이란 사람이건 식물이건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힙니다. 허나 꽃이 지는 걸 보는 마음은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게 이별에 길들여지기가 쉽지 않음입니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힌다지만 자연은 그런 걸 잘도 해내는데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문우가 떠나간 자리가 큽니다. 그가 간 자리가 너무 큰 것은 그가 간 자리에 열린 열매가 너무 커서 내가 볼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유독 그가 그립습니다. 그의 자리와 그의 그림자까지도.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whytimes.kr/news/view.php?idx=1490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최원현 칼럼니스트 최원현 칼럼니스트의 다른 기사 보기
  • 『한국수필』로 수필,『조선문학』에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처장.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그냥》등 16권,《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2권의 문학평론집, 중학교《국어1》《도덕2》,고등학교《국어》《문학》 등에 작품이 실려 있다.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정기구독
교육더보기
    게시물이 없습니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